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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양의지 “아우들아, ‘맞아야’ 결과도 나온다”

2015년 두산 야구가 ‘영화’라면 포수 양의지(28)는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과 다름 없었다. 메가폰을 잡은 김태형 두산 감독은 주전포수 양의지에게 힘을 실어주겠다고 공언하며 촬영을 시작했다.

일단 영화는 감독 구상대로 진행되고 있다. 두산은 개막 후 마무리투수만 두 차례 바뀐 데다 외국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가 부상으로 전반기의 절반 가까이 뛰지 못하고, 또 다른 외국인투수 유네스키 마야가 퇴출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순항하고 있다. 47승34패, 승률 5할8푼으로 선두 삼성에 고작 1게임 뒤진 채 후반기를 맞게 됐다. 역시 ‘안방마님’ 양의지가 마운드 주변에 중심을 잡은 덕분이기도 했다.

양의지는 2006년 두산에 입단해 가장 화끈한 전반기를 보냈다. 그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며 후반기를 조망했다.

두산 양의지가 지난 16일 잠실구장에서 인터뷰를 한 뒤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맞아야 결과도 나온다”

최근 몇년 사이 두산 1군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쭉 내려갔다. 포수 양의지가 마주하는 투수들도 어려졌다.

“아무래도 형들보다 동생들에게 뭔가 생각을 전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선배들, 가령 은퇴한 (김)선우 형 하고 대화를 할 때면 마운드에 올라가 ‘선배님, 공 괜찮습니다. 오늘 투심 참 좋습니다’ 등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맡겼는데 동생들과 대화할 때면 한번 더 생각하고 말을 꺼내게 되더라고요.”

올해 두산 투수진에는 진야곱(26)과 허준혁(25), 함덕주(20), 이현호(23) 등 1군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젊은 투수들이 중심에 섰다.

양의지는 혹여 이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싶어 가급적 농담하듯 부드럽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딱 하나, 정색하듯 또박또박 얘기한 내용이 있다.

“그 얘기는 자주 했어요. ‘편안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말야. 투수는 우선 맞아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이건데요. 감독님께서도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어요. 어찌 됐든 ‘타자와 붙어야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죠.”

양의지는 그 대목을 두고 보람있어 했다. “그래도 필요없는 볼넷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좌완 진야곱의 변화다. 진야곱은 꽤 까다로운 구질의 공을 던지는 데도 불구하고 볼넷이 너무 많아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볼넷이 확연히 줄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35.2이닝을 던져 볼넷을 36개나 내줘 매이닝 1개꼴로 볼넷을 허용했지만, 지난 6월 이후로는 28.1이닝을 소화하며 볼넷을 15개만 내줬다. 거의 2이닝당 1개꼴로 줄었다.

양의지가 진야곱에게 자주 한 얘기는 “볼넷을 줄 때면 뒤돌아 전광판을 한번씩 봐라. 안타 맞아 점수 주는 일이 별로 없다. 차라리 안타를 맞자”는 것이었다. 두산 젊은 투수들은 그렇게 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네가 왕이다…오재원의 조언”

포수는 수비 시간 대부분을 마스크를 쓰고 보낸다. 그러나 단 한번 마스크를 벗을 때라도 그의 표정이 절대적일 수 있다.

투수는 물론 그라운드를 지키는 모든 야수가 포수를 바라보고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양의지는 올해 주장 마크를 단 오재원(31)으로부터 시즌 전부터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양의지는 오재원의 얘기를 대사 읊듯 했다. “의지야. 그라운드에서는 네가 왕이다. 그거 잊지 말고 해다오.”

양의지는 그 말뜻을 잘 이해하고 있다. 실행에 옮기려 애쓰고도 있다.

“지금 야수들 보면, 대부분 후배들이에요. 형이 몇명 되지 않아요. 그런데 경기가 안풀린다고 저부터 인상쓰고 있으면 어떻겠어요. 항상 중심을 잡자, 그 마음이에요. 그 얘기를 잊지 않고 뛰려고 했어요.”

포수는 예민한 자리다. 이에 양의지는 지난해부터 사고의 변화를 주려 노력했다. 그 중 하나는 나쁜 일은 되도록 빨리 잊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댓글’ 같은 것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곤 했어요. 잠도 사실 잘 못자기도 했어요. 그런데 결국 제 손해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때면 ‘빨리 잊고 다음 경기 준비하는 게 최상이다’, 이렇게 여기자고 했어요. 슬럼프도 결국에는 ‘안된다. 안된다’,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오는 거니까요. 올해는 그런 일들에 제 스스로 잘 해나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양의지는 올시즌 한층 밝아졌다. 투수들도 양의지 얼굴을 보고 웃는 횟수가 늘었다고 한다. 양의지는 “제 얼굴이 웃기게 생겨 그런가봐요”라며 민망한듯 슬쩍 얘기를 정리하려했다.

■“수비 시간 위해 ‘타점’ 쏜다”

타율 3할3푼6리(247타수 83안타) 16홈런 59타점. 양의지는 무게감 있는 전반기 타격 성적을 남겼다. 포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특급 성적표’다.

양의지는 “타격 컨디션은 좋다. 다만 여름을 보내고 있어 체력적으로 처지지 않고 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양의지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부문은 타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의지는 “공격할 때 가급적 결정적인 것을 많이 치고, 최대한 점수를 많이 내놔야 수비할 때, 나뿐 아니라 투수와 야수 모두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고 했다.

양의지가 아무래도 다른 야수보다 공격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타격성적이 훌륭한 이유 중 하나는 타격에 관한 확실한 소신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의지는 “발이 느리기 때문에 확실한 안타 아니면 살아나갈 수 없다. 그래서 ‘삼진을 먹더라도 내 스윙을 하자’는 원칙을 매타석 지키려한다”며 “방망이를 끝까지 돌리면서 가급적 포인트를 앞에 놓고 때리려한다”고 말했다.

양의지는 현재 전체 6위에 올라있는 타율은 물론 홈런과 타점 등에서 이미 개인 역대 최고 기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양의지는 2010년 개인 최다인 20홈런을 때리면서 역시 개인 최다인 68타점을 올린 바 있다. 새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두산 양의지가 지난 16일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유희관, 두산 역사상 최고 제구력”

양의지가 두산 유니폼을 입고 받아본 공 가운데 부문별 넘버1을 꼽자면 어떤 답이 나올까.

이른바 직구, 빠른 공으로는 외국인투수 니퍼트 이름을 꺼냈다. 양의지는 “니퍼트가 국내 첫 시즌(2011년)을 보내며 던진 직구가 가장 위력적이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볼끝과 직구의 각 모두 최상이었다고 설명했다.

변화구로는 2013년까지 두산에서 함께 한 김선우의 볼을 꼽았다. “변화구 볼끝 움직임이 참 좋았다. 특히 포크볼과 투심이 예리했는데, 때로는 받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사인을 내는 구종과 코스대로 던질 수 있는 ‘제구력’으로는 단연 유희관을 꼽았다. “희관이 형은 달라는 대로 거의 그대로 온다고 보면 된다. 제가 공을 다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컨트롤로는 두산 역사상 최고 아닐까 싶다”며 “몸풀 때부터 미트를 대고 있으면 그 자리로 그대로 와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유희관은 전반기에만 12승을 거뒀다. 양의지는 덩달아 흐뭇해했다.

■“대량실점 뒤 감독님이 해주신 얘기”

두산은 개막 이후 마운드가 불안했다. 불펜이 약한 탓에 한번 흔들리면 대량실점을 하곤 했다.

지난 5월20일 잠실 삼성전에서는 25실점, 지난 6월5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14실점을 하는 등 호되게 맞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다.

그럴 때면 김태형 감독이 양의지를 따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평소에 별 말씀 안하세요. 그런데 점수 많이 준 다음에는 그러시더라고요. ‘의지야, 마음 놓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실점 계속 의식하다 보면 너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건데요. 그 말씀에 또 자신감을 다시 얻곤 했어요. 아마도 끙끙 앓고 있었으면 연패가 길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양의지는 스무살 때 김태형 코치를 배터리코치로 만났다. 강인권 배터리 코치도 그 시절부터 만났다. 강 코치는 경기 뒤 잘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세심히 잘 지목해준다. 양의지는 두 스승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양의지는 전반기를 돌아보며 1차 고비를 넘은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지난해 두산은 마운드가 붕괴되며 6월 이후 무너졌다. 올해는 6월 이후 19승15패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양의지는 이제 더 높은 곳을 보고 가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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