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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돌직구] 광복 70주년, 절대 써서는 안 될 일본말 찌꺼기② 일본식 발음

일본말 찌꺼기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입장’ ‘역할’ ‘야채’ 등 흔히 일본식 한자말로 불리는 것들입니다.

‘입장’은 “서 있는 곳” “처지” “보는 각도” 따위 뜻을 가진 일본말 ‘다치바(立場)’의 한자 표기를 그대로 적은 것이고, ‘역할’은 일본말 ‘야쿠와리(役割)’라는 것이지요. 야채(野菜)는 일본말 ‘야사이(やさい)’를 옮긴 것이고요.

그러나 그런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국어’ ‘수학’ ‘철학’ ‘문학’ ‘과학’ 등의 말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들도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국어’ ‘수학’ ‘철학’ ‘문학’ ‘과학’ 등의 말을 썼을까요? 아닙니다. ‘국어’ ‘수학’ ‘철학’ ‘문학’ ‘과학’ 등도 ‘입장’과 ‘역할’이 이 땅에서 쓰이기 시작한 때에 한 무더기로 대한해협을 건너왔습니다.

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근대 용어는 죄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등도 일본이 먼저 쓴 말이죠.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흔히 일본식 한자말로 불리는 말들도 거의 대부분 우리 국어의 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정작 버려야 할 것은 ‘단도리’ ‘뗑깡’ ‘쿠사리’ 등 일본말을 소리 그대로 옮겨 적은 말입니다. 곧고 튼튼한 우리말이 멀쩡히 있는데, 일본말을 소리 그대로 쓴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셋셋세

둘이서 마주보고 앉아 “셋셋세 아침 바람 찬 바람에…”라는 노래를 부르며 손바닥을 마주 치는 놀이를 한 적이 있지요? 저도 어릴 때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놀이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예부터 내려온 우리 전통놀이로 알고 있지만, 실제는 17세기 무렵 일본에서 어른들이 즐겨 하던 ‘오테아와세’라는 놀이에서 시작된 것이랍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 때 전해졌지요.

여기서 ‘셋셋세’는 “손을 마주 대다”라는 뜻의 ‘세스루’에서 생겨난 말인데요. 우리말로 하면 ‘짝짝짝’으로 충분합니다.

■뗑깡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고 말을 듣지 않을 때 흔히 쓰는 ‘뗑깡’은 일본말 ‘덴칸(癲癎·전간)’을 뿌리로 하고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덴칸’의 사전적 의미는 “간질병”입니다. 이 병에 걸려 발작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이들이 투정을 부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겼다거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 형사들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면서 쓴 단어라는 이 ‘뗑깡’을 곱고 예쁜 우리 아이들에게 쓸 이유가 있을까요? 당연히 없지요. ‘뗑깡’은 말 속의 의미에 따라 ‘어리광’ ‘투정’ ‘생떼’ 등으로 쓰면 충분합니다.

■엥꼬, 만땅, 잇빠이

운전을 하는 중에는 ‘엥꼬’ ‘만땅’ ‘이빠이’ 등의 말을 쓰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말 자체에서 일본 냄새가 팍팍 풍기는데도 마치 습관처럼 마구마구 써댑니다.

일본에서 엥꼬(えんこ)는 원래 어린아이가 다리를 뻗고 털썩 주저앉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차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와 ‘차의 연료가 다 떨어진 상황’이나 ‘물건이 바닥났을 때’ 쓰고 있습니다.

거꾸로 차에 연료를 가득 채울 때는 ‘만땅’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탱크가 가득 차다”는 의미의 ‘만(滿) 탱크(tank)’가 일본식으로 변한 것입니다.

또 ‘만땅’과 함께 “잇빠이 넣어 주세요”처럼 ‘잇빠이’라는 말도 많이 쓰입니다. 이것 역시 일본말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말입니다.

‘엥꼬’는 ‘바닥남’이나 ‘떨어짐’, ‘만땅’은 ‘가득’, ‘잇빠이’는 ‘한껏’이나 ‘가득’ 등으로 쓰면 됩니다.

■땡땡이 무늬

흔히 동그란 점으로 장식된 무늬를 ‘땡땡이 무늬’라고 하는데요. 이런 말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땡땡이 무늬’는 우리말이 아니라, “점박이 무늬”를 뜻하는 일본말 ‘덴덴가라’가 변한 것이거든요.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이 말을 ‘점박이 무늬’나 ‘물방울 무늬’로 순화해서 쓰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소라색, 곤색

한자 ‘空(공)’을 일본어로 읽으면 ‘소라’가 됩니다. 여기서 ‘공’은 “하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늘색’ ‘연푸른색’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일본의 ‘소라색’이죠. 또 ‘곤색 양복’ 등으로 많이 쓰이는 ‘곤색’도 일본말로, 우리는 ‘감청색’이나 ‘진남색’으로 써야 합니다.

■사바사바

“쟤는 어쩌면 사바사바를 저렇게 잘하니.” “부장한테 엄청 혼날 뻔 했는데, 사바사바해서 겨우 넘어갔어.”

이런 말 자주 듣죠?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사바사바’가 우리말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어?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사바사바(さばさば)’는 “마음이 후련한” 또는 “동작이나 성격이 소탈하고 시원시원한”을 의미하는 일본말입니다. 일본에서는 나쁜 의미의 말이 아닌데, 우리는 이 말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아무튼 ‘사바사바’는 ‘아부’ ‘아양’ ‘아첨’ 등으로 쓰면 충분한 말입니다.

■나가리

어떤 내기를 할 때 무효판이 되면 ‘나가리’를 쓰고 있지요? “나가리 됐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순전히 일본말로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어떤 일이 무효가 되거나,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거나, 약속이 깨지거나 할 때는 ‘깨짐’ ‘유산’ ‘허사’ ‘무효’ 등으로 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런가요?

■스키다시, 아나고, 요지

횟집 같은 데를 가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조금씩 나옵니다. ‘스키다시’나 ‘쯔끼다시’로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 ‘스키다시(쯔끼다시)’는 “곁들이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에서 온 말이랍니다. 우리말로는 ‘곁들이 안주’나 ‘밑반찬’ 정도로 부르면 되는 말인 거지요.

그런 ‘곁들이 안주’로 나오는 것 가운데 ‘아나고’가 있습니다. 하얀 살점에 씹히는 맛이 그만인 횟감이지요. 하지만 ‘아나고’는 뱀장어와 비슷하게 생긴 ‘붕장어’를 가리키는 일본말입니다.

참, 회를 먹고 나서 꼭 하는 일이 있지요? 이를 깨끗이 하는 일요? 이때 쓰는 물건을 ‘요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순우리말처럼 들리는 이 말 역시 일본말입니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들었다고 해서 ‘버드나무 양(楊)’에 ‘가지 지(枝)’를 더해 ‘楊枝(양지)’로 쓰고, ‘요지’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쑤시개’라는 말이 좀 경박하게 들리다 보니 ‘요지’를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것이야말로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이는 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삐까번쩍

“야, 구두가 삐까번쩍한데.” “외박 나간다고 군복을 삐까번쩍하게 다렸구나.”….

우리 주변에는 “휘황찬란하거나 훤하다”는 의미로 ‘삐까번쩍’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삐까번쩍’은 일본말 반쪽에 우리말 반쪽이 더해진 불구적인 말입니다. 우리말의 ‘번쩍번쩍’에 해당하는 일본말이 ‘삐까삐까’이거든요.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지난 1995년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을 펴내면서 이 ‘삐까번쩍’을 버리고 ‘번쩍번쩍’이나 ‘반짝반짝’으로 쓰도록 바로잡았습니다.

■삐끼

‘삐끼’는 당구를 할 때 자주 쓰는 말 ‘히끼’(끌어치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일본말에 뿌리를 둔 것이죠. 그런데요. 가게 앞에 서 있다가 지나는 손님을 끌어들여 물건을 사게 하고 가게주인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사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시장에 있었습니다. 바로 ‘여리꾼’이죠. ‘여리꾼’이 너무 생소하다면 ‘호객꾼’으로 써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하꼬방

‘하꼬방’은 상자·궤짝 등을 가리키는 일본말 ‘하꼬(箱)’에 한자말 ‘방(房)’이 합쳐진 말입니다. 즉 하꼬방은 “상자 같은 방” 또는 “궤짝 같은 방”을 뜻하는데요. 판자로 벽을 만들어 흡사 궤짝처럼 지어진 허술한 판잣집을 가리킵니다. 6·25 직후만 해도 많은 사람이 이런 집에서 살았는데요. 지금은 주로 빈민촌이나 달동네 등지의 작고 허름한 집을 일컫는 데 쓰이지요. 우리말로 하면 ‘판잣집’ 또는 ‘허름한 집’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일본말 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말은 ‘단도리’ ‘유도리’ ‘쿠사리’ 등등 아주 많습니다. 이런 말들은 앞으로 종종 스포츠경향 온라인뉴스를 통해 전하겠습니다.

‘단도리’ ‘유도리’ ‘쿠사리’의 바른 우리말은 뭐냐고요? 그게 궁금하시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클릭해 보세요. 오늘은 광복 70주년 덕에 얻은 휴일이잖아요. 요 정도의 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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