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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야드' 안병훈, 안재형이 주지 못한 그것을 얻다

안병훈(24)은 25일 유럽프로골프투어의 메이저대회 BMW PGA챔피언십 정상에 서기까지 어찌 보면 꽤 먼 길을 달려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메달리스트 한·중 커플인 안재형-자오즈민 사이의 외아들로 최고의 운동신경을 받은 것 같았지만, 세계 최고 무대 정상까지 오기는 순탄치 않았다.

팔을 쓰는 것으로는 왼손잡이 선수였던 어머니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안병훈은 왼손잡이였다. 그러나 여덟살 되던 해 처음으로 골프를 접하며 오른손잡이 아버지 클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병훈이 2012년 유럽피언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에 출전했을 당시 아버지 안재형 탁구대표팀 코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스포츠경향DB

당시만 해도 우연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안병훈은 오른손잡이 골프선수로 호쾌한 스윙을 하고 있다.

유럽프로골프투어 드라이버 비거리 순위에서 안병훈은 304.9야드로 전체 206명 가운데 13위에 올라있다. 1위로 315.8야드를 기록하고 있는 스콧 헨리(스코틀랜드)에는 10야드 정도 떨어지지만, ‘장타자’로 자리를 잡고 있는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302.3야드)보다 멀리 칠 만큼 확실한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아버지 안재형 남자탁구대표팀 코치가 걱정했던 것이 그건 아니었다. 안병훈은 2009년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화려하게 비상했지만, 어느 대회든 나흘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제기량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2009년 이후 아들 캐디백을 메고 온갖 대회를 다 쫓아다니다 다른 선택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안 코치는 “캐디 역할이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선수의 감정 조절에도 도움을 줘야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병훈이가 좋을 땐 나도 좋고 그 반대일 땐 나도 그렇고, 대체로 그렇게 되더라”며 “캐디라면 선수가 들떠있을 때 가려앉혀주기도 해야하는데 아버지여서 마음대로 안될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 4라운드에서 안병훈이 우승 경쟁에서 흔들리지 않고 달려나간 것은 무척 의미있다.

안병훈은 올해부터 남아공 출신의 딘 스미스와 함께 투어를 뛰고 있다. 안병훈은 스스로 다혈질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것을 인정한다. 녹색 테이블을 앞에 두고 승부욕 넘쳤던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가족이 아닌 계약관계의 캐디와 함께 한 뒤로는 냉정을 찾는 데 도움을 얻고 있다. 버디를 했을 때 아버지 얼굴에 보였던 기쁨, 보기를 했을 때의 안타까움이 지금의 캐디에게는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안병훈은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역시 여간 마음이 쓰였던 것이 아니다. 이제 11년째. 마침내 안병훈이 길을 찾은 듯하다. 유럽 무대에서도 돋보이는 비거리와 파괴력 있는 샷을 살릴 소프트웨어를 갖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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