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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속 상상이 현실이 됐다…신비롭고 오묘한 스위치 투수의 세계

KBO리그에서는 ‘스위치 타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2015시즌 등록 선수 중 양쪽 타석에 모두 들어설 수 있는 스위치 타자는 모두 7명이다. 이중 LG 루카스 하렐과 롯데 홍성민이 투수인 점을 고려하면 타자는 5명. 실제 1군 경기에서 모습을 볼 수 있는 선수는 SK 김재현, 넥센 서동욱 정도다. 둘 다 주전은 아니다. 스위치 타자도 쉽게 보기 힘든데,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스위치 투수’ 탄생이 임박했다.

한화 최우석(22)은 공식적으로는 ‘우투우타’로 등록돼 있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오른손과 왼손으로 모두 공을 던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일본 요코하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2-13으로 크게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1사 1루에서 ‘충격의 데뷔전’을 치렀다. 우완 투수 최우석은 좌타자 다츠야 시모조노가 타석에 들어서자 글러브를 바꿔 낀 뒤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스위치 투수’의 실전 탄생이었다. 첫 공 3개는 볼이었지만 4구째를 스트라이크로 넣었고 5구째로 2루 땅볼을 유도해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이후 최우석은 본격적인 ‘스위치 투수’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불펜 피칭 훈련을 할 때 오른손으로도 던지고 왼손으로도 던진다. 특수 제작한 스위치 투수용 글러브도 구했다. 최우석은 “본격적으로 스위치 투수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최우석이 27일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일본 오키나와현 고친다구장에서 각각 왼손과 오른손으로 불펜 투구를 하고 있다. 연합

최우석은 원래 왼손 투수로, 중학교 때까지 왼손으로 공을 던졌다. 그러다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일본 야구만화 <메이저>에서처럼 ‘오른손 투수’로 전향했다. 장충고를 졸업한 뒤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한화에 3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다. 이후 크고 작은 방황기를 거쳤고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가 돌아왔다.

아픔을 겪은 만큼 ‘스위치 투수’로 새 도전에 나서겠다는 각오가 크다. 오른손으로 145㎞를 던지고 왼손으로도 최고구속 135㎞를 기록한다. 두산의 왼손 선발 유희관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지만 제구는 아직 한참 못 미친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최우석의 스위치 투수 도전에 대해 “재미있지 않겠나”라면서도 “야구는 쉽지 않은 것”이라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임을 강조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치 투수는 팻 벤디트(오클랜드)다. 벤디트는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5라운드 전체 1345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됐고 더블A와 트리플A를 오가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마이너리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벤디트는 오클랜드와 마이너 계약을 했고 이번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벤디트의 아버지는 벤디트가 6살 때부터 ‘양손 투수 훈련’을 시켰다. 양손으로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다리의 ‘킥 동작’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며 미식축구 공을 양발로 차는 훈련을 시켰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벤디트는 구속과 제구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른손으로 최고 151㎞, 왼손으로 최고 137㎞를 던진다. 왼손으로 던질 때는 사이드암 스로 형태로 던져 좌타자 상대의 유리함을 더 키웠다.

벤디트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스위치 투수가 스위치 타자를 만났을 때 벌어지는 복잡함을 해결하기 위한 ‘벤디트 룰’ 때문이다. 스위치 투수와 타자가 서로 유리함을 위해 던지는 손과 타석을 자꾸 바꿔 경기가 진행되지 않자 메이저리그 규칙위원회는 벤디트 데뷔 직후인 2008년 7월4일, 새 규칙을 만들었다. 벤디트 룰에 따르면 스위치 투수는 공을 던질 때 타자나 주자를 위해 어느 손으로 던질 것인지 먼저 표시를 해야 한다. 스위치 타자라면 스위치 투수가 던질 손을 결정한 뒤 원하는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 투수는 반드시 그 타자와의 승부가 끝난 뒤 던지는 손을 바꿀 수 있다. 만약 투수가 던지는 어느 한 쪽에 부상을 당했을 경우 같은 타석 안에서도 던지는 손을 바꿀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남은 경기에서 모두 한 쪽 손으로만 던져야 한다.

최우석의 스위치 투수 변신 가능성이 보이자 KBO 역시 ‘최우석 룰’을 고민 중이다. 정해진다면 메이저리그와 같은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KBO리그에서 ‘스위치 타자’의 숫자가 많지 않아 실제 이 룰이 자주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추신수와 함께 텍사스에서 뛰고 있는 텍사스의 에이스 다르빗슈 유 역시 ‘스위치 투수’가 가능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르빗슈는 어린 시절 부터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 훈련 때 왼손으로도 공을 던졌다. 132㎞ 수준의 속구에 변화구 구사가 가능하지만 실전에서는 한 번도 왼손으로 던지지 않았다. 다만, 훈련 때 60m 롱토스를 왼손으로 자주 하는 수준이다. 왼손 132㎞라면 역시 유희관의 구속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실제 ‘스위치 투수’가 공을 던진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그레그 해리스(몬트리올)는 원래 우완 투수로 메이저리그 통산 703경기에 나섰지만 양손으로 던진 것은 딱 한 번. 자신의 은퇴 직전 경기였던 1995년 9월 29일 신시내티와의 경기에서 3-9로 뒤진 9회 등판했을 때였다. 첫 타자 레지 샌더스를 오른손으로 땅볼 처리한 뒤 좌타자 할 모리스와 에드 터벤시를 상대로 ‘왼손 투수’로 변신했다. 모리스에게 볼넷을 주고, 터벤시를 땅볼로 잡아낸 뒤 브렛 분이 들어서자 다시 오른손 투수로 돌아와 분을 투수 땅볼로 잡아냈다. 이 장면이 1900년 이후 메이저리그 유일한 ‘스위치 투수’의 등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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