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손님’ 천우희 “여우주연상 수상자? 제 선택 그대로 하고, 묵묵히 갈래요” [인터뷰]

영화계에도 마치 프로야구나 프로농구처럼 한 해를 정리하는 시상식에서 가장 기량이 성장한 선수를 뽑는 ‘기량 발전상’이 있다면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영화를 조금이라도 깊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배우 천우희(28)의 이름을 빼놓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독립영화계 가장 큰 수확이라 불리는 영화 <한공주>에 출연했던 그는, 영화 개봉 이후 상이라는 상은 모두 쓸어담았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황금촬영상’ 수상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올해의 영화상’, ‘들꽃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실로 작은 영화로부터 밀어닥친 큰 파도였다. 수상 이후 모두 영광을 마음 한 편으로 접어넣은 그는 다시 영화에 매달렸다. <뷰티 인사이드>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곡성>은 촬영을 마쳤다. <해어화>는 촬영 중이다. 다시 묵묵한 전진을 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를 할 영화는 그가 선무당 미숙을 연기한 김광태 감독의 <손님>이다.

김광태 감독의 영화 ‘손님’에서 극중 정체불명의 마을에서 신내림을 받은 선무당 청주댁 미숙 역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정체불명의 마을에서 마을 이장(이성민)에게 핍박받는 선무당 역을 맡았어요. 모두가 꺼려하던 배역이었다고 하던데요.

“역할보다는 이야기에 더 끌렸던 것 같아요.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우리가 워낙 다 알고 있던 이야기잖아요. 거기에 한국전쟁을 접목한 게 신선했어요. 캐릭터가 부담이 됐죠. 제게는 도전이었어요. 항상 제 나이보다 어린 역을 해서 교복도 입고 그랬는데 나이가 확 뛰어서 오히려 고민이었죠. 미숙의 많은 부분은 시나리오에 잘 나와있지 않아요. 자식과 남편을 전쟁 통에 잃은 사람이라 하니 나이를 잡는 것이 고민이었죠. 하지만 나이 들어 보이게 연기하려 하지 않았어요. 단 외적인 변화를 주려고 살을 찌웠죠.”

- 이성민, 류승룡, 천우희…. 촬영을 했던 지난해에는 아니었지만 각각 <미생> <명량> <한공주> 등의 작품으로 충무로 대세 배우들이 됐어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땠나요.

“제가 일찍 캐스팅이 됐어요. 촬영이 6월에 들어갔거든요. 한 해가 지나 모두 다 잘 되서 개봉해 기분이 좋아요. 한 편으로는 부담감도 있고요. 그 만큼 기대치는 높아졌겠죠? 두 선배가 먼저 들어오고 이준씨가 마지막으로 왔어요. 특히 두 선배가 영화, 드라마에서 뵀던 분들이라 어떤 연기조합일까 궁금했어요.”

김광태 감독의 영화 ‘손님’에서 극중 정체불명의 마을에서 신내림을 받은 선무당 청주댁 미숙 역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촬영장이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이었죠?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어디 가서 논다거나 할 생각도 할 수 없고,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멀리 가야해요. 제가 경기도 이천 출신인데 비교적 집에 외딴 곳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 익숙했죠. 그런데 이준씨는 잘 못 견디더라고요.(웃음) 보통 촬영이 끝나고 다른 일정이 있으면 자고 가기도 하는데 바로 출발하기에 ‘뭐 집에도 숨겨놨니?’라고 하기도 했어요. 사실 생활은 불편하죠. 특히 화장실요.”

- 참 많은 의미를 함축한 영화였어요. <손님>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표현하고자 했던 게 많았죠. 두려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였어요. 무속신앙도 형태가 없는 두려움이기도 하고, 쥐떼의 등장 그리고 이방인의 모습 등에서 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스스로는 의도를 안고 연기를 하면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딱 미숙이라는 인물로만 연기하고 전달하려고 했어요. 저 나름대로도 극중 갈등이 있지만 전체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하게 연기한 거죠. 그럼에 두려움, 불안감 등이 눈에 보이게끔요.”

김광태 영화 ‘손님’ 중 배우 천우희의 연기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지금까지 영화에서 주로 가학을 당하는 역할을 많이 연기했어요. 그런 상황이 끌리는 건가요?

“따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아요. 내면에 상처가 있는 인물을 연기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제가 진정성 있게 표현해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질감이 들지 않거든요. 피학 연기를 할 때만큼은 그 상태에 놓였다고 생각을 해요. 힘든 일이 생기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 힘들다는 느낌은 없어요. 오히려 고뇌하고 만들어진 결과물이 좋을 때는 뿌듯해요.”

- <한공주> 이후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을 것 같아요. 변화를 느끼나요?

“친구, 지인들이 어려워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연락이 통 없기에 전화를 해보면 ‘너 바쁠까봐…’라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웃음) 친한 친구들은 편하게 봤으면 좋겠어요. 예전보다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그 기대에 맞춰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부담감이나 불안을 안고 가면 제 선택과 연기를 마음껏 못할 것 같아요. 상을 받기 전이나 후나 제 선택을 그대로 묵묵하게 하고 싶어요.”

김광태 감독의 영화 ‘손님’에서 극중 정체불명의 마을에서 신내림을 받은 선무당 청주댁 미숙 역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많은 관객과 연출자들이 우희씨를 찾고 있어요. 본인의 어떤 점이 좋은 걸까요?

“열심히 하는 걸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단역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했다는 것에 대견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제 영화를 보신 분들이 같은 사람인 사실을 모르시는 때가 많았어요. 이름은 모르시지만 영화 인물로 기억해 주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땐 은근한 쾌감이 있죠. 특히 연기를 지망해주는 친구들이 좋아해요.”

- 확실히 연기 지망생의 통로가 여타 아이돌 연기자라든지 하는 통로 때문에 위축된 건 사실이에요.

“아이돌 연기자 중에서도 재능이 있는 분들이 많죠. 저는 운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나쁘게 보이지 않았어요. 연기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거꾸로 촬영현장에는 ‘배우가 없다’는 말이 많아요. 기회조차 없는 신인이 많죠. 저도 겪은 일이기도 하고요. 저는 스스로 흔들리는 부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 보다는 실력으로 가고 싶었어요. 충분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니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김광태 감독의 영화 ‘손님’에서 극중 정체불명의 마을에서 신내림을 받은 선무당 청주댁 미숙 역을 연기한 배우 천우희가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많은 작품이 또 공개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나요.

“<뷰티 인사이드>는 남자를 연기했어요. 아마 <곡성>은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나올 것 같아요. 몇 년을 일을 쉬어서 일을 많이 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한 가지 생각은 들죠. ‘아, 내가 진짜 운이 좋구나’”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