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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시구의 역사…대통령에서 팬 3대까지

시구(始球, first ball)는 시범을 보이는 공이 아니라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공이다. 잘 던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야구 실력보다는 시구 행위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마운드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경기 시작 전, 그 자리에 우뚝 서 혼자 공을 던진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시선을 한 데 받는다. 개막전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프로야구가 개막하고, 올해도 개막전 시구자들이 등장한다.

야구의 고향은 미국이지만, 시구의 고향은 일본이다. 일본의 오쿠마 시게노부 전 총리가 사상 최초의 시구자로 알려져 있다. 1908년 와세다 대학 야구부와 메이저리그 선발팀과의 친선경기 때 시게노부 전 총리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다. 메이저리그의 시구는 그보다 2년 늦은 1910년이었다.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시구를 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운동장 MBC-삼성의 프로야구 개막전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시구자 역시 대통령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1982년 3월27일, 동대문 구장에서 MBC와 삼성의 첫 경기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했다. 당시 개막전 심판으로 예정됐던 이가 전날 저녁 자리에서 “내가 내일 대통령 나오는 경기 심판을 맡는다”고 얘기했다가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교체된 사실은 이제 잘 알려진 얘기다.

이후 프로야구 개막전은 ‘정치인’들의 독차지였다. 체육부 장차관과 지자체장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개막전에서 ‘연예인’이 처음 시구의 주인공이 된 것은 1989년 4월 8일, 광주구장 해태-빙그레전이었다. 그때 최고 인기 영화배우였던 강수연이 마운드에 올랐다. 같은 해 잠실 OB-LG전에서는 OB베어스 성인 회원 1호인 이국신씨가 시구를 했다. ‘일반인’으로서는 첫 개막전 시구였다.

OB베어스는 1994년 쌍방울과의 개막전에 처음으로 어린이팬 시구를 선보였고, 1996년 삼성과의 개막전에서는 탤런트 채시라씨를 시구자로 내세웠다. 두산의 ‘연예인 시구’ 전통은 아주 오래된 셈이다.

1998년 잠실 LG-현대전에서는 영화배우 한석규씨가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개막전 시구자로는 첫 남성 연예인이었다.

야구 선수가 개막전 시구자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와서다. 2002년 두산-KIA의 개막전에서 두산의 ‘레전드’인 박철순이 시구를 했고, 영화의 흥행덕분에 2004년 문학 SK-LG전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였던 감사용이 마운드에 올랐다. 박철순은 김우열과 함께 2011년 잠실 두산-LG전에서도 시구·시타자로 나섰다.

지난해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2014프로야구’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 앞서 펼쳐진 식전행사인 ‘Together 팬+응원단 합동공연’에서 치어리더가 어린이를 비롯한 서포터즈와 함께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15시즌은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5개 구장에서 개막전이 열린다. 눈에 띄는 시구는 역시 삼성과 SK가 맞붙는 대구경기다. 신축구장 개관으로 올시즌이 마지막이 될 대구구장을 기억하기 위해 원년 삼성 어린이 회원인 박용현씨가 아버지 창기씨, 아들 성호군과 함께 시구, 시타, 시포를 나눠 맞는다. 오랜 대구구장의 역사, 그리고 3대가 함께 즐기는 종목 야구에 잘 어울리는 시구다.

롯데는 KT와의 사직 개막전에서 고 최동원 감독을 추억한다. 최 감독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가 마운드에 올라, 최 감독 특유의 투구 동작으로 시구를 할 예정이다.

NC와 두산이 맞붙는 잠실 경기에서는 걸그룹 AOA의 지민, 찬미 두 멤버가 각각 시구와 시타를 하고 LG와 KIA의 광주 경기에서는 윤장현 광주 시장과 초등학생 야구팬 임지용군이 함께 시구에 나선다. 한화와 넥센의 목동 경기에서는 걸그룹 포미닛의 전지윤양이 시구를 맡았다.

이제 오래 기다렸던 프로야구가 이들의 시구와 함께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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