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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화개장터라면 전라도엔 인월장이 있지라~

전북 남원 ‘인월장&와운마을’

경상도에 화개장터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인월장이 있다. 지리산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전통 5일장이다. 한번 사면 마르고 닳도록 쓰는 생활용품, 지리산 언저리에서 수확한 제철 먹거리, 시끌벅적 흥정 소리에 인심이 오고 간다. 삶이 살아 숨쉬는 장터는 새 생명 움트는 봄처럼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인월장은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서 열리는 5일장이다. 끝 자리가 3·8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선다. 인월(引月)이란 지명은 ‘달을 끌어온 곳’이라는 뜻. 고려 말(우왕 6년) 이성계의 황산대첩에서 유래됐다. 1380년 이성계는 람천과 인월을 사이에 두고 왜장 아지도발과 대치한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 그는 달이 떠오르기를 하늘에 빈다. 그러자 둥근 달이 솟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고, 이때를 놓칠세라 신궁에 가까운 활 솜씨로 왜장을 쓰러뜨린다. 이성계가 달을 끌어온 곳이 바로 인월이다.

와운마을 들머리계곡

당시 아지도발이 흘린 피는 바위를 뒤덮었고, 왜구는 전멸했다. 람천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너럭바위가 바로 왜장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든 피바위다. 피바위는 봄비에 붉은 때깔이 더욱 선명하다. 지난 세월을 머금고 유유히 흐르는 람천을 따라 인월면으로 들어선다. 동서남북으로 경남 함양과 운봉읍·산내면·아영면에 둘러싸인 인월면에 조선시대 때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 그 역사가 100년을 넘는다. 지리산 성삼재나 정령치로 가는 길목에 놓여 예부터 상권이 좋았다.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인근 지역은 물론 구례·곡성에서도 발품을 판다. 흥부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장터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 지리산 정기를 품은 산나물과 약초가 지천이고 곡식과 밑반찬, 제철 과일과 곶감, 농기구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그중 토종 흑돼지가 인기다. 전국 면 단위 중 정육점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여기란다. 토종 흑돼지는 해발 500m 청정 고지대에서 친환경 사료를 먹여 키운 까닭에 육질이 연하고 지방도 적다.

이곳 상인 대부분은 토박이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 평생을 장터에서 보냈다는 할머니는 “피땀 흘려 가꾼 농산물과 자연이 내준 선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평생 해왔다”며 “외지인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장터다”라고 말했다.

‘영호남 화합의 장터’는 토요상설시장도 운영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리는 상설시장에서는 관광객을 위해 국악 공연과 약장수·엿장수 공연, 장기자랑 등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인월장은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한푼이라도 깎고 더 받으려는 흥정으로 여기저기 부산하다. 세월이 흘러 재래시장도 점차 바뀌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평생을 장터와 함께 살아온 촌로들의 후한 인심과 정이다.

예까지 왔으니 지리산 정기 머금은 ‘천년송(千年松)’을 보러 와운마을로 향한다. 와운마을은 인월면과 이웃한 산내면 부운리 해발 800m에 터를 잡고 있다. ‘지나가는 구름도 힘에 겨워 누워 간다’는 첩첩산중 마을이다. 과거 ‘눈골’ ‘누운골’로 불렸던 마을은 지리산 뱀사골 초입 반선(伴仙)을 들머리로 삼아 오르는 와운골 끄트머리에 박혀 있다.

인월장

마을의 기원은 천 년을 훌쩍 넘어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북부사무소 자리에 있던 송림사(松林寺) 창건과 함께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와운교1에서 마을까지는 3㎞ 거리. 울창한 숲길, 계류를 따라 간다. 30여 분 발품을 팔아 도착한 마을은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반야봉(해발 1732m) 명선봉(해발 1586m) 형제봉(해발 1115m))에 둘러싸여 포근하고 아늑하다.

산나물과 약초를 캐고 민박을 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그 옛날 대처인 함양·남원·구례까지 70리(약 28㎞)를 걸어다녔다. 소금을 얻기 위해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 하동장까지 다녔다고 한다. 당시 소금을 지고 오다 뱀사골 가파른 계곡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바람에 물색이 간장처럼 변했다는 ‘간장소’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다.

마을의 명물은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이다.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소나무다. 늙고 거대한 소나무는 명선봉에서 영원령으로 타고 내려온 해발 800m 지점에 뿌리박고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20m 간격으로 산자락에 뿌리박고 선 소나무는 할매나무와 한아시(할아버지)나무 두 그루. 이 중 아래쪽 큰 나무(할매나무)가 천년송이다. 높이 20m, 둘레 6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이 12m에 이른다. 천년송의 수령은 사실 1000년이 아니다.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했다고 하니, 대략 500~800살쯤 된다.

예부터 아이를 낳지 못한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마을 부녀자들이 아이를 가지면 이 소나무 아래서 태아에게 솔바람 소리를 듣게 해 일명 ‘솔바람 태교’의 원조가 됐고, 시인 송수권은 이 나무를 보고 ‘솔바람 태교’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겨 매년 음력 1월10일 새벽에 당산제를 지낸다. 수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인함이 넘치는 천년송은 지리산의 당당함을 빼닮았다.

마을에서 면 소재지로 내려서기 전 뱀사골로 든다. 와운교2를 들머리로 삼아 오르는 계곡은 남원의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이자 단풍 명소다. 다리 아래 요룡대에서 이무기가 용이 돼 하늘로 오르다 떨어져 파였다는 탁용소를 지나 금포교까지는 뱀사골에서 가장 수려한 계곡미를 자랑한다. 여기서 뱀이 꿈틀거리는 모양의 뱀소, 바위 틈 물길이 병을 닮은 병소, 병풍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병풍소, 고승의 영험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재승대, 보부상들이 소금을 지고 넘어오다 빠졌다는 간장소를 거치면 뱀사골 정상인 화개재다. 뱀사골 숲길은 넓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부담 없다. 새순 돋는 숲에서 봄을 만끽하며 슬렁슬렁 걷다보면 어느새 지리산의 포근한 품에 깊숙이 안긴다.

◆귀띔

■찾아가는 길:서울-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17번국도-임실-남원-운봉읍-인월면


■주변 볼거리:실상사(사진), 바래봉 철쭉, 봉화산 철쭉,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혼불문학관, 만복사지, 만인의총, 요천수상유원지, 교룡산성, 육모정, 춘향묘, 구룡폭포, 정령치마애불상, 남원자연휴양림, 흥부 출생지, 흥부 발복지 등

■맛집:새집(추어탕, 063-625-2443), 남원추어탕(063-625-3009), 뱀사골산채식당(063-626-3078), 천왕봉산채식당(063-626-1916), 일출산채식당(063-626-3688), 유성식당(지리산 흑돼지, 063-636-3046), 이화회관(한정식, 063-625-8332), 두부마을(두부전골, 063-633-9915) 등

■축제:바래봉철쭉제&봉화산철쭉제(매년 4월 말~5월 중순)

■숙박:남원자연휴양림(063-636-4000), 흥부골자연휴양림(063-636-4032), 지리산용궁가족휴양림(063-636-8253), 구룡관광호텔(063-636-5733), 일성지리산콘도(063-636-7000), 코비스콘도(063-636-3663), 중앙하이츠콘도(063-626-8080) 등

■문의: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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