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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홈런왕, 방어전은 ‘빨간불? 파란불?’

어쩌면 그 자리는 자존심 싸움의 장이다.

1998년 KBO리그에 용병 제도가 도입된 뒤로 괴력의 외국인타자들이 등장했지만,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간 것은 두 차례 뿐이었다.

1998년 OB 베어스의 타이론 우즈가 홈런 42개를 때리며 타이틀을 손에 넣었고, 2005년에는 현대 유니콘스 래리 서튼이 홈런 35방으로 정상에 섰을뿐, 대부분 시즌의 홈런왕은 토종 거포들의 차지였다.

왼쪽부터 테임즈, 박병호, 나바로.

사실, 지난해부터 외국인타자가 팀당 1명씩 가세하기까지 KBO리그에서 외국인타자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2013년까지는 외국인선수 보유 인원 2명을 모두 투수로 채우는 게 당연시되다시피 했다.

외국인타자 9명이 합세한 지난해에도 홈런왕 경쟁은 박병호(넥센)의 독주 속에 끝났다. 박병호는 홈런 52개를 터뜨려 2003년 이승엽(삼성) 이후 11년만에 50홈런 시대를 다시 열며 외국인타자 가운데 홈런을 가장 많이 친 테임즈(NC·37개)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올해는 아직 초반이지만 예측불허의 레이스가 전개되고 있다.

27일 현재 테임즈와 나바로(삼성)가 나란히 홈런 9개를 걷어올려 부문 공동 선두로 4월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유한준(넥센)과 황재균(롯데)이 홈런 7개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거포 그룹’인 박병호와 최형우(삼성)는 홈런 6개로 한 발짝 물러나있다. ‘홈런의 전설’ 이승엽(삼성)이 불혹의 문턱에서도 홈런 6개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것도 전체 판세를 흥미롭게 한다.

일단 홈런왕 레이스는 초여름은 돼봐야 선두 그룹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토종 거포들의 홈런왕 사수 가능성도 그쯤 돼야 1차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6월은 지나야 장기레이스를 버티는 팀의 스태미너뿐 아니라 개인의 지구력도 판별되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박병호는 4월까지 24경기에서 홈런 6개에 머물렀지만, 5월에 홈런 14개를 몰아치고, 6월에 9개를 쏘아올리면서 홈런왕 판도를 정리했다.

그래도 올해는 외국인타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 초반 가장 뜨거운 페이스를 보인 테임즈가 지난해 이미 풀타임을 뛰며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인 데다 지난해 공수에서 만능 플레이를 보인 나바로가 업그레이드된 장타력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타율 3할8리에 31홈런을 때린 나바로는 타율이 2할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데 타율을 점차 끌어올리면서 홈런 포문은 어떻게 관리할지 그 또한 주목할 포인트가 되고 있다.

여기에 시즌 초반을 극심한 부진 속에 보낸 브라운(SK)이 홈런 6개를 때린 가운데 점차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도 감안할 부분이다.

토종 거포와 외국인 거포간의 역대 홈런 대결 중 백미는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을 지나기까지 이어진 이승엽과 우즈의 경쟁이었다. 이승엽은 첫 대결이던 98년 우즈에 역전패를 했지만, 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간 4차례 홈런왕에 오르며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그 과정은 프로야구 팬들에게는 풍성한 볼거리가 됐다. 올해도 비슷한 스토리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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