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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크전] 이정협 “슈틸리케 감독님은 내 은인…우승으로 보답할 것”

“제 인생의 은인에게 보답해야죠.”

각이 딱 잡힌 현역 군인의 눈빛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무명이었던 자신을 당당한 국가대표로 키워준 스승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는 ‘군데렐라(군대에서 온 신데렐라)’로 화제를 모은 국군체육부대 소속 골잡이 이정협(24)이었다.

이정협이 선제골을 성공시킨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 : Gettyimages/멀티비츠

26일 호주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호주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1골·1도움을 터뜨린 이정협은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오늘 경기에선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운좋게 골도 넣고, 도움도 기록했으니 감독님께 조금이나마 보답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흔히 골 냄새를 잘 맡는 선수를 특급 골잡이라고 말한다. 이번 대회만 따진다면 이정협도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정협은 전반 22분 김진수(호펜하임)가 올린 프리킥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번쩍 솟아오르며 정확한 헤딩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지난 17일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절묘한 슬라이딩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골 감각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럽다.

이정협이 A매치에서 쌓고 있는 기록도 이를 입증한다. 이정협은 A매치 6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는데, 황선홍(104경기·50골)이나 이동국(93경기·33골·전북), 구자철(34경기·13골·마인츠) 등 최근 역대 아시안컵 득점왕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정협은 “골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보다는 내가 있는 곳에 항상 좋은 크로스가 올라올 뿐”이라며 “황선홍 선배님의 등번호를 달고 뛰고 있으니 대를 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빙그레 웃었다.

이정협에게는 특별한 동기부여도 있다.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무명인 자신을 발탁한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보답이다. 이정협은 아시안컵을 앞둔 제주 전지훈련에 포함될 때까지 연령별 대표팀에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는 선수다. 이정협은 “슈틸리케 감독은 그저 은인과 같은 분”이라며 “본인이 나를 뽑아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부담이 큰 상황에서도 ‘책임은 내 몫이니 편하게 뛰라’고 하신 분이다. 그 믿음에 보답하는 게 이번 대회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정협은 31일 오후 6시 같은 장소에서 치러질 결승전을 보은의 무대로 여기고 있다. 이정협은 “결승에 오르면 몸이 다쳐도 잊고 뛸 것이라 여겼다. 내 인생의 은인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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