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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대표 ‘더티 섹시’ 캐릭터 이상훈 “저 얼마나 깔끔한 남잔데요” [인터뷰]

“저 비폭력 무저항주의자에요.”

딴 사람이 말하면 ‘마음씨가 비단결이다’ 싶은 이 말이 이 남자가 하면 웃음이 나는 이유는 무얼까. 김준현, 김원효, 양상국, 박성광, 송준근, 박지선 등으로 대표되던 공채 22기가 주류였던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후 데뷔한 개그맨들에게 주무대가 옮겨지고 있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개콘>은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늘 받쳐주는 연기에 능하던 이상훈(33)이 배우 류승룡 못지않은 ‘더티 섹시’ 이미지로 시청자들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남자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다루는 ‘핵존심’ 코너에서 자존심 외에는 비호감 요소 일색인 남자를 연기하고, ‘왕입니다요’ 코너에서는 긴 머리에 미끄러운 피부, 노안을 가졌지만 마음만은 여린 14살의 호위무사 ‘미끌이’를 연기하고 있다. 데뷔 4년 만에 받기 시작한 갈채, 그는 아직 이 박수가 어색하다. 하지만 그의 사연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이날을 기다려온 ‘노력파’의 땀이 느껴진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핵존심’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마초, 상남자 캐릭터로 열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데뷔하고 바로 ‘감사합니다’ 코너로 박수를 받았거든요. 그 이후로는 제가 등장할 때 환호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박수가 나와요. 제 존재감을 스스로도 잘 몰랐는데 요즘 느끼고 있어요.”

‘핵존심’은 그가 김기열, 양선일 등 선배들과 함께 짠 코너다. 그래서 성공을 바랐다. 하지만 동기인 이문재, 정승환 등과 짠 ‘왕입니다요’는 그가 숟가락 만 올려놓은 경우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이상하게 두 코너 모두 남성성을 과하게(?) 강조하는 캐릭터다. ‘핵존심’에서 그는 남자의 자존심을 각종 해괴한 의상을 통해 과장되게 표현하고, ‘왕입니다요’에서는 느끼한 무사의 캐릭터에 남성성을 녹여 표현했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핵존심’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마초, 상남자 캐릭터로 열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전 되게 깔끔하고 집도 정리를 잘 해놓고 살거든요. 그리고 비폭력 무저항주의자에요. 깔끔하게 해놓고 사는데 왜 이렇게 ‘더러운’ 연기를 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제 안에 그런 부분이 있나봐요. 사실 이런 연기들이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데, 어느 순간 저를 놓게 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모든 게 편해졌어요.”

‘왕입니다요’의 ‘미끌이’는 원래 느끼한 아저씨 캐릭터였다. 그는 예전 ‘후궁뎐’ 코너에서 부터 사극연기의 발성을 인정받아 왕 역할을 맡아왔다. 좀 더 반전을 주기 위해 나이도 14살로 낮췄다. 오랜 기간 웃기는 연기자들 옆에서 보조를 맞추던 연기만 하던 그에게 시청자들의 배꼽을 노리는 ‘공격수’의 위치는 낯설기도 했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핵존심’(왼쪽),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활약 중인 개그맨 이상훈의 캐릭터들. 사진 KBS 방송화면 캡처

“전 제가 웃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코너의 아이디어가 좋아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게 더 기뻐요. 주목받으면 언젠가는 외면 받잖아요. 그래서 천천히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기대감을 크게 드리면 더 큰 개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무대에서 끼를 보이는 개그맨이 직업이지만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성격은 이상훈이 개그맨이 된 과정을 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을 웃기기 좋아하는 끼 있는 아이였다. 30년 전 존경하는 인물을 쓸 때도 코미디언 심형래를 거리낌 없이 꼽았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핵존심’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마초, 상남자 캐릭터로 열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학교에서는 제가 지나만 다니면 웃었어요. 그때는 제가 진짜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개그맨의 꿈은 있었는데, 철이 들면서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경북 영주 출신인 그는 고3 때 연기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개그전공의 학과가 없어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했으나 낙방을 거듭한 끝에 물리치료과를 택했다. 그렇게 응시한 KBS 공채 시험이 정형돈, 이정수 등이 있었던 17기 시험이었다. 결국 몇 차례에 낙방 끝에 그는 물리치료사로 진료를 잡는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상훈에게 그가 어린 시절 ‘개그맨이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사실을 자꾸만 상기시켜 줬다. ‘꿈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구나’하고 스스로를 다그친 그는 20기, 24기, 25기 시험을 연이어 떨어진 끝에 26기 시험에 합격한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핵존심’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마초, 상남자 캐릭터로 열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개인적으로 ‘이 개그맨들이 사는 세상’의 정범균 선배를 좋아해요. 선배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회의하는 게 노는 거고, 재밌어’라고요. 일을 논다고 표현하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저도 즐기면서 연기를 해야 정말 시청자나 관객을 즐겁게 하는 개그맨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비록 코너에서 조금 관심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일지 모르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다시 돋보일 거고, 저는 또 뒤에서 그 사람을 잘 받쳐주면 돼요. 다들 서로가 웃기는 일에 성공하면 모두 응원하고 독려해요. 이게 바로 <개콘>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기부터 무려 9년 동안 꾸었던 개그맨의 꿈, 그리고 개그맨이 되서도 다시 4년을 무명에서 기다려야 했던 시절은 이상훈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보다는 당장 이번 주 녹화에서 어떻게 웃겨야 할지 머리를 싸매는 진짜 개그맨이었다. 그가 언젠가 사람들의 주목을 못 끌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그의 존재는 <개콘> 또 하나의 큰 밀알일 것이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핵존심’ ‘왕입니다요’ 코너에서 마초, 상남자 캐릭터로 열연 중인 개그맨 이상훈.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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