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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 기자의 우리말 돌직구] 광복 70주년, 절대 써서는 안 될 일본말 찌꺼기⑤ 우리의 반성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일제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남긴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섬뜩함을 감출 수 없는 ‘저주’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그들이 심어 놓은 ‘식민교육’의 잔재들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우리의 무지가 더해져 일제의 식민교육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한 예로 적지 않은 사람이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고 있습니다. 또 벚꽃놀이를 일본의 놀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닙니다. 일본은 아예 국화를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벚꽃놀이를 왜색문화로 보는 것은 정말 일본도 모르고 우리 것도 모르는 시각입니다. 벚꽃놀이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윤중로 벚꽃축제’ 또는 ‘윤중제’로 쓰는 ‘윤중(輪中)’ 같은 말입니다. 순전히 일본어에 뿌리를 둔 말이기 때문이죠.
일본에서는 “강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을 ‘와주테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우리식 한자로 적으면 ‘윤중제(輪中堤)’가 되지요.
그런데 1960년대 말 서울시가 여의도를 개발할 때 섬 둘레에 방죽을 쌓고는 ‘윤중제’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때문에 윤중제의 길(방죽길)은 자연스레 ‘윤중로’가 됐지요.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서울시가 지난 1986년에 ‘윤중제’를 ‘여의방죽’으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말이 쓰이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 국민 대부분은 ‘윤중제’와 ‘윤중로’를 쓰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를 강점하면서 저지른 악행들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들이 심어 놓은 식민교육의 잔재들을 깨끗이 없애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베 노부유키의 후손이 “그것 봐라. 우리 할아버지 말이 맞았잖아”라고 큰소리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는 미래도 없다’고 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입니다.

■위안부 기림비

‘기림비’는 순우리말 ‘기리다’의 명사형 ‘기림’에 “표식”을 뜻하는 한자말 ‘비(碑)’가 더해진 신조어입니다. 그런데 ‘기리다’는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따위를 칭찬하고 기억하다”를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참, 잘했어요”이지요.

억울하고 원통해 위로를 받아야 할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대체 누구의 생각에서 처음 ‘기림비’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정말 한심한 신조어입니다. 특히 아직 살아계신 분들을 위해 비를 세운다는 발상 자체가 ‘전시 행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지금 ‘기림비’를 세울 게 아니라 훗날 그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 ‘위령비’를 세우는 게 우리의 자세입니다. 다만 지금 꼭 비를 세워야 한다면 ‘기억비(記憶碑)’라는 말을 만들어 쓰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일제 36년
‘일제 36년’이라는 말이 마치 관용구처럼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세월이 36년이라는 얘기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계산입니다. 우리가 주권을 잃은 국치일은 1910년 8월 29일이고, 그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은 1945년 8월 15일입니다. 이 기간을 계산하면 34년 11개월 16일이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채 35년이 안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 치욕스러운 역사를 34년으로 줄여 쓰지는 못할망정 36년으로 늘려 쓰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반올림을 해도 ‘일제 35년’입니다.

■‘-적(的)’
‘역사적 인물’ ‘행정적 지원’ ‘경제적 중심’ 등으로 많이 쓰는 접미사 ‘-적(的)’은 순전히 일본말 찌꺼기입니다. 메이지 시대 때 일본인들이 영어의 ‘-tic’을 옮겨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 말이죠. 일본어 발음은 [테키]입니다.

이 때문에 최현배 선생께서는 평생 이 ‘-적(的)’ 자를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참 많은 글을 쓰셨지요. 우리 역시 조금만 신경 쓰면 ‘-적’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언어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과 글이 훨씬 좋아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사실 ‘-적’이 들어간 단어를 쓰면 말과 글의 분위기가 굉장히 딱딱해지거든요. 한마디로 ‘관공서 문서’ 냄새가 폴폴 풍기죠.

앞의 예문들도 ‘역사 인물’ ‘행정 지원’ ‘경제의 중심’ 등처럼 ‘-적(的)’을 쓰지 않는 것이 훨씬 깔끔합니다. ‘물적 지원’ 같은 말 역시 ‘물자 지원’으로 단어만 살짝 바꿔 주면 ‘-적’을 빼고도 충분히 쓸 수 있고요.

이렇듯 우리말로 쓸 수 없으면 모를까, 일본말 찌꺼기를 남발하는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창씨개명
우리의 부모로부터 받은 성명(姓名)을 일본식 시메이[氏名]로 바꾸는 것이 창씨(創氏)입니다. ‘씨’를 새로이 만드는 것이죠. 여기에 이름까지 바꾸는 개명(改名)을 한 것이 바로 창씨개명(創氏改名)입니다.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일본이 만들고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말입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일본의 그릇된 생각이 드러나도록, ‘창씨개명’을 ‘일본식 성명 강요’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일제가 만든 말 ‘창씨개명’만 쓰고 있습니다. 식민교육 탓이죠.


■신촌, 평촌, 일산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려 한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지개명(創地改名)도 했습니다. ‘새말(새터말)’ ‘벌말’ ‘밤나뭇골’ 등의 순우리말 땅이름들은 자기네 한자말인 ‘신촌(新村)’ ‘평촌(坪村)’ ‘율곡(栗谷)’ 등으로 바꾸는 식이죠.

‘신촌’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대한제국 때까지 ‘새말’로 불리던 곳입니다. 조선 중종 때 문정왕후가 보우선사를 가까이 두고자 도성 가까운 곳에 봉원사를 지었는데, 백성들이 그 절을 ‘새절’이라 불렀지요. 그리고 절을 짓기 위해 많은 일꾼들이 모여들어 큰 마을을 이루자 ‘새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를 일제가 자기네 식 한자로 바꾼 게 신촌입니다.

또 일제는 원래 한산(韓山)이던 곳을 대한제국과 관련된 ‘한(韓)’이 있다는 이유로, ‘일산(一山)’으로 낮춰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편 경기도 ‘안산(安山)’시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불리던 이름을 일제시대 때 잃어버리고 ‘반월(半月)’로 불리었으나 지역 향토연구가의 노력에 힘입어 ‘안산’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안산처럼 다른 곳들도 일본식 땅이름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고, 본래 이름을 찾아야 합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탓에 우리말에는 일본식 표현이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는 속담도 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도 그중 하나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으므로, 이런 속담이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그런 말에 ‘우리 속담에 이르기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본이 아니니까요. 그냥 ‘옛말…’ 정도면 충분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역시 일본 속담입니다.

이 밖에 우리 말에는 ‘일석이조(一石二鳥)’ 같은 일본식 신조어와 ‘~에 다름 아니다’ 따위의 일본식 번역투 문장도 넘쳐납니다.

일석이조는 일본 번역자들이 영어권 국가의 속담인 ‘Kill two bird with one stone(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다)’을 자기네 식으로 옮긴 것이고, ‘~에 다름 아니다’는 일본말 ‘~니 치가이 나이(~にちがいない)를 글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는 하면, ‘일석이조’는 ‘일거이득’ 또는 ‘일거양득’입니다. ‘~에 다름 아니다’는 ‘~임이 분명하다(틀림없다)’나 ‘~과 다름없다’ 정도로 쓰는 것이 우리말다운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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