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1·2루, 번트는 정답일까, 아닐까.
프로야구 30년, 상황별 기대득점 및 득점확률에 따르면 무사 1·2루의 희생번트는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한 점이라도 뽑을 확률을 뜻하는 ‘득점확률’을 살펴보면 무사 1·2루에서 득점을 따낼 확률 63.9% 보다 희생번트를 성공시키고 난 뒤인 1사 2·3루의 득점확률이 68.5%로 더 높아진다.
반면, 몇 점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기대득점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무사 1·2루의 기대득점은 1.502점인데 비해 1사 2·3루는 1.408로 줄어든다. 1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번트, 여러 점이 필요하다면 강공이 ‘확률상’의 정답에 가깝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이 ‘확률’을 정확하게 따져 승부했다. 0-0이던 3회 8번 김하성의 중전안타와 9번 박동원의 볼넷으로 만든 무사 1·2루에서 1번 고종욱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승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선취점’이 꼭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다득점도 필요하지만 어쨌든 1점이 더 중요했다.
고종욱은 희생번트를 실패했지만 1루수 뒤쪽 파울지역에 묘한 뜬공을 때려냄으로써 주자를 진루시키는데 성공했다. 윤석민의 적시타가 나왔고 점수 2점을 벌었다.
2-0으로 앞선 4회, 또다시 무사 1·2루 기회가 찾아왔다. 유한준과 김민성의 연속 안타가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희생번트 사인이 나오지 않았다. 박헌도는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고 결국 4회에 점수를 내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염 감독은 “2-0으로 앞선 상황에서는 1점이 아니라 여러 점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능하면 다득점으로 승부를 끝낼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은 박헌도 타석 때 번트가 아닌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났다. 주자들이 스타트를 끊었다. 대량득점을 위한 벤치의 움직임이었다.
박헌도는 “이미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감독님이 말로 지시를 해 둔 상황이었다. 내가 제대로 때리지 못해서 뜬공이 되는 바람에 기회를 날렸다”고 말했다.
계산과 확률대로의 움직임이었다. 1점이 꼭 필요할 때는 희생번트, 다득점이 필요할 때는 강공이었다. 점수 차이와 상황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그리고, 2번째 작전이 실패했지만 경기는 이겼다. 앞서 히트 앤드 런 작전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했던 박헌도가 주인공이었다. 박헌도는 4-5로 뒤진 8회초 2사 2루에서 조기 투입된 두산 마무리 이현승을 상대로 좌월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박헌도는 “앞서 작전 실패 때문에 정말 마음이 무거웠는데, 중요한 홈런을 때리게 돼 마음이 편해졌다. 죽다 살아난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