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원시동굴 유혹에 설레고,반딧불이 춤에 홀리고… 팔라완 섬과의 황홀한 ‘썸’

원시의 정글·에메랄드 바다·별빛의 군무…상상만 했던 남국의 즐거움이 눈앞에

세부·보라카이의 화려함은 없지만 은밀한 필리핀 속살 매력

사람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또 다른 사람을 통해 치유되듯,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숨 가쁘게 보낸 시간은 느릿느릿 여유로운 시간으로 위로받는다.

바람과 구름, 물결까지도 쉬엄쉬엄 흘러가는 그곳, 팔라완의 시간에 시계를 맞추어 본다.

카우리섬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와 자주 혼동되는 팔라완은 마닐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1시간이면 도착하는 필리핀의 가장 서쪽 섬이다. 필리핀의 다른 휴양지인 보라카이나 세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원시의 경관이 오히려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해외에 나가면 만나지 않기가 더 힘들다는 한국인 관광객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신선하게 다가온다. 동남아 여행지에서 질리도록 볼 수 있는 호객꾼이나 ‘1달러’를 외치는 어린 ‘삐끼’들도 보이지 않는다. 평화롭고 또 평화롭다.

△신비의 동굴이 열리다, 지하강

팔라완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a) 공항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2시간여 달려 도착한 사방(Sabang)비치. 나무로 만든 필리핀의 전통 배 ‘방카’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면 금방이라도 ‘병만족’이 튀어나올 것 같은 정글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하강

도마뱀과 원숭이가 지나다니는 숲을 헤치고 몇 발짝 걸어 들어가면 투명한 연초록의 강물이 발을 적신다. 지하강(Underground river)의 동굴이 열리는 지점이다.

2000만년 전, 세인트폴 산의 지하로 물이 흘러들면서 만들어졌다는 이 석회암 동굴의 길이는 약 8.2㎞. 그중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둘러볼 수 있는 구간은 1.5㎞다. 뱃사공이 가리키는 기묘한 형상의 석순과 종유석들을 올려다보며 어둠 속 비경에 빠져들 때쯤이면 수천 마리 박쥐들의 으스스한 울음 소리도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압도적인 대자연의 위용 앞에 ‘그래, 졌다’ 하고 항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제주도와 함께 세계 7대 경관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루 1200명으로 관람 인원이 제한돼 있어 사전 신청은 필수.

△고요한 바다에 눕다, 혼다 베이

‘깊은 바다’라는 뜻을 가진 혼다 베이(Honda bay)에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푸에르토 프린세사 도심 인근의 선착장에서 방카를 타고 미지의 무인도로 향한다.

아름다운 산호초 군락으로 유명한 ‘팜바토 리프’를 경유해 40분 만에 도착한 판단(Pandan)섬. 스노클링 포인트로 필리핀 내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 황금빛 모래밭 위의 비키니 미녀, 사람과 섞여 여유롭게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 달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남국의 비현실적인 화보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섬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이 된다.

또 다른 무인도인 카우리(Cowrie) 섬에서 갖가지 해산물 요리와 열대 과일로 배를 채우고 흐물흐물해진 몸을 고요한 바다에 누인다. ‘지상낙원’이라는 틀에 박힌 표현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세 가지 빛에 물들다, 이와힉 강

열대와 아열대의 개펄에서 자라는 생명의 나무 맹그로브.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이와힉 강(Iwahig river)의 하류에는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수많은 맹그로브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해가 완전히 진 맹그로브 숲, 3인용 배를 타고 서로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둠 속의 강을 거슬러 오른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빛의 세계가 펼쳐진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별무리와 맹그로브 숲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들이 하늘에서부터 한 덩어리의 빛으로 연결돼,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을 연출한다. 수많은 전구로 몸치장을 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

넋을 잃은 채 내려다본 강물에도 반짝반짝 푸른 별이 떠 있다. 반딧불이 빛이 수면에 비친 것인가 싶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다름 아닌 발광 플랑크톤. 노를 젓거나 강물 속에 손을 담글 때마다 ‘파팟’ 하고 불꽃이 튀듯 환상적인 빛을 뿜으며 은하수가 펼쳐진다. 하늘과 숲, 물 위에서 동시에 반짝이는 빛에 마음속에도 하나둘 불이 켜진다. 낮보다 눈부신 팔라완의 밤,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멈추는 순간이다.

가는 길=국내에는 아직 직항편이 없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마닐라까지 4시간, 국내선으로 다시 1시간을 이동해야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지하강까지는 버스로 2시간을 더 달려야 하니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은 편. 여행 동선에 따라 숙소를 정하는 것이 편하다.

Tip=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서 마닐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수속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공항에 도착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달러가 통용되지 않으므로 필리핀 화폐인 페소로 환전해 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110볼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220볼트용 멀티탭을 준비해 가야 한다. 수돗물에는 석회질이 섞여 있어 마셔서는 안 된다. 커피나 라면을 끓이는 물도 생수를 이용할 것. 꼭 맛봐야 할 먹거리로는 필리핀식 족발 튀김 ‘크리스피 파타’와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 ‘탄두아이’를 추천.

사방 비치

맹그로브 리버크루즈 투어=사방 비치의 한쪽으로 작은 강이 흘러드는데 이 강을 새 모양의 전통 배를 타고 약 1㎞ 거슬러 올라가면서 맹그로브 숲을 둘러본다. 맑은 공기에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수익의 일부가 지역 주민과 생태계 보전에 환원되는 ‘착한 여행’이다. 문의 하나투어(www.hanatour.com 1577-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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