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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온상’ FIFA, 어떻게 움직이는가

거액지원 앞세워 약소국 ‘쥐락펴락’

총회 의사결정 결국 집행부 뜻대로

인구 3만 명에 불과한 카리브해의 섬나라도 1표, 축구 강국인 영국이나 독일·이탈리아도 똑같은 1표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209개국으로 국제연합(UN) 193개국보다도 많다. 이들 회원국이 전부 참가하는 FIFA 총회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1표를 행사한다. 지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FIFA의 부정 부패를 둘러싼 함정이 숨어 있다.

미국 AP통신은 미국과 스위스 수사 당국이 FIFA 부회장을 포함한 고위 인사 7명을 체포해 본격적으로 FIFA 비리 수사에 나선 것을 계기로 28일 ‘FIFA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FIFA 의사 결정 방식의 부조리를 꼬집었다.

FIFA의 최고 의결 기구는 총회다. 1년마다 열리는 정기 총회를 통해 FIFA는 인종 차별에 대응하는 엄격한 규정 등 중요한 결정을 발표한다. 종종 이런 결정은 투표 없이 이뤄지기도 하는데, 상정 안건에 대해 회원국 대표들의 환호성이나 박수를 통한 만장일치 형식을 취한다.

블래터 FIFA 회장

총회의 결정 권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회장 선거와 월드컵 개최지 선정권이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권은 과거 26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비밀 투표를 통해 결정해왔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정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논란에 부딪혀 이젠 총회가 그 권한을 갖게 됐다.

그렇다고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총회 회원국이 골고루 1표씩 갖는 ‘민주적 방식’에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AP 통신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턱스 앤 카이코스도 1표, 월드컵 우승국 독일도 1표를 갖는다. 턱스 앤 카이코스는 인구가 3만 명밖에 안 되지만 FIFA 집행위원회에 대표까지 파견하고 있다”고 짚었다. 턱스 앤 카이코스는 지난 10년간 A매치를 13번밖에 치르지 않았고, 독일은 131회를 치렀다고 비교하며 어떻게 이 두 나라가 똑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AP통신이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의사 결정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제프 블래터 회장을 비롯한 FIFA 집행부가 이들 약소국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FIFA는 4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월드컵을 통해 수조원의 거액을 벌어들이는데 최근의 연간 수입은 약 1조 5000억원에 달한다. AP는 블래터 회장 재임 17년 동안 130억 달러(약 14조 7000억원)을 벌어들였다고 집계했다. 스위스에 비영리 단체로 등록돼 있는 FIFA는 세금 한푼 내지 않으며 집행부는 이 엄청난 거액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쓸 수 있다.

FIFA는 매년 모든 회원국에 8억원 안팎의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약소국 축구협회장에게는 이게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별도의 프로젝트를 통해 약소국을 지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은 FIFA의 현 집행부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고,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블래터 회장의 독재에 반발하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불만을 갖고 있어도 딱히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오는 29일 열릴 예정인 FIFA 회장 선거도 이런 ‘질서’ 아래 진행되기에 블래터의 5선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FIFA 집행위원회가 월드컵 개최지 선정권을 총회로 넘기기로 했지만 여전히 여자 월드컵, 각 연령별 청소년 월드컵 등 중요한 대회 개최지 결정권은 쥐고 있다. 철저한 비밀 투표로 이뤄지는 결정 과정이 바로 부패의 뿌리다. 러시아 월드컵, 카타르 월드컵을 동시에 결정한 집행위원회 결정 역시 완벽한 베일에 가린 비밀 투표였다. 뇌물 수수와 매수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취약 구조지만 FIFA 집행부는 오랫동안 이 방식을 즐겨왔다. 집행위원은 총회 투표를 통해 뽑는데, 여기에도 각 국별 1표가 마법을 부린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최근 집행위원선거에 출마했다가 아시아국가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고 낙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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