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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볼 PM 6:29]“최경철이었다면” 유강남을 위한 변명

개운치 않은 경기가 끝났다. 김정민 LG 배터리코치는 곧바로 경기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9회 이승엽을 상대하던 포수 유강남의 위치 선정에 오해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지난 31일 잠실 LG-삼성전이 저물 무렵인 9회. KBO리그 통산 400호 홈런에 1개만을 남겨둔 이승엽은 2사 2루에서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포수 유강남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지만, 바깥쪽으로 멀리 빠져앉은 채 사이드암 투수 신승현의 공 4개를 받았다. 고의4구에 가까웠다.

김 코치의 물음에 유강남은 경기 전, 공부했던 ‘모범답안’을 내놨다.

LG 포수 유강남. LG 트윈스 제공

“이승엽 선배가 언더핸드 투수에 강하고, 뒤에 타자는 약해서….” 김 코치가 아차 싶은 대목이었다.

9회 이승엽 타석에서 LG 벤치는 움직이지 못했다. 유강남이 그 정도로 멀리 빠져앉는 것이 1루 LG 더그아웃 쪽에서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패색이 짙은 가운데 갸우뚱 하는 사이, 볼 4개가 연달아 들어가고 말았다.

여기서 진위여부 하나. LG 벤치에서는 고의사구를 지시할 이유가 없었다. 3-9로 6점이나 뒤져있는 상황. 대기록을 앞둔 타자와 승부를 굳이 피했다가는 어떤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는 건 자명했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각종 미디어에서 게임 장면을 빠짐없이 보여주는 세상에 그렇게 지시하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코치가 그 장면을 복기하며 아쉬워했던 대목은 하필이면 그 상황에 주전포수 최경철이 아닌 백업으로 막내급인 유강남이 안방을 지켰다는 점이다. 삼성전을 앞두고 함께 공부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는 사이드암 투수 대비 삼성 타자들의 타격 성향도 있었다.

이승엽은 지난해 옆구리 투수를 상대로 타율 3할7푼5리(32타수 12안타) 5홈런 11타점으로 강했다. 올해도 같은 전형을 상대로 타율 3할8리로 잘 쳤다. 이승엽 다음 타순의 박해민은 지난해 사이드암 투수를 상대로 타율 2할6푼7리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는 9푼1리로 절대 약세였다.

어떤 설명으로도, 프로야구 역사의 목격자가 되기를 바라며 9회 마지막 순간까지 잠실구장 스탠드를 지킨 팬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다만, 고의성 사구에 담긴 유강남의 ‘고의’ 의미는 달랐다. 유강남은 강타자 이승엽을 의식했지만, 그의 400호 홈런 기록을 의식한 피하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강남은 고졸 신인으로 2011년 LG에 입단했지만, 3년간 상무에서 뛴 뒤 지난해 말 팀으로 돌아왔다. 1군 포수로 통산 48경기째 마스크를 썼다. 더구나 포수로 타석에 든 것이 70차례뿐으로 교체 멤버로 나선 게 대부분이었다.

유강남은 이날도 4회 최경철 타석에서 대타로 출전해 마스크를 썼다. 최경철은 지난해부터 LG 주전포수로 자리를 잡으며 안정적인 리드를 하고 있다.

김 코치는 “그 상황에 최경철이 앉았다면, 어렵게 가려고 해도 그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강남이가 경험이 없다보니 아직 큰 그림은 못보는 것이다. 또 경험이 없는 포수일수록 데이터에 의존해 학습한 대로 볼배합을 하는데 그 순간, 큰 것을 볼 여유가 없었다. 아웃카운트 1개만을 보고 승부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LG는 삼성과 주말 3연전을 모두 내줬다. 그러나 패수 3개가 늘며 받은 상처보다 이제 막 피어나는 포수 유강남이 받을 수 있는 상처가 걱정인 모양이다.

넓디 넓은 잠실구장. 야구 좀 보는 팬이라면 스탠드에서 나오는 소리만으로 운동장 분위기를 감지한다. 그러나 홈플레이트 뒤의 경험 적은 포수는 같은 공간의 공기를 순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날,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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