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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의 골짜기 세대 육성기 “이제 사고칠 일만 남았다”

“처음엔 암담했는데, 이젠 사고칠 일만 남았죠.”

신태용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45)은 반년 사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61)을 곁에서 돕는 코치로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이란 개가를 올린 게 천당이라면 지난 2월 급성 백혈병으로 쓰러진 이광종 감독을 대신해 올림픽팀 사령탑을 맡은 게 지옥이다.

신태용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 겸 월드컵대표팀 코치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고 있다. 분당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아시안컵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제안을 받았죠. 그야말로 하늘에 붕 뜬 상황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운명이라는 생각에 수락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죠.”

감독이라면 욕심낼 올림픽팀 지휘봉을 고민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는 93년생부터 경기를 뛸 수 있는데, A매치를 뛰어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3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의 꿈을 이룬 세대들이 이미 숱한 해외파와 국가대표로 진용을 꾸린 것과 비교해 ‘골짜기 세대’라는 표현이 나온 배경이다. 신 감독은 “올림픽팀을 맡기로 결심한 직후 태국으로 날아갔는데 눈에 띄는 선수가 하나도 없어 참담했다”며 “하지만 축구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자신의 말을 결과로 입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올림픽 1차예선에서 브루나이를 5-0으로 완파한 것을 시작으로 5승2무로 승승장구한 것이다. 상대가 약체라 얻은 결과라 생각한다면 오해다. 신 감독은 최근 올림픽팀을 이끌고 떠난 유럽 원정에서 프랑스와 1-1로 비겼고, 튀니지를 2-0으로 제압했다. 신 감독은 “괜히 선수는 지도자가 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이쯤되면 골짜기 세대라는 표현을 취소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골짜기 세대 육성비결은?

신 감독이 골짜기 세대를 바꿔놓은 비결은 ‘재미있는 축구’에 있다. 수험 열등생이 공부에 재미를 들이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처럼 수비수도 골을 넣는 축구로 분위기를 싹 바꿨다.

“올림픽팀에 처음 뽑힌 선수들은 이런 축구는 난생 처음이라고 말하죠. 제가 ‘왜 풀백(측면 수비수)은 골을 넣으면 안 되느냐’고 말하니까요. 실제로 최전방 골잡이가 공격 1선을 이끌면 양쪽 풀백도 같이 라인을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선수들은 적응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공격적인 축구에 재미를 들이면서 실력이 쑥쑥 늘어났죠.”

이렇게 기량을 꽃피운 대표적인 선수가 전남 드래곤즈 수비수인 이슬찬(21)이다. 원래 소속팀에서도 주전을 꿰차지 못했던 그는 신 감독의 지도 아래 축구에 눈을 떴다.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이 최근 경기를 직접 봤을 정도”라며 “국가대표로도 대성할 수 있는 재목”이라고 귀띔했다.

재밌는 축구가 전부는 아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신 사소한 부분까지 창의성을 요구했다. 특히 어릴 때부터 타성에 젖은 채로 축구를 시작한 선수들에게 “감독이 어떤 축구를 원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한 것이 주효했다.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할 때 경기를 뛸 수 있고, 경기를 뛰어야 실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올림픽팀 선수들이 골짜기 세대로 불린 원인 중 하나는 경기를 많이 못 뛰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림픽팀은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위 안에 들어야 본선행 티켓을 얻는다. 아시아에 4.5장의 티켓이 걸려 있는 월드컵보다 험난한 길이다. 그러나 신 감독은 “예선 통과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프랑스를 상대로 공격 축구로 1-1 무승부를 만들면서 감독도 선수도 자신감을 얻었다. 종료 직전 문창진(22·포항)이 페널티킥을 놓치지 않았다면 승리도 노려볼 만했던 승부였다. 신 감독은 “감독직을 맡았을 때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10점 만점에 1점이라고 한다면, 프랑스전에선 7~8점을 줄 수준”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신태용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 겸 월드컵대표팀 코치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고 있다. 분당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국가대표 배출도 기대

국가대표팀 코치도 겸임하고 있는 신 감독은 국가대표 배출도 기대하고 있다. 마침 슈틸리케 감독이 8월 중국 우한에서 열릴 동아시안컵에 올림픽팀 선수들을 일부 발탁할 계획이다. 신 감독은 “올림픽팀에서 눈여겨 봤던 선수들을 9명 정도 50인 예비명단에 포함시켰다”며 “슈틸리케 감독님이 직접 눈으로 선수를 보고 국가대표 발탁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최대 4명 정도의 선수가 태극마크를 가슴팍에 다는 영광을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우리 선수라 막연히 띄우는 게 아니다”라며 “한·중·일 3국을 한정해서 좋은 선수를 찾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선수들이 포함되더라”고 말했다.

국가대표에 차출되는 선수가 쏟아진다면 골짜기 세대라는 오명도 자연히 사라진다. 신 감독은 “런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시절이 다시 올리는 없다”며 “우리 선수들이 그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축구의 대를 잇기에는 이제 충분한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은 이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선수 파악이 목적이 아니라 어렵게 발굴한 진주들이 다시 진흙탕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게 목적이다. 신 감독은 “감독들에게 제발 좀 경기를 뛰게 해달라고 읍소하는 게 습관이 될 지경”이라며 “처음에는 리우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젠 해볼 만하다. 현장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리우에서도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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