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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주년 특집 인터뷰]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 남자의 성공 비결

모든 운동선수는 한 집안의 기둥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다.

프로야구선수로 성공한다는 것, 그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부모와 아내와 자녀들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포츠경향’은 가정의 달 5월, 창간 10주년을 맞아 프로야구 가족을 통해 가정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가장 잘 나가는 형님, 이호준(39·NC)의 집을 찾아가 그 아내 홍연실씨(37)를 만나봤다.

NC 다이노스 이호준 가족이 창원의 집에서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창원|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결혼 잘 했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 남자의 활약, 그 비결은 결혼생활 15년째에도 여전히 신혼같은 바로 이 집 안에 있었다.

이호준은 지금 기러기 아빠다. 이호준은 2013년 NC로 이적한 뒤 창원에 내려가있지만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은 인천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호준이 수도권으로 원정을 가면 집에 들르기도 하고, 홈 경기를 할 때는 아내가 창원으로 내려간다. 창원 집의 살림과 함께 일주일 동안 일용할 양식들을 챙겨놓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NC의 홈경기가 있던 지난 9일, 경남 창원시 대원동에 위치한 기러기 아빠 이호준의 ‘싱글하우스’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아들 동훈(13), 딸 동영(10), 막내 아들 동욱(7)이가 모두 모여 시끌벅적했다. 어쩔 수 없이 떨어져지낸 지 3년째, 오히려 더 진해진 가족애를 거침없는 입담가 이호준과 특급 ‘내조의 여왕’ 홍연실씨의 대화로 느껴보았다.

-와보니 전혀 남자 혼자 사는 집 같지 않은데요.

아내=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제가 페인트칠도 하고 못도 박고, 이렇게 되기까지 힘들었어요.

-주말부부 생활은 어떠세요.

남편=처음에는 밥 먹는 것이 좀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아내가 이 생활에 숙달됐는지 잘 하네요. 사골국 같은 것을 끓여놓고 가서 잘 먹고 있죠.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자꾸 보고 싶다고 평일에도 오려고 하네. 나이 먹더니 신랑밖에 안 찾는 것 같아요.

아내=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더니 싱글의 생활을 즐겨봐야겠다며 처음에는 좋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부부가 가끔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 애틋하고 보고 싶기도 한 것 같아요. 떨어져있으니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비해 야구를 잘 해주니 제가 고맙죠. 사골국 끓여서 얼려놓고, 밥도 해놓고 얼려놓으면 전에는 안 먹더니 요즘엔 와보면 다 먹었더라고요. 젊을 때는 한약도 많이 먹고 영양제도 하루에 30~40개씩 먹더니 요즘엔 오히려 안 그래요. 나이 드니 약 먹는 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다고, 밥심으로 운동해야 한다면서 잘 먹어요.

이호준이 창원 집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고 있다. 이호준의 손톱 발톱은 아내가 깎아준다고 한다. 창원|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남편=사실 나는 이 사람 올 때까지 발톱도 안 깎고 기다려요. 손톱, 발톱 모두 항상 이 사람이 깎아주거든요. 지금 2주 동안 이 사람이 못 와서 내가 너무 더러워서 손톱은 깎았는데 발톱은 안 깎았어요. 내가 허리가 좀 안 좋아서 그런 거 보호해주려고 이 사람이 해주거든요. 그리고 우리끼리 또 나 출근할 때 항상 하는 게 있는데 이따 보세요. 허리가 아프니까 신발도 이 사람이 항상 신겨주거든요.

-아니, 도대체 이런 아내를 어떻게 만났나요.

남편=소개팅을 하려고 했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간 거에요. 그래서 내 시간이 떠버렸죠. 그러자 주선자가 후배랑 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 하더라고요. 그 후배가 이 사람이에요. 자연스럽게 식사를 같이 하고 집에 데려다주는데 둘 다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고, 어머니는 육상선수 출신이더라고요. 공통점이 많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처음 시작했죠. 그러고 나는 며칠 있다 바로 마무리캠프를 갔어요. 결정적으로 이 사람이 나한테 반한 건 두번째 데이트였지. 캠프 가기 전날이었는데, 당시 나는 차가 없고 이 사람은 차가 있었어요. 세차를 하고 왔더라고요. 그런데 차 안에서 내가 속이 좀 안 좋아서 ‘방귀좀 뀌어도 될까요’ 하고 뀌었어요. 그러고 창문을 내리려고 하는데 세차를 하고 와서 겨울이라 창문이 얼어서 안 내려가더라고. 속으로 진땀 흘렸죠.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나한테 뿅 간 것 같아요. 스스럼 없는 이 남자다운 모습에.

-설마…. 정말인가요.

아내=(한동안 웃느라 말을 하지 못하다) 꾸밈이 없잖아요. 사실은 처음 봤을 때는 큰 소리 많이 치고 자랑도 많이 하고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하더라고요. 경제력과 인맥 같은 것들. 저도 귀가 얇은 편이라 ‘아, 그래요? 오빠 대단하시다’ 이랬는데, 만날수록 알게 된 거죠, 그 실체를. 그런데 그때는 배신감이라기보다 이미 돌이키기에 너무 좋아하게 돼버린 상태였어요. 이 사람 나 아니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스물 네살이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그때의 이호준을 만났다면 아마 결혼 안 했겠죠. 하하.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잖아요.

남편=그게 원래 비꼬는 얘기잖아요. 꼭 FA 되는 해에 잘 한다고 해서. 2군에서 1군 도전할 때 3할 한 번, FA 할 때 3할 한 번씩 쳤다고. 나는 사실 타율 신경 안 쓰고 홈런과 타점에 목숨 거는데, 희한하게 꼭 그렇게 돼버렸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말 듣고 기분이 많이 상했는데 이 사람이 얘기하더라고요. 살면서 그런 일 한 번도 없는 사람 많을텐데 인생에서 대박 한 번은 쳤지 않냐고. 좋은 얘기로 생각하라고요.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다보니 나도 애착이 생겼죠.

아내=최고의 별명 아닌가요. 저는 그말이 참 마음에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 요즘 최정점에 가있는 것 같은데.

남편=가족 덕분이죠. 가정이 편안해야 내 야구도 잘 되고 후배들한테 좋은 말이라도 한 마디 할 수 있잖아요. 요즘 또래끼리 얘기하다보면 대부분 애들 얘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학교 가서라도 아빠 부끄러워하지 않게 잘 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뒷바라지 해줘야 되는데 걱정이다 뭐 대부분 대화가 그래요. 결과적으로 야구에는 팀도 있지만 그 안에 가족이 포함되는 거죠. 가족 위해서 뛴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힘들때 가족 얼굴 한 번 더 생각하면 하기 싫어도 하게 되죠. 요즘은 나이 드니까 자꾸 아파서 화가 나더라고요. 페이스는 좋은데 아프니까. 옛날같으면 그럴 때 ‘에라 쉬자’ 하고 술 한잔 먹어버리고 놀고 털었겠죠. 20대에는 그랬어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도 되니까.

NC다이노스 이호준과 부인 홍연실씨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창원|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아, 그래서 결혼하고 사람됐다고들 이야기하는 건가요.

남편=그 얘기 많이 들었죠. 난 인정할 건 인정해. 하하. 결혼하고 큰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때 정말 분유값, 기저귀값 때문에 이 악물고 야구했어요. 연봉 많은 선배들이 ‘느그 아들 분유 뭐 먹이냐’ 하기에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여보, 그게 좋다는데 우리도 사 먹이자’ 했더니 이 사람이 ‘우리 연봉에 턱도 없는 소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말에 충격 먹었죠. 애를 낳기만 한다고 가장이 아니잖아요. 그거 하나 못 먹이나 싶어 진짜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아들 보면서 ‘내 새끼 저 분유 하나 못 먹이나. 내가 꼭 먹인다’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아내=다들 처음부터 잘 산 줄 아시더라고요. 결혼 초기에 빚이 많았어요. 전세 대출 원금과 이자 같이 갚으니까 생활비가 50만원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남편=그러고보면 우리 아이들 셋 중 막내가 제일 복덩이에요. FA 하고 태어나서 분유도 최고급 산양 분유로 먹였거든요. 하하하.

-야구선수 이호준의 아내로 살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아내=첫번째 FA 하기 전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애는 낳았는데 남편은 집에 없을 때가 많으니까 여러가지로 티격태격도 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 또 남편이 그때는 잔부상이 참 많았어요. 재활할 때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힘들거든요. 그런 것들이 참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참을만한 정도였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데 더 힘든 일도 생기겠죠. 사실 지금도 저는 12월이 되면 이 사람 되게 미워요. 야구선수들이 시즌 끝나면 집에 충성할 것 같죠? 맨날 밖에 나가요. 자기도 시즌 동안 고생했으니 겨울엔 좀 쉬고 사람도 만나야지 이해는 하는데 또 그게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서 1년 동안 잘 참다가 꼭 12월에 한 번씩 싸우거든요. 하하. 그런데 3월만 되면 또 남편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도 남편이 참 좋아요. 이 사람도 잘 알죠.

-야구선수의 아내로서 가장 큰 내조는 무엇일까요.

아내=저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항상 내 가족이 나를 존경해준다는 생각은 가장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항상 해요. 아이들이 그만 하라고 할 정도로요. 저는 야구는 잘 모르지만 ‘당신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주고, 또 그런 것에 은근히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아빠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NC에 와서 이렇게 잘 해주고 있는 것이 가장 기쁘죠. 지금 이 사람, 남자로서의 자존감도 굉장히 높아져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빈 소리라도 떵떵거리는 게 보기 좋더라고요.

-이호준 선수가 고맙다는 표현은 자주 하나요.

아내=자주 해요. 전보다 그런 것 같아요. 가끔 꽃도 보내오고. 나이 들면서 로맨티시스트가 됐어요.

남편=그 정도는 아니고 뭘…. 요즘엔 이 사람 보면 좀 짠하더라고요. 남편이 옆에서 챙겨줘야 되는데 남들은 다 하는 것도 못해주니까요. 요즘은 아프다 그러면 화도 나요. 아이들 챙기느라 시간 없다고 병원도 안 가고 그러거든요. 내가 병원도 데려가고 해야 되는데…. 사실 이 사람 좋은 게, 야구선수들은 밤 늦게 집에 오니까 오전에 늦게까지 자잖아요. 내가 잘 때는 애들이 아빠 근처엘 못 와요. 까치발 들고 다니고, 이 사람이 얼마나 교육을 시켰는지, 야구에 대한 생각을 해주는 게 고마운 거죠. 우리 팀에서 보면 나나 (손)민한이 형은 그게 되더라고요. 그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도 애들 때문에 잠 못잤다 피곤하다 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이게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세대 정도부터 되나봐요. 일주일 원정 갔다왔으니 아이들도 아빠 얼굴이 보고 싶겠지만 자고 있으면 옆엘 못 오죠. 엄마가 ‘아빠 주무시니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게 나도 들려요. 그런 게 아내에게 고맙고 애들한테는 미안하죠.

-NC에 와서 3년째, 주말부부 생활도 오래 했는데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내=처음에는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 큰 아이가 사춘기가 오니까 조금 힘드네요. 남자 아이라 엄마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창원에 원래는 저 혼자 주로 오는데 가끔 큰 아이는 데리고 와요. 아빠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좀 만들어주려고요. 우리 둘은 아직도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애들이 너무 커버렸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또 아이가 저 만큼 컸는데 아빠가 여전히 야구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몰랐는데 지금은 아이들도 아빠 자랑스러운 걸 알더라고요. 큰 아이가 아빠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야구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조금 늦었지만 야구를 시작했거든요. 성격이 내성적이라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어릴 때는 제가 학교에 가는 것도 안 좋아했던 아이인데 요즘에는 아빠가 야구선수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고요?

남편=본인이 워낙 하고 싶다 해서 시켰죠. 주위에 몇몇 선배들이 후회하는 걸 봤거든요. 야구하고 싶다는 아이를 안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 실력도 있고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다는 걸 못 하게 해 미안해하더라고요. 나도 후회하기 싫고, 테스트를 한 번 받게 했더니 중1 수준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하기에 시켰어요. 잘 하겠죠, 뭐.

+인터뷰를 마친 뒤 ‘설마’ 했던 그 장면을 실제 목격하고야 말았다. 경기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나선 이호준이 세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현관 앞에 서자 홍연실씨는 “누가 보는 건 처음”이라고 매우 부끄러워하며 남편의 신발을 직접 신겨주었다. 가방을 메고 서서 아내의 손에 발을 맡긴 이호준을 향해 ‘정말 결혼 잘 한 건 맞는 것 같다’고 했더니 이호준 역시 “내가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허리가 나가서 이러는 것”이라며 쑥스러운 듯 크게 웃었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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