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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MVP’ 박혜진 “꼴찌 아픔 잊지 않았기에”

“4년간 꼴찌했던 아픔을 잊지 않고 있었죠.”

여자프로농구 춘천 우리은행의 가드 박혜진(25)은 2014~2015 시즌 ‘별중의 별’로 우뚝 섰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거머쥐며 ‘통합 MVP’에 올랐다. 시즌 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해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최고의 해피엔딩을 맺었다. 구단 행사와 우승 인사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혜진을 봄꽃이 핀 서울 정동의 돌담길 인근에서 만났다.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싹쓸이한 우리은행 박혜진은 “아직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남들이 무서워하는 선수로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새출발을 다짐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아픔과 시련을 되새기며

박헤진은 “팀을 대표해 감독님 코치님과 우승인사 다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 재미있다”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3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우리 왕조’를 세웠는데 이제 감흥이 좀 떨어지지 않냐고 하자 대번에 목소리를 높였다. “3년 연속 우승하기 전에 우리 팀은 4년 연속 꼴찌를 했어요. 그땐 우리은행의 꼴찌는 늘 당연한 듯 했죠. 그때의 아픔을 잊을 수가 없어요. 힘든 기억이 있기에 훈련 때에 더 힘을 냈죠. 언니들과 다시는 그때로 되돌아가지 말자고 얘기를 했어요.”

굳건해 보이는 우리은행의 통합 3연패는 앞선 아픔을 딛고 이뤄낸 반전이기에 더 높게 평가받는다. 박혜진은 우리은행의 반전을 관통하는 산증인이다. 신인왕을 차지한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나섰으나 팀은 4년 동안 계속 꼴찌를 했다. 박혜진은 “그때는 코트를 뛰어도 그저 시계추와 같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면서 “아무 생각없이 오가기만 했던 시기”라고 떠올렸다.

그러나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위성우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와 우리은행의 농구가 달라졌다. 박혜진은 “농구에 대한 태도와 스타일, 마음가짐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면서 “감독님은 제겐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위성우 감독을 통해 몸을 단련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농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배웠고, 기술적인 약점도 지도받았다. 스피드와 돌파 능력이 좋은 박혜진은 위 감독의 조련으로 슛폼을 바꿔 안정되고 정확한 슛을 장착했다. 이번 시즌에는 수비에도 한층 눈을 떠 한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박혜진의 이번 시즌 성적(경기당 10.5점·3.1어시스트·5.5리바운드)은 앞선 2013~2014 시즌(12.6점·3.7어시스트·4.9리바운드)보다 다소 떨어져 보인다.

위성우 감독은 “발목 부상 여파와 샤데 휴스턴이라는 공격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가 오면서 개인 공격보다는 팀을 위한 플레이에 집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팀공헌도의)큰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리바운드와 스틸 등 궂은일과 수비를 나타내는 지표는 앞선 시즌보다 훨씬 상승했다. 박혜진은 “지난 2년간은 수비할때 볼만 따라가는 상황이 많았는데 올해는 볼의 길이 보여 스틸도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들이 버거워 하는 선수가 되겠다.”

이번 우승은 팀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언니 박언주(27)와 함께 이룬 결실이어서 더욱 각별했다. 박혜진은 “언니가 이번에 우승못하면 자신 탓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과가 좋아 참 기뻐했다”면서 “나한테도 정말 고맙다고 얘기하는데 울컥했다”고 말했다.

박혜진은 이날 언니와 함께 이번 시즌 처음으로 고향 부산에 내려간다고 했다. 우승 후 각종 행사 등으로 시간이 미뤄졌는데 그래도 어머니 신지우씨(56)의 생일날 내려가게 돼 다행이라고 활짝 웃었다.

떠나기 전 우리은행의 4연패 도전과 농구 선수 박혜진의 미래를 물었다. 그는 “지난 시즌 뒤에도 주위에서는 올해 우리팀 우승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꼭 우승을 말하진 않겠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색깔을 갖고 팀원이 뭉친다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진은 “팀 성적 덕에 상을 받았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예전에 통합 MVP를 받았던 전주원 코치님이나 정선민 코치님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자신의 현재를 말했다. 그래서 그는 멈추지 않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신인 때 전주원 코치를 맡은 적이 있는데 그땐 정말 도저히 뚫을 수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상대라는 생각만 들었죠.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어요. 나도 그렇게 다른 선수들이 버거워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남자 농구 양동근(모비스) 선배처럼 나이가 들어도 성실히 노력하면서도 체력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올 시즌 최고의 별로 인정받았지만 박혜진은 더 발전해야 하는 목표와 열정을 품고 있다. 한국 여자농구 현재이자 미래인 박혜진의 농구가 얼마나 더 발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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