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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강정호에게 보이는 ‘류현진의 기운’

미국으로 떠나는 강정호를 보며 이미 미국에서 두 시즌을 보낸 류현진이 생각나는 것은 둘 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개척자’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둘은 공히 대담하다. 보통 그렇게 하는 차원을 넘어 과감한 언행으로 누군가를 놀라게 할 때가 잦다.

강정호는 피츠버그 기존 유격수인 조디 머서를 두고 “기회만 있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미국의 한 매체가 나서 ‘정치적이지 못한 발언’이라고 꼬집을 만큼 으레 하는 인사법과는 달랐다.

전보다 큰 무대로 옮겨 새 둥지를 여느 선수라면 “팀의 일원으로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정도의 코멘트를 꺼냈을 법하고, 비교적 개방적인 현지 언론도 그런 인사에 익숙해져있는 것이다.

류현진이 2년 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벌써 28승이나 거두며 승승장구한 것은 신체적으로 타고난 부드러움에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류현진 또한 유니폼을 입는 순간, 자기 확신이 강해진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 쿠바전을 앞두고 이승엽(당시 요미우리)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류현진은 선발 등판을 앞두고 고참 야수들을 찾아가 “타선에서 3점만 내주면 그 안으로 내가 막겠다”고 했다. 숱한 국제대회를 뛴 이승엽조차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실제 대표팀은 3-2로 승리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뒤에도 단체 러닝에서 뒤쳐지거나 흡연 장면이 노출돼 현지 기자의 눈총을 받았지만, 흔들리는 일 없이 마운드에서 실력을 발휘해 여론마저 바꿔놓았다.

강정호 또한 자기 자리에 대한 자부심이 여간 강하지 않다. 자신에게 따라붙는 여러 별명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메이저리그 대표 유격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연상시키는 ‘K-로드’ 또는 ‘강드리게스’가 가장 좋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야구인생의 목표점을 묻는 질문에는 “유격수로 많은 선배들이 있지만, 모두 뛰어넘어 ‘전설’로 남는 유격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피츠버그 입단이 확정된 뒤 유격수 자리를 우선 생각하고 ‘경쟁’을 각오한 것도 자기 자리에 대한 확신 때문으로 보인다.

둘은 용감하다. 그러나 용감하기만 하지 않아 더 세 보인다. 너무 강하면 늘 부러질 여지가 있어 걱정이지만, 때때로 유연함을 보이는 것도 닮아있다.

류현진 역시 첫 시즌을 치르면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슬라이더와 커브를 개발하는 변화를 보였다. 강정호 역시 화산 같은 자신감을 보이면서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무대여서 그쪽의 힘과 스피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유격수’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유격수 아닌 다른 포지션에 설 수 있는 ‘비상구’를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것도 현명해 보인다. 넥센 캠프에서 조용히 2루수로도 뛸 준비를 하고 있는 강정호의 ‘출구’는 어떤 식으로든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 무대로 떠나는 선수와 한국무대를 찾는 외국인선수 모두 성공의 상당 부분이 ‘적응력’에서 갈린다. 체력이 떨어져 방망이 끝이나 볼끝이 처지면 되살리면 될 일이지만, 기가 죽으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류현진은 웬만해선 ‘기’ 죽지 않는 스타일이다. 강정호를 보며 메이저리그 ‘성공 모델’인 류현진의 모습이 몇가지 떠오르는 것은 그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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