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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차세트 트로트 퀸의 예감이…트로트 어벤져스 팀 뭉쳤다

2003년 장윤정 등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출현으로 시작된 ‘뉴 트로트 시대’가 문을 열었지만, 맹렬했던 기세는 요즘들어 차츰 힘이 부쳐보인다. 앞서 1985년대 약사 출신의 주현미 열풍으로 촉발된 ‘전통 가요 붐’ 역시 10년 남짓 맹렬한 기세를 이어간 뒤 다른 흐름에 길을 내준 바 있다.

트로트계가 새로운 활력을 찾느라 부산하다.

트로트 시장 곳곳이 십 수년간 이어져온 장조(major) 분위기의 경쾌한 뉴트로트를 대체할 색다른 트로트풍을 구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주현미, 장윤정을 이어 새로운 전성시대를 이끌어가는 스타를 찾는 열기가 뜨겁다.

최근 트로트 시장에서 등장한 가수 ‘연분홍’은 그 중 ‘포스트(post) 뉴트로트 시대’를 이끌어갈 인물로 급부상 중이다.

가수로서 가진 빼어난 가창력을 차치하고서도, 책임 프로듀서 시스템을 장착하고, 트로트 시장에 붐을 일으킬 색다른 스펙트럼까지 갖춰 ‘차세대 트로트 퀸’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최근 스포츠경향을 찾은 연분홍(곽지은·24)은 자신을 둘러싸고 벌이지고 있는 다양한 일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며 커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면서 색다른 음색과 야무진 음반의 탄생 배경을 조분조분 설명했다.

연분홍

연분홍은 사실 어릴 적부터 줄곧 국악을 전공해온 인물이다. 경북예고를 거쳐 경북대 국악과에서 해금을 전공했다. 부친과 모친은 각각 피리(태평소)와 해금을 전문으로 하고, 여동생 역시 경북대에서 해금을 익히고 있는 등 집안 사람 대부분이게 ‘국악인’의 피가 흐른다.

“아버지 어머니가 영남대에서 국악을 공부하며 만나 결혼하셨어요. 태교도 국악으로 했을 테고, 태어나서도 내내 악기를 갖고 놀며 자랐고….”

연분홍은 많은 국악기를 다룬다. 전공 악기인 해금 뿐 아니라, 가야금, 장구, 단소를 특히 능수능란히 다룬다. ‘배띄워라’ ‘늴리리아’ ‘한강수타령’ 등 팔도 각지의 민요도 줄줄히 꿰고 있다.“제 트로트 노래를 국악관현악 악보로 편곡해 국악 연주로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고 말할 만큼 국악의 재능은 넘친다.

“대학 시절 양로원에 가끔씩 어르신들 위로 차 연주를 가곤 했는데, 아시다시피 해금이 너무 구슬프잖아요. 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어 민요며 트로트를 꺼내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라고요. 한복을 입은 젊은 애가 악기 연주를 하다 말고 노래까지 부르니 더 놀라하셨던 것 같고요. 그 광경이 처음에는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하던지…. 그때부터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지요.”

집안의 반대는 있었다. 가족들은 국악의 길을 줄곧 걸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내 피력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노래의 매력에 그는 결단이 필요했다고 한다. 지난 봄 <전국노래자랑-용인시편>에 깜짝 출연하며 실행으로 옮겼다.

“<전국노래자랑> 출연일은 부모님의 권유로 접수했던 이화여대 국악 대학원 시험, 세종대국악경연대회 등이 한꺼번에 겹친 날이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시련을 주시나 싶었죠. 정말 용기내 과감하게 선택했습니다. 시험이며 대회에는 안가고 어머니 몰래 낸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키로 한 거죠. 돌이켜보면 운명 같은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낭중지추’였던 연분홍은 그날 손쉽게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무대를 찾았던 트로트 유명 프로듀서 정의송 작곡가가 놀라하며 그를 불러세웠다. 정 작곡가는 김혜연의 ‘서울대전대구부산’ ‘뱀이다’,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 소명의 ‘빠이 빠이야’, 장윤정의 ‘첫사랑’, 박현빈의 ‘빠라빠빠’ 등 500여곡의 트로트곡을 배출해낸 트로트계의 미다스 손이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당일 정의송 작곡가의 자택에서 즉석 노래 테스트를 가졌습니다. 작곡가님이 오래토록 아껴두었던 악보를 자꾸 하나씩 꺼내오기 시작하셨고요.”

연분홍

‘연분홍’이라는 이름도 정의송 작곡가가 직접 붙여준 것이다. 4년간 꽃을 터뜨리지 않아 애를 태우던 난이 하필 그 무렵 피었다며, 그 꽃 색에 빗대 ‘연분홍’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의송 작곡가가 프로듀서를 맡고, 트로트 시장에서 뉴트로트 시대를 이끌어왔던 실력 스태프들이 일제히 합류했다. 사실상 트로트계의 ‘어벤저스’ 팀이 뭉쳤다는 말이 풀풀 풍겨났다.

연분홍의 앨범 속 신곡 ‘처음처럼’, ‘못생기게 만들어주세요’, ‘사랑도둑’, ‘얄라셩’, ‘어금니’ 등 6곡은 오래토록 주인을 찾아온 노래다. 노래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타 가수에게 전해질 경우 모두가 타이틀감으로 활용될 만한 곡이다.

1번 트랙을 장식하는 ‘처음처럼’는 해금 전공자였던 연분홍이 직접 연주해 특히 의미있다. 해금 연주가 트로트의 맛을 더욱 높인다. 단조 중심의 정통 트로트로, 가슴 끝을 아리게 하는 연분홍의 묘한 목소리와 노래 멜로디 역시 압권이다.

타이틀곡으로 활용되는 ‘못생기게 만들어주세요’는 오늘날의 일렉트로닉 장르와의 만남을 꾀한 네오 트로트곡이다. 성형 수술이 일반적인 오늘날의 세태를 비틀었다. 1930년대 유행했던 희극적 요소의 ‘만요’(漫謠)가 얼핏 떠오른다.

정의송 작곡가가 쥐어준 6개의 신곡 중 5개는 단조(minor) 풍이다. 10여년간 이어져온 경쾌 일색의 뉴트로트 스타일의 곡과 크게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앨범에서는 무엇보다도 오리엔탈 발라드, 정통 트로트, 세미 트로트, 팝, 민요풍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마다 팔색 매력을 부여하는 연분홍의 타고난 소리 역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청아하면서도 동시에 허스키하다.

앨범에는 모두 19개 트랙이 들어갔다. 주현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신사동 그사람’ ‘비내리는 영동교’는 젊은 주현미의 부활을 연상시킨다.

국악을 전공해왔던 연분홍에 따르면 트로트와 민요는 닮은 것이 꽤 많다고 한다.

“국악을 해서인지, 좀 편하게 트로트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트로트의 꺾는 음은 민요의 테크닉과 닿아 있고요. 특히 두 노래 모두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기도 합니다.”

애초 ‘트로트’(Trot)는 1920년대 영미에서 유행하던 댄스 리듬을 일컫는 말이었다. 1920년대 가락 좋던 국내 신민요가 당시 서양에서 유래한 세련된 리듬과 결합하면서 국내에서 ‘음악 장르’가 됐다. 연분홍의 이야기처럼 음악 장르 ‘트로트’는 원초적으로 민요의 요소를 내포한다. 1928년 탄생해 가수 이애리수가 불렀던 전수린 작곡가의 ‘황성옛터’가 일으킨 붐으로 ‘트로트’ 음악 시장은 본격화 됐고, 이후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눈물젖은 두만강’, ‘신라의 달밤’ 등 시대를 아로새기는 트로트 명곡이 이어졌다. 음계에서 모두가 신민요적 속성이 발견된다.

“인생의 방향을 놓고 고민만 하는 불행한 아이가 아니라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란 걸 음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주어진 이 좋은 기회에 트로트계에서 꼭 새 바람을 일으켜보고 싶습니다.”

연분홍은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해금을 들고 무대에 서는 방식도, 트로트와 민요를 두루 아우르는 활동도 계획 중이다. “국악 관현악단과 함께 무대에 오를 날도 기대하고 있다”는 연분홍은 무엇보다 트로트 본류로 거슬러 올라가 퀄리티 있는 트로트도 줄곧 소개할 참이다. 크게 다른 연분홍은 이제 어떤 바람을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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