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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권혁 “그날 승리를 지켰다면, 선두싸움도 했을텐데요”

한화 권혁(32)은 아직도 대전 시내가 낯설다.

태어나 30년을 지내던 대구를 떠나 대전으로 둥지를 옮기고 7개월 가량이 흘렀지만, 아직도 길을 찾자면 네비게이션부터 켜게 된다. 집과 야구장을 비롯해 몇군데만이 그나마 길잡이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 177번지의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그곳에서도 한복판에 있는 마운드는 아주 익숙한 자리가 돼있다.

이를테면 그곳은 ‘무대’였다. 오를 때마다 혼신의 힘을 아낌없이 쏟았고, 땀 흘린 만큼의 큰 박수와 사랑을 받았다.

한화가 2015시즌 프로야구 전반기를 끌어간 ‘견인차’였다면, 권혁은 심장부에 있는 엔진 같았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대전의 ‘불꽃남자’. 권혁이 화끈했던 그의 전반기를 찬찬히 돌아봤다.

한화 권혁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대전 | 김기남 기자

■“그날의 승리를 지켜냈다면”

권혁은 짜릿했던 지난 경기를 다시 꺼내보자는 얘기에 고개만 갸웃하다 어떤 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두고두고 속이 쓰린 경기를 몇개 끄집어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게임이 몇개 있어요. 그 때 그 경기를 잡았다면…, 지금 우리팀 성적이 조금 더 나았을텐데요. 잘 지켰다면 어쩌면 지금보다도 위로 올라가서 1, 2위 싸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되돌아보자니 그런 생각만 드네요.”

권혁은 한화 마운드의 슈퍼맨처럼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개막 시점에 뒷문을 함께 지킨 우완 윤규진이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있던 한달 보름간을 포함해 마무리와 전천후 셋업맨 자리를 오가며 등판했다. 14일 현재 49경기에 나와 남긴 성적인 7승(7패) 11세이브 4홀드가 그의 전반기 여정을 설명한다. 그 가운데는 블론세이브 5개도 섞여있다.

권혁은 그 중에서도 5월9일 잠실 두산전부터 떠올렸다. 3-1로 앞서던 9회말 등판했는데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놓고 3실점(2자책)하며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승리조 ‘감’ 찾고 제구도 얻다”

권혁은 아쉬운 경기들을 더듬으며 이른바 승리조 투수들의 ‘경기감’에 대해 거론했다. 그간 승리를 지켜내지 못한 경기 내용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권혁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지키는 야구’를 앞세운 삼성 불펜의 핵심멤버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2년을 고비로 불펜진에서 비중이 줄었다. 권혁은 그 뒤로 알게 모르게 감각적인 부분을 잃었던 것 같다고 했다.

권혁은 “가령, 필승조로 나설 때와 추격조로 나설 때 갖는 부담감이랄까, 심리적인 부분부터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자기 자리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며 “아무래도 최근 몇 시즌 동안 중요한 포인트에서 등판하는 횟수가 줄다 보니 그런 ‘공백’도 생겼던 것 같다. 예전에 갖고 있던 그 ‘감’을 찾아야했다”고 말했다.

권혁이 승리조의 ‘감’을 찾으며 또 하나 얻은 것은 안정적인 제구력이다. 권혁 스스로 삼성 시절 한창 좋았을 때와 비교해도 다른 내용의 피칭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때는 힘 대 힘으로 윽박지르는 피칭이었다. 사실, 제구 신경은 덜 쓰고 힘으로 싸웠다”고 기억했다.

지금의 권혁은 7~8년 전과 비교해 구속이 살짝 떨어졌지만, 스트라이크존 낮은 쪽과 양사이드를 구석구석 활용하는 피칭을 하고 있다. 기술적 변화 과정을 놓고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생긴 데다, 기본적으로 캠프에서 김성근 감독님과 공을 많이 던졌던 부분이 긍정적인 결과로 나온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권혁은 가장 큰 변화 한 가지를 말했다.

“예전에 제구가 잘 안될 때는 올라가자마자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주고 그랬죠. 투수가 볼넷을 줄 수는 있지만, 필요없는 볼넷을 남발하지 말아야하잖아요. 적어도 지금 그런 거는 안하는 것 같아요.”

■“권혁 선수, 아프지 마세요”

권혁은 쉬는 날이면 이따금 가족들과 외식을 한다. 집과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을 다닐 때면 알아보고 인사하는 팬들이 꽤 있다.

대부분 팬들이 잘 해줘서 고맙다는 뉘앙스의 인사를 전하며 곁들이는 말은 “아프지 말고 뛰어달라”는 것이다. 팀내 불펜에서 권혁이 차지하는 비중과 한화의 가을야구를 향한 대반등을 기대하는 목소리다.

권혁은 그 말들을 귀담아 듣고 있다. 그에 덧붙여 전반기를 돌아보며 자기 칭찬을 해달라는 얘기에 “특별히 아픈 데 없이 내 자리에서 잘 보낸 것이다. 그 부분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아프지 않은 것도 실력이라고 본다”고 앞으로 부상관리에 신경쓸 뜻을 내보였다.

권혁은 “트레이닝 파트서 우선 잘 해주시고 개인적으로 보강훈련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사실 중간계투로 500경기 이상 뛰면서 생긴 노하우도 있다”고 전했다. 권혁은 2002년 데뷔 이후 지난 14일 청주 롯데전까지 561경기에 출전했다.

■“한화 와서 잠이 줄었어요”

권혁은 경기의 여운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스스로 “잠이 많은 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화 입단 뒤 잠이 줄었다고 한다.

“캠프를 겪으면서 수면 시간이 줄기 시작한 것 같아요. 보통 열 시간 정도 잤는데 한두 시간을 줄었어요. 아무래도 캠프에서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치료도 받고 하면서 늦게 자던 게 몸에 배지 않았나 싶어요.”

권혁은 정규시즌이면 야간경기를 마치고 자정을 넘겨서야 눈을 붙인 뒤 아침 10시는 돼야 일어나곤 했다. 요즘에는 오전 8시30분이면 눈이 떠진다고 한다. 아침 시간에 아내 안수혜씨(34)와 큰딸 정민(6), 아들 윤수(4), 그리고 태어난지 6개월 된 막내딸 도은이가 함께 하는 시간도 조금은 늘었다.

아빠가 야구선수인 것을 알고 있는 아들과는 가볍게 공 받기 놀이도 한다. “‘아빠, 야구 하자’며 글러브를 들고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본업인 ‘진짜 야구’ 얘기는 거의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 집안에 들어갈 때 밖의 일은 잘 가져가지 않으려 해요. 진짜 아주 좋은 일이면 몰라도…. 그러다 보니 야구 얘기는 할 일이 별로 없어요.”

어쩌면 줄어든 수면 시간의 일부는 ‘가족’에게 돌아간 측면도 없지 않다. 시즌이 끝나고 캠프가 시작되면 훈련으로 채워질 시간이지만….

한화 권혁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 | 김기남 기자

■“감독님 손 안의 그것을 받으면”

올시즌 김성근 감독과 권혁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승부의 기로에서 마운드를 지킨 권혁에게 다가가 볼 터치를 하며 격려한 김 감독의 움직임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력선수라도 감독과 시시때때로 대면하는 건 아니다.

권혁은 김 감독과 아예 마주하지 못하는 날도 가끔 있다. 그러나 스쳐지나기라도 하면 김 감독이 먼저 한마디씩 건넨다고 했다. 물론 피칭에 관한 것인데, 최근에는 미·일 리그 상위 그룹 투수들의 피칭 내용이 담긴 사진 등을 전해준다고 한다.

권혁은 “변화구 그립 등이 담겨있고, 전반적인 투구 매커니즘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심히 보게 된다”고 했다. 김 감독이 손에 쥐어주는 책자 등은 어떤 면에서는 ‘책임감’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된다

권혁이 올해 기술적인 부분보다 주목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스태미너’에 있다. 연투가 잦아질 때 나타날 수 있는 변화 등이 이목을 끌었다.

이를 두고 권혁은 던지는 것 자체보다는 결과적으로 팀에 폐를 끼칠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솔직히 던지는 건 아무것도 아녜요. 다만 그런 건 걱정은 조금 했어요. 결과가 안좋을 때죠. 제가 올라가 팀이 지면 어떡하나. 그게 힘들다면 힘들 수 있는 부분이죠. 연투나 던지는 문제는 아녜요.”

■“단 한개의 공이라면 ‘직구’죠”

권혁은 후반기 목표를 두고 짧고 명료하게 답했다. “팀이 더 올라갔으면 좋겠다. 가을야구 해봤지만, 한화에서 맞는 가을야구는 느낌부터 많이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은 전반기를 달군 그 뜨거움을 그대로 품고 마운드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하나의 가정을 했다. 한화의 최종순위를 결정짓는 정규시즌 최종전 9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상대 강타자와 공 1개로 승부를 해야한다면 어떤 공을 던지겠냐는 질문. 사실, 야구는 그 시점의 상황과 타자 특성을 감안한 볼배합을 필요로 하지만 권혁에게 가장 자신있는 공을 듣고 싶었다.

“다 제쳐두고 하나를 고르자면…, 역시 직구죠.” 불꽃남자의 정면승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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