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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병현 “데뷔후 처음, 재미있다”

스프링캠프에서 갑작스런 맹장염으로 수술 받았다. 야심차게 새 시즌을 준비하던 중 조금은 억울한 이탈이었다. 하지만 페넌트레이스의 절정인 8월, 가장 필요할 때 김병현은 훨씬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와 KIA의 순위싸움을 이끌고 있다.

김병현(36·KIA)은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KIA 김기태 감독은 항상 “고맙다”고 말한다. KIA가 가진 많은 선발 자원 중 한 명이자 젊은 투수들로 가득한 마운드에서 서재응(38·KIA)과 함께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보여줄 수 있는 선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7번째 선발 등판에서 또 첫승에 실패한 김병현을 이튿날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나보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다. 인터뷰 요청에 “너무 못해서 인터뷰 하는 것이냐”고 의아해하던 김병현은 잘 풀리지 않는 듯 보이는 올시즌을 놓고 “요즘 참 재미있다. 학교 다닐 때 이후 처음”이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KIA 김병현이 훈련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채 ‘스포츠경향’과 이야기 하고 있다. 김은진 기자

#1승, 나는 괜찮은데

지난 12일 광주 두산전. 김병현은 4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워낙 득점 지원 운이 따라주지 않던 김병현에게 이날 타자들은 3회까지 4점을 뽑아줬다. 드디어 1승을 거둘 수 있는 기회인가 싶었는데 조기 강판.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김병현은 벤치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TV 중계로 전달된 이 모습에 많은 이들이 조기강판에 대한 불만으로 ‘오해’를 했다. 이미 동료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김병현은 크게 웃으며 “들었다. 가관이었다고. 가만 있으면 꼭 다들 내가 화난 줄 안다. 내가 뭘 한 가지 생각하면 다른 걸 잘 보지 못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병현은 “사실 그날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등판하면서 그러면 안 되지만 ‘1회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전 넥센전 이후 몸이 처져서 허리도 돌아가지 않고 오랜만에 그런 느낌이 왔다. 그렇다고 며칠 쉬었는데 아프다고 선발 구멍 낼 수도 없고 버틸때까지 버텨보자 하고 등판했다”며 “이대진 코치님도 1회씩만 끊어서 가자고 하셨는데 그러다 4회에 첫 타자에게 안타 맞고 바뀌어서 나는 사실 ‘감사합니다’ 했다. 그래도 이기고 있을 때 내려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넋을 잃고 앉아있었던 모양인데 그걸 보고 화 났다고 생각했다니…, 할 말은 없다. 역시 나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며 웃었다.

다들 김병현을 오해한 것은 ‘1승’ 때문이었다. 7차례 선발 등판해 아직 승리를 거두지 못한 김병현에게는 요즘 등판할 때마다 ‘시즌 첫승’이 화제로 따라다닌다. 간만에 승리 투수가 될 기회를 날린 김병현의 모습에 안쓰러운 팬심이 더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김병현스럽게 역시 승리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김병현은 “원래 올시즌 목표는 25경기 선발 등판해서 10승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이기고 싶다”며 “하지만 지금은 무슨 100승, 200승 신기록을 세우는 것도 아닌데 내 1승이 그리 중요한가 싶다.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투수에게 넘겨주는 게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팀이 이기면 기분 좋고 덤으로 나도 이기면 기분이 더 좋기는 할 것 같다”며 첫승에 대한 모두의 기다림을 쿨하게 받아넘겼다.

#2015년, BK에게 가장 치열한 시즌

김병현은 KIA 투수 가운데서 최영필, 서재응 다음으로 형이다. 흔히 말하는 ‘베테랑’이다. 고참으로서 파릇한 후배들과 선발 경쟁을 펼치는 현실이 간단치는 않다.

김병현은 “원래 약도 잘 안 먹는데 이번에 왜 그런지 너무 힘들어 소염제랑 진통제를 다 먹었다”며 “여름이라 그럴 수도 있겠고, 7월에 2군에서 열흘 동안 3경기에 선발 나간 적이 있는데, 2군에서도 승이 하나 없어서 1승은 하고 1군 가야겠다 생각해서 이를 악 물고 던져서 3승 하고 왔는데 그게 쌓인 건가 싶기도 하고. 앞서 (8월5일) 넥센전에서 너무 힘을 줬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병현은 정말 치열하게 시즌을 지나고 있다.

선발 경쟁 숙제를 받고 야심차게 그리고 순조롭게 준비하던 스프링캠프에서 갑작스런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재활하고 다시 만드느라 시즌 초반을 2군에서 보냈다. 5월 1군으로 온 뒤 4차례 선발과 10차례 구원 등판, 부진한 김병현은 2군행을 자청했고 2군에서 회복한 뒤 7월말 돌아와 지금 1군에서 선발로 고정돼있다.

김병현은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선발로 던지다 불펜으로 갔을 때다. (6월9일 넥센전에) 주자 만루 상황에 팀이 지고 있을 때 중간으로 나갔는데 우리가 이겼다. 그래도 이 상황에 나를 투입하는 건 그만큼 믿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분 좋았다”며 “불펜에서 뛰다 7월2일 한화전에 다시 선발로 나갔다. 그때 경기 전에 우연히 기록을 봤는데 2군에서도 승리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독이 됐다.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다. 그날 경기를 망치고 2군 갔다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2군에서는 1승이라도 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가서 그 뒤 열흘 사이에 3경기에 나가 3승을 거뒀다. 2군에서도 고참인 내게 그렇게 기회 주는 게 힘든 일인데 고맙게도 해주셨고 나도 생각한대로 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1군에 왔는데 팀이 5위 싸움을 하고 있다. 재미있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 제공

#프로 데뷔후 처음, 재미있다

이 치열함은 프로 유니폼을 입은 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재미로 이어지고 있다.

김병현은 “학교다닐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미국에서는 좋은 환경에 돈도 많이 벌었지만 썩 재미있지 않았다. 다만 정말 좋은 타자들을 만났을 때 승부하는 재미는 있었다. 내 단계를 넘게 해준 타자들이 몇 명 있다. 삼진이라고 회심의 공을 던지면 끄집어내서 커트하고 안타 쳐내서 당황하게 만드는 타자들이었다. 그래서 ‘에이’ 하고 또 던지면 또 치고, 그런 게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때는 있었지만 지금같은 느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오랜만의 재미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후배들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다.

김병현은 “예전에는 내가 생각한대로 잘 되니 모든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금은 몸도 힘들고 전보다 기량이 많이 떨어진 것을 아는데 젊은 친구들과 붙으니까 재미있다. 예를 들어, 돈이 엄청 많은데 사고 싶은 걸 사는 사람과 뭐 하나를 사기 위해 돈을 모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의 차이 같다. 한국 처음 왔을 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병현은 타고난 ‘파이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붙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많은 팬들 기억에 남아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김병현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공을 던져야 했다. 몇 년을 고민했던 이 숙제가 이제 조금씩 풀리고 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투수 자신의 느낌이다.

김병현은 “한국에 온 것은 딱 한 가지 이유였다. 예전과 비슷하게라도 내 공을 던지고 싶었다. 전에 있던 곳에 가면 옆에서 조언해주는 사람, 좋은 선수들이 있으니 같이 보면서 운동하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3년쯤 되니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1군에서 계속 던지다보니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며 “옛날처럼은 안 되겠지만 분명히 팀에 도움될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 속에서 혼자 싸우지 않고 타자들과 싸우는 정도는 된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다.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아쉬운 점들은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자신감을 찾은 김병현은 올해 선발 준비를 지시받고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예상밖에 꼬이면서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이 재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김병현의 올시즌은 성공이다.

“생각과는 어긋났지만 팀을 보면 지금 5위 싸움을 하고 있다. 멤버가 절대 좋은 게 아닌데도 팀을 짜서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나도 이 상태로 안 아프고 더 던질 수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겠다. 팀이 플레이오프도 나가면 좋겠고. 남은 경기들, 5위 싸움에 내가 도움되게 하고 싶다”며 김병현은 다짐했다. “내년에는 절대 맹장염 같은 건 걸리지 않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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