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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사커] ‘제주의 눈물’과 징크스

징크스란 참 묘하다.

어느틈엔가 슬금슬금 자라나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재수 없고 불길한 현상에 대한 인과 관계적 믿음을 이르는 징크스(jinx).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반복되는 나쁜 결과가 마뜩잖다.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되면 인식과 심리까지 지배되기 마련이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불안함이 엄습해 악순환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는 4일 FC서울과의 K리그 클래식 4라운드에서 지긋지긋한 징크스에 또 한번 땅을 쳤다. 제주는 이날 경기에서 지난 7년 동안 8무13패로 1승도 건지지 못한 서울전 무승 징크스를 깨겠다고 별렀다. 제주는 슈팅 14개를 퍼부으며 맹공을 펼쳤다. 앞선 대전전에서 5골을 넣었던 공격진의 자신감을 앞세워 서울에 정면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또 제주편이 아니었다. 제주의 결정적인 슈팅은 서울 골키퍼 김용대의 선방에 막혔다. 오히려 후반 44분 불운한 골을 내줬다. 서울의 세트피스에서 수비수의 헤딩이 제주의 골대를 맞히더니 흘러나온 볼을 서울 공격수 에벨톤이 밀어넣었다. 제주의 서울전 징크스 탈출은 또 다시 실패했다.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 김호준이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FC서울전에서 헤딩하려는 김현성과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판에는 제주처럼 징크스에 시달리는 팀들이 많다. 잉글랜드의 스웨덴 무승 징크스가 대표적이다. 객관적 실력으로 보면 잉글랜드가 스웨덴에 밀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1968년에 5-1로 이긴 이후 무려 43년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10번을 맞붙었는데 7무3패를 기록하며 축구종가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다 유로 2012에서 난타전 끝에 3-2로 이겨 지긋지긋한 징크스에서 탈출했다.

한국 축구도 이란 원정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란과 맞붙어 2무4패에 그치며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중국 축구는 악몽같은 ‘공한증 징크스’에 시달렸다. 중국은 1978년 이후 32년간 한국 축구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무려 27번을 싸워 11무16패로 철저히 밀렸다. 그러다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을 꺾고 32년 만에 지긋지긋한 무승의 사슬을 끊었다.

월드컵에서는 남미와 유럽이 상대 개최 대륙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면서 징크스는 깨졌다.

심리적인 불안과 연계된 징크스를 떨쳐내기 위해 선수들은 독특한 주술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꽃미남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현역 시절 냉장고, 진열대에 있는 물건이 홀수로 짝이 안 맞거나 가지런히 정리가 돼 있지 않으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경기 전에 늘 깨끗하게 정리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기까지 했다. ‘UFO 프리킥’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경기에 졌을 때 신었던 축구화를 두 번 다시 신지 않아야 직성이 풀렸다.

징크스는 당사자들에게 심리적 불안과 부담을 야기시켜 상황을 계속 어렵게 만든다. 쉽지 않겠지만 억눌린 마음의 짐을 덜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징크스를 털어내는 지름길이다. 오는 7월 1일 홈에서 ‘22전23기’ 서울전 승리에 도전하는 제주에게 필요한 건 집착 대신 여유일 것이다. 그동안 숱한 징크스들도 언젠가는 깨졌다는 사실을 위안삼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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