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연기를 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돼야죠.”
배우 유준상의 조각같은 근육으로 화제가 된 전규환 감독의 영화 <성난 화가>에는 유준상보다 훨씬 관객의 뇌리에 박히는 배우가 한 명 있다. 극을 이끄는 드라이버 역을 맡은 배우 문종원(36)이다. 90㎏이 너끈히 될 법한 육중한 몸에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 그리고 몸 곳곳에 새겨진 문신 등과 함께 이국적인 외모는 ‘과연 이 배우가 한국사람인가’하는 궁금증을 준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기자의 공연에 대한 얇은 지식을 드러내는 증거에 불과했다. 그는 뮤지컬 여러 작품을 넘나들면서 활약하다 이제 막 영화연기를 시작한 배우였다. 겉은 사나이답지만 속은 비단결인 문종원의 목표는 단연 ‘좋은 사람’이다.
<성난 화가>는 배우 문종원의 존재감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극중 악인을 유준상이 맡은 화가와 함께 응징하면서 외국에서 온 여주인공 엘베와 수위가 높은 정사장면도 소화한다. 영화는 결국 유준상의 액션이 클라이맥스에 해당하지만 문종원은 줄거리가 진행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관객의 머릿속에 단단한 기억을 남긴다.
“요즘 세상에는 모두가 다 개성을 표현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개성이란 말은 다 정해진 틀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연기에서도 그런 지점이 느껴져서 힘들었는데 마침 유준상 형님의 도움으로 영화에 갈 수 있게 됐어요. 제게는 숨통이 틔었다고 할까요. 영화가 정말 다큐멘터리의 느낌도 들어가 있고,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와 캐릭터 그리고 액션이 있었어요.”
체중이 75㎏ 남짓이었던 그는 감독의 요청으로 90㎏ 가까이 증량했다. ‘효도르 같은 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 때문에 근육과 살을 함께 붙여나갔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라이버의 연기는 말 그대로 극중 그가 태우는 담배의 연기 같았다. 그가 무대에서 하던 연기와는 달랐다. 자연스럽고 무심한 듯 했지만 그 때문에 연기에는 더욱 많은 고민이 들어가야 했다. 베드신 역시 그랬다. 그는 고난도의 장면을 연이어 소화하면서 극중 어려운 장면은 모조리 혼자 해냈다.
“베드신이든 싸움 장면이든 합을 짠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했어요. 날 것 그대로의 느낌, 이 영화에서 보이고 싶었던 주된 이미지죠. 모든 분들에게 다 편안한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열 분 중에서 한 분이라도 인상을 남긴다면 그게 우리가 원했던 목표였던 것 같아요. ‘기왕 새로운 것을 할 거라면 과감하게 던져보자’는 이야기였죠.”
문종원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2003년부터 무대 연기를 시작했다. <아이다> <올 댓 재즈-러브 인 뉴욕>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의 뮤지컬과 <맨 프럼 어스> 등 연극에 출연했다. 그가 무대연기를 처음 했던 것은 그냥 막연히 노래가 자신있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뮤지컬 <까미유 끌로델>을 하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당시 김명수 선배가 로댕 역을 하셨어요. 첨탑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조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대사를 하는 그 사랑에 빠진 눈이 충격적이었어요. 제 연기를 보는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그러한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 고민은 배우로서의 꿈이라기 보단 사람으로서 사는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별명이 ‘꼬마 니콜라’였을 정도로 이국적인 외모에 강인한 얼굴선을 갖고 있지만 문종원의 마음은 섬세하다. 고민도 많고 웃음도, 눈물도 많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연기 상대에 대한 호흡과 배려를 가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는 권위자가 있다. 바로 그를 지금의 소속사 나무엑터스로 이끈 선배 유준상이다.
“준상 형님은 공연계에서는 유명한 선배세요. 제가 어느 날 ‘어떤 회사가 좋을까요’하고 물었더니 적극적으로 알아봐주시다가 ‘우리 회사로 와’라고 해주셨어요. 들어와 보니 제 편이 있다는 게 행복하네요. 이렇게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게 되고 말이에요.”
이제 영화로는 두 작품이다. 우리 나이 서른일곱에 문종원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영화 속 존재감과 실제 모습 사이의 아득한 공간감만큼 그가 좋은 연기로 그곳을 채운다면 우리는 또 한 명 좋은 배우의 탄생에 기뻐할 것이다. 그때쯤 그는 좋은 사람 역시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