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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차도녀’ 선입견 스스로 벗겨낸 ‘재투성이 신데렐라’ [인터뷰]

배우 수현(30)은 2015년 4월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다. 그는 2005년 한중 슈퍼모델대회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 2006년부터 연기를 해왔다. 딱히 대단한 히트작이 있거나 많은 작품을 했던 것도 아니다. 한국영화에 출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김수현’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연예계에 굉장히 흔했고, ‘클라우디아 김(Claudia Kim)’이라는 영어 이름은 영어권 국가 사람들에게 어려웠다. 그런 그를 가장 주목받게 만든 것은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 단 한 작품이었다.

그는 극중 지구를 지키는 슈퍼 영웅들의 모임 ‘어벤져스’를 측면 지원하는 유전공학자 헬렌 조를 연기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마블의 영화에 출연한 사람이 됐다. 덕분에 지난해 <어벤져스2>의 한국촬영과 더불어 그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 <마르코 폴로> 첫 시즌 촬영을 마치고 다음 달 초부터는 두 번째 시즌을 촬영한다. 그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냥 묵묵히 연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영화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엄청나게 변했다.

배우 수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현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에서 한국인 과학자 헬렌 조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지나가면 많은 분들이 제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성(姓)이 ‘어벤져스’가 된 느낌이에요. 지나가도 ‘어벤져스 수현이다’하는 반응이 나오고, 인터넷을 쳐도 ‘수현’이라는 이름 앞에는 반드시 ‘어벤져스’라는 이름이 붙거든요.”

주요 촬영은 이미 지난해 끝이 났고, 미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의 홍보 일정도 마무리했기 때문에 <어벤져스2>는 수현에게는 조금 섣불리 말하면 ‘지나간’ 작품이 됐다. 그래서인지 수현은 영화 개봉 이후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경외감 넘치는 시선에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어벤져스2>는 필모그래피 중 한 작품일 뿐이었다.

배우 수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현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에서 한국인 과학자 헬렌 조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촬영에서 개봉까지 기다림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스스로 ‘이제 됐어’하는 들뜬 생각보다는 ‘마블이고 <어벤져스>를 떠나서 앞으로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많았거든요. 할 건 다 했으니까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 필요했죠.”

그는 한국에서는 177㎝의 장신과 하얀 피부로 모델로 데뷔할 때부터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주로 멜로나 극적인 상황을 겪는 여주인공보다는 차갑고 이지적인 매력의 여성을 주로 연기했다. 드라마 <게임의 여왕> <도망자 플랜비> <로맨스 타운> <브레인> <7급 공무원> 등의 작품을 보면 그의 캐릭터 설명 앞에 ‘차갑고’ ‘이지적인’ ‘도도한’이란 수식어가 안 붙는 경우는 없었다. 단 한 번 MBC 시트콤 <스탠바이>에서 소탈한 매력을 보였다.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헬렌 조 역을 연기한 수현의 극중 스틸.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수현은 충분히 예뻤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았지만 그가 제대로 된 연기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하기에 국내 드라마 시장은 좁은 공간만을 허락할 뿐이었다. 드라마에서 그는 내내 차가웠으며 도도했고 또한 이지적이어야 했다. 어린 시절 언론에 관심이 있어 영자신문 기자를 했을 정도로 세상에 관심이 많고 욕심도 많던 그에게 그 공간은 너무 좁았다. 어느새 나이는 여배우의 전성기라는 20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소속사 동료 다니엘 헤니(36)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영화를 하고 싶었고,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가 아닌 캐릭터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게 들어오는 역할은 그런 역이 아닌 게 없었죠. 다니엘을 보면서 할리우드 오디션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저도 뭔가 다른 연기를 하고 싶고 극중에서는 ‘복수’가 아닌 다른 이유로 사는 사람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할리우드는 모든 게 열려있었고 의외로 기회도 빨리 왔어요.”

배우 수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현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에서 한국인 과학자 헬렌 조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미국으로 넘어간 수현은 나이나 배경 그리고 키를 밝히지 않고 철저히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오디션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차도녀’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이 미국에서는 달랐다. 조금씩 결과가 나왔다.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오디션에서는 낙방했지만 덕분에 <마르코 폴로>의 캐스팅 디렉터를 만나 촬영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해외라고 해서 촬영이 다르지 않아요.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마블의 영화 경우에는 대스타를 많이 이끈 경험이 있기 때문에 배우를 많이 위해줘요. 제가 받은 인상은 더 많은 인기를 얻고자 또는 돈을 더 벌자는 마음이 아니라 영화에 합류하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내는 ‘여유’였죠.”

배우 수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현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에서 한국인 과학자 헬렌 조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어벤져스2>의 남자 배우들은 영국 런던 홍보일정에서도 자기들끼리 모여 선술집에 가기도 했다. 배우인 그들에게는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가지는 묘한 자존심은 없었던 셈이다. 오히려 헐크 역 마크 러팔로나 블랙 위도우 역 스칼렛 요한슨은 “우리는 인디 배우인데 이게 뭐지?”라고 도리어 이 상황을 어색해했다. 결코 작품에 쏟는 자본의 양이나 촬영규모에 짓눌리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영관이 모두 <어벤져스2>에만 몰리고, 이 영화를 피해 상영일자를 잡아야 생존할 수 있는, 영화의 무게에 마구 짓눌리는 한국영화 시장의 단면이 보였다.

“1년 동안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일까’ 초조하게 기다렸던 모습이었다면 동료 배우들에게서 자유분방하고 편안한 에너지를 받았어요. 이제는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기대가 커도 좋을 것 같아요. 이미 한국 작품의 위상이 커졌거든요. 한국 영화만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캡틴 아메리카 역 크리스 에반스도 한국영화 <설국열차>에 출연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충분히 성장했고, 미국 현지에서도 소수인종의 활약이 환영받고 있거든요. 확실히 경계가 줄어들고 있어요.”

배우 수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현은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에서 한국인 과학자 헬렌 조 역을 맡았다. 사진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그는 데뷔 10년을 돌아보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분명 다른 세계에서 체화한 여유가 배어나오는 것일 테다.

“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죠. 이제 시작이에요. 한국에서 꼭 유명해져야 할리우드를 간다는 선입견에 깨졌다는 게 기뻐요. 제가 국내에서 유명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이 행복하죠. <어벤져스2>는 제게 경력이 많이 된 작품이에요.”

수현은 ‘마블의 신데렐라’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동화 속 신데렐라는 ‘재투성이’에서 노력과 그에 따르는 기회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큰 키에 주목받는 외모는 국내에서 분명 ‘득(得)’보다는 ‘실(失)’이었다. 우리가 수현을 주목하고 앞으로의 연기를 봐야하는 이유는 그가 <어벤져스2>라는 대작에 출연한 배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가로막는 일종의 편견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스스로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그에 대한 과도한 열광도, 섣부른 우려도 지금은 필요없다. 일단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가 쓰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가 넘어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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