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두리는 행복했고, 우리는 고마웠다

‘우승컵 들고 화려한 은퇴’꿈 깨졌지만

태극마크에 자부심 일깨운 감동 마침표

나의 축구여행은 끝…
난 행복한 축구선수

한국 축구가 55년 만의 아시아 정상을 아깝게 놓친 31일 호주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 개최국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화려한 은퇴를 꿈꿨던 차두리(35·서울)는 1-2 패배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센터서클 오른쪽 구석에 주저앉고 말았다.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겠다는 꿈이 무산된 탓이다.

A매치를 마감하는 75번째 출전. 차두리는 이날 선발로 출전해 전·후반을 넘어 연장전까지 120분을 모두 뛰었다. 한국 선수로는 아시안컵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쓰는 이 경기에서 후배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후배들도 “두리 형을 위해 꼭 우승 헹가레를 하겠다”는 경기 전 약속대로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전반 45분의 실점, 기적 같았던 연장전 승부에서도 똑같이 연장 전반 골문이 뚫리는 일이 반복됐다. 전매특허인 ‘공보다 빠른 질주’로 쉼없이 호주의 수비를 두들겼지만, 끝내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글픈 패배로 국가대표 경력을 끝낸 그는 잠시 자신을 추스린 뒤 후배들에게 다가갔다. 자신보다 가슴이 아팠을 그들을 위로하는 게 자신의 마지막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다리에 쥐가 나도 뛰었던 한국영(광저우 부리), 동점골을 넣고도 바닥에 엎드린 채 울고 있는 손흥민(레버쿠젠), 마지막 실점의 빌미를 내준 뒤 대성통곡한 김진수(호펜하임)까지. 호주의 우승 축하연이 펼쳐지는 한 구석에선 그렇게 서글픈, 그들만의 시간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차두리는 믹스트존(공동 취재 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애초 우승컵을 들어올리면 성대하게 은퇴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기에 이날 자리는 조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차두리는 “감동스럽다”고 했다.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뛰는 경기에서 후배들과 함께 한국 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입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말을 멈춘 차두리는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마지막 경기에서 후배들에게 고맙다. 오늘처럼만 뛰어준다면 한국 축구는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차두리의 머릿속에는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했던 2001년이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통해 이름을 처음 알렸던 그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뤘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첫 원정 16강의 기쁨을 맛봤다. 차두리는 “은퇴라는 것에 아쉬움을 떨쳐내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도 선수로 마지막을 앞둔 시기에 국민들에게 감동을 다시 줄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다. 어떻게 보면 우승보다 값진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되찾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가대표로 마침표를 찍은 차두리는 이제 소속팀 FC서울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차두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 마지막 축구 여행은 이제 끝났다. 난 정말 행복한 선수”라고 전했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