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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차두리, 눈물쏟으며 떠나다

전설을 보내야 하는 축구팬의 아쉬움을 알았을까. 하늘에선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에 비를 뿌렸다. 축구팬들은 비를 맞고도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일어서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지난 14년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고마움과 그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소리쳤다. “차두리 고마워.” 3월의 마지막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국가대표 차두리(35·서울)를 보내는 팬들의 애잔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축구대표팀 차두리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전 감독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차두리가 이날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76번째 마지막 A매치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선 차두리는 전반 43분까지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며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의 배려 아래 은퇴식이 아닌 은퇴 경기를 치른 차두리는 38회의 볼터치를 하며 날카로운 크로스를 여러차례 올렸다. 마지막까지 녹슬지 않은 경기력을 보인 차두리는 전반 막판 김창수와 교체됐다. 뉴질랜드 선수들까지 가세해 그라운드를 떠나는 차두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차뒤는 지난 2001년 11월8일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교체투입돼 국가대표로 공격수로 데뷔한 이후 13년 143일 동안 4골·7도움을 남기고 긴 여정을 마쳤다. 여러차례 대표팀을 들락날락하기도 했고,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곡절도 있었다. 월드컵 본선에 2번은 나섰고, 2번은 나서지 못하는 등 부침도 있었지만 그는 늘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뛰었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혼신의 힘을 쏟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뒤 하프타임에서 차두리는 등번호가 황금색으로 새겨진 ‘은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은퇴행사를 치렀다. 라커에 들어가지 않고 중앙선 양쪽에 도열한 대표 선수들 틈으로 등장한 그는 후배들을 모두 끌어안아줬다. 포옹을 마친 뒤 차두리는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지난 14년간 자신의 국가대표 활약 영상을 지켜봤다.

팬들은 붉은색의 ‘차두리 고마워’가 씌어진 플래카드를 일제히 흔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던 차두리는 이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감정을 추스르고 팬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쳤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감사패와 응원단 붉은악마 대표의 기념선물을 받은 뒤 그의 아버지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이 등장했다. 가장 존경하지만 축구선수로는 넘기 힘들었던 거대한 산과 같았던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은퇴경기에 꽃다발을 들고 나왔다.

차두리는 아버지 품에 안겨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많은 부담감을 안고 태극 마크를 달고 뛰었던 그는 힘든 과정 속에서도 국가대표로 마무리한 감회를 눈물로 쏟아냈다. 팬들의 함성 속에 감정을 추스른 차두리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며 지난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돌아봤다. 그는 “잘 하진 못했지만 항상 열심히 하려는 선수였고, 그걸 알아주신 것 같아 마지막에 행복하게 대표팀 유니폼 벗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절친한 후배 손흥민(레버쿠젠)은 이날 자신의 이름 이니셜과 태극기에 ‘두리형 고마워’라는 문구가 들어간 특별 축구화를 신고 나서 띠동갑 선배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한국은 후반 41분 이재성(전북)이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뉴질랜드를 1-0으로 제압하며 떠나는 차두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겼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차두리도 번쩍 일어나 후배들과 함께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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