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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김래원 “연기에 대한 집념, 10여 년 간 주인공한 원동력” [인터뷰]

“20대에 청춘스타는 해봤잖아요.”

정말 그랬다. 배우 김래원(34)은 나왔다 하면 소녀 팬들의 환호성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청춘>과 <어린신부> <ing> 등에서 청춘의 싱그러움을 표현했고,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등에서도 역시 덤벙거리지만 밝고 유쾌한 20대 청춘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을 기점으로 30대에 접어든 남자의 원숙함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과 영화 <해바라기> <인사동 스캔들> <강남 1970>…. 그는 청년이 아닌 짙은 남자로 변해갔다.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펀치’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한 배우 김래원.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 정점은 지난해였다. 그는 지난해 대부분을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 1970>에 쏟고 나서 다시 무거운 분위기의 SBS 드라마 <펀치>를 택했다. 연기를 잘 해서 찬사를 얻어도 그가 가진 연기에 대한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돈에 대한 갈망, 권력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캐릭터에 거의 1년을 푹 빠졌다 나온 김래원은 그래서 더욱 후련해보였다.

“이제 허전하고 공허감이 몰려오는 것 같아요. 드라마가 끝난 지 열흘이 넘었는데 잠만 자고 먹는 것만 해요. 영화에서부터 감량은 해 와서 ‘이 정도면 됐겠다’ 싶었는데. 드라마에서 시한부를 연기하니까 또 식단을 조절해야 하더라고요. 마지막에는 거의 뭐 못 잤죠. 세수를 3일 동안 못 하는 날도 있었어요. 매니저에게 ‘가까운 응급실 미리 잡아 놔라. 시간나면 링거 좀 맞게’라고 말한 때도 있었어요.”

배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펀치’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한 배우 김래원.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는 <펀치>에서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과 함께 권세를 누리다가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후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고 이태준에 맞서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했다. <펀치>의 전체 줄거리가 그의 남은 3개월 동안의 이야기였다. 극중 박정환은 딸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을 얽어매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옳은 일을 택한다.

“<강남 1970>을 1년 정도 촬영하다보니 무거운 작품은 피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회사 분들이 이 작품은 놓치기 아깝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방송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아요. 김래원은 밝은 게 어울리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대요. ‘어, 그래?’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명우PD가 ‘김래원과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결국 잘 한 일이죠.”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펀치’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한 배우 김래원.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드라마 전에 영화를 찍었던 경험은 오히려 드라마 적응에 방해가 됐다. 그냥 힘을 빼고 연기를 해야 할지, 몸에 긴장을 주고 해야 할지 무거운 분위기의 드라마라 계산이 서지 않았다. 굳이 카메라를 보지 않아도 몸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도리어 스태프로 부터 “카메라를 쳐다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세부적인 부분은 자신이 연구한 캐릭터를 들이밀지만 드라마 전체의 방향에 있어서는 연출자의 말을 따르는 신념이 그를 드라마에 스며들게 했다.

“시한부 연기를 하는데 아침에 진짜 안면 마비가 온 적이 있었어요. 병에서 온 고통도 진정성있게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대로 연기를 했습니다. 그 전에 나쁜 놈이었던 정환이가, 그나마 좋게 이해가 되는 부분들은 고통으로 인해서 사람이 바뀌는 부분이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다 정환이는 아빠였잖아요. 친구 중에 항상 후세를 위한다며 저를 시청 앞 시위를 하러가자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말 ‘자식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길 바라는 것’이라는 말이 많이 와 닿더라고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펀치’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한 배우 김래원.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는 극에서는 아버지였지만 실제로도 혼기가 찼다. 그는 최근 <펀치> 직전까지도 좋은 감정을 갖고 만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여동생이 둘째를 최근 가졌는데 17개월 된 조카를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결혼에 대한 조금의 생각 외에는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연기에 대한 갈망이다.

“연기가 재미있어요. 배우를 하면서 편하게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러면 제가 멈춘다고 생각해요. 자꾸 더 집착하고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집념이 그래도 10년 넘게 주인공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둥글게 가는 게 좋다는 것, 주변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빨리 깨달았어요. 마흔까지 ‘바짝’하고, 1등 영화 한 번 찍고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요.”

최근 종방한 SBS 드라마 ‘펀치’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정의를 위해 바치는 검사 박정환을 연기한 배우 김래원.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무거운 작품을 연이어 했던 그이기에 몸의 긴장을 좀 빼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나이 이제 만 서른 넷, 아직 충분히 청춘일 수 있는 나이다. 과거 그를 스타로 밀어 올렸던 밝은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밝은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도 열어놓고 있어요. 무거운 연기를 하는데도 대본을 보면서 뭔가 웃기는 타이밍을 잡고 있는 저를 발견하더라고요. 고민을 했죠. 이 연기를 할까 말까. 하지만 마지막 회 정환이의 모습을 위해서 그 캐릭터가 깨질까봐 안 했어요. 하지만 지금도 재미를 주는 연기에 대한 생각은 꼭 해요.”

그는 과거에는 ‘남들이 이 연기를 하니까 나는 이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는 남이 어떻게 봐줄 것인가가 더욱 중요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명확해졌다고 했다.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하고 싶은 삶을 살고…. 비록 캐릭터가 자신의 건강을 피폐하게 할지라도 갈증이 채워진다면 그걸로 족한 연기자의 인생이다. 김래원은 원숙함으로 가는 30대, 딱 그때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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