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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농구父子’ 허재-허훈의 티격태격 수다

두 아들은 아버지인 허재 전주 KCC 전 감독(50)에게 불만이 하나씩 있다.

첫째 허웅(22·원주 동부)은 아버지의 흡연이 걱정이다. 담배 좀 끊으라는 아들의 얘기를 아버지는 좀체 따르지 않는다. 허웅은 얼마 전 건강검진권을 아버지에게 줬다. 하지만 아버지 허재는 아직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둘째 허훈(20·연세대)은 아버지의 패션 감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허재와 아내 이미수씨(49)가 26일 둘째 아들이 훈련하고 있는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체육관을 찾았다. 허 전 감독은 청바지에 옷깃이 있는 연한 군청색 셔츠를 입었다. 금목걸이와 팔찌도 했다.

연세대 농구선수 허훈이 아버지인 허재 전 KCC 감독, 어머니 이미수씨와 26일 연세대 내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허훈은 “이 목걸이는 뭐야. 아, 진짜 할아버지 같아. 좀 젊게 입어야지”라고 아버지에게 핀잔을 줬다. 허 전 감독은 막내의 장난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쪽 무릎에 아이싱을 한 아들을 보며 “너, 무릎은 어떠냐”고 몸상태를 물어봤다.

중국 기자의 엉뚱한 질문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라며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던 허 전 감독도 이젠 자식들의 잔소리를 들을 나이가 됐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허 전 감독은 요즘 아들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 최근 2015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서울 SK·울산 모비스와 경기를 치른 둘째 허훈이 두 경기에서 각각 25점·7도움·5가로채기, 23점·7도움·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대표팀 가드 김선형(SK)·양동근(모비스)과 매치업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허훈은 단 두 경기로 대학 농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됐다. 농구 관계자들은 ‘허훈이 허재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라는 화두에 한 마다씩 거들었고, “아버지 명성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허훈의 당돌함에 침체돼 있던 농구판이 활기를 띠었다.

■자식이기 전에 농구 선수 vs 농구 선수이기 전에 아들
허훈은 경기 전 항상 관중석부터 확인한다. 아버지 허재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허재는 지난 20일 모비스와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허훈은 “아빠의 명당 자리가 있다. 코트에서 가장 먼 관중석 꼭대기층의 구석 자리를 보면 아빠가 있다”라고 말했다.

허훈은 아버지가 오면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뛴다. 허훈은 “아버지에게 혼나기 싫어서 아버지 앞에선 더 이를 악물고 뛴다”고 했다. 허훈은 모비스와 경기 3쿼터 도중 다리에 경련이 왔다.

연세대 농구선수 허훈이 아버지인 허재 전 KCC 감독과 26일 연세대 내 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허 전 감독은 아들의 ‘체력 부족’을 지적했다. “훈이한테 20대인 네가 쥐가 나면 되겠냐고 했다. 훈이만이 아니다. 요새는 선수들이 힘들면 훈련을 중단한다. 힘든 순간이 ‘7’이라고 하면 ‘7’을 넘어 ‘8, 9, 10’까지 훈련을 해야 체력이 길러진다”고 했다. 허훈은 옆에서 “그렇지. 내가 항상 그 ‘7’을 못 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이미수씨는 “요즘 애들이 하루 종일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훈이도 그렇고…”라며 허 전 감독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렇듯 부부 사이 의견은 종종 엇갈린다.

이미수씨는 “이번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초등학교·중학교 때 코트를 지배했던 훈이의 플레이 스타일이 나왔다”고 했다. 허 전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 마다 각 시기에 맞는 농구가 있다. 나이대에 맞는 농구를 해야된다. 그리고 한, 두 경기 잘했다고 유망주가 아니다.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허재에게 웅·훈 형제는 아들이기 이전에 농구선수다. 어머니는 정반대다. 이미수씨에게 형제는 농구 선수이기 이전에 ‘내 아들’이다. 이미수씨는 “웅이는 속이 깊다. 너무 의젓해 가끔 놀란다. 훈이는 집에 있으면 같이 수다를 떤다. 형이 여자친구를 만나고 어쩌고, 시시콜콜한 바깥 얘기도 다 전해준다”라고 말했다.

이미수씨는 MRI를 빨리 찍을 수 있는 병원, 무릎을 잘 치료하는 병원, 고려대·연세대 등 대학가 근처에 용하다는 병원을 꿰고 있다. 아들들이 다쳤을 때마다 병원에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허 전 감독도 “아내가 없었으면 두 아들이 농구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원한 농구인으로 살아갈 3부자
허 전 감독은 지난 2월 KCC 감독에서 사퇴한 뒤 지인들과 낚시·골프를 즐기며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두 아들과 대화도 많아졌다. 물론, 주로 농구 이야기를 한다.

요즘 서울 회현동 집에선 첫째 허웅이 사온 반려견 ‘코코’도 키운다. 허훈(182㎝)이 허 전 감독(188㎝) 옆에서 어깨 높이를 비교하며 “에이, 아빠가 나보다 별로 안 크네”라고 장난을 쳐도 별 반응이 없던 허재는 “코코~”를 부르며 반려견과 얼굴을 맞댔다.

허재 전 감독은 잠시 코트를 떠나있지만 여전히 농구를 놓지 않았다. 예전처럼 아마추어 농구 경기를 줄곧 보러 다닌다. 한국 농구 걱정도 여전하다. 허재 전 감독은 “신동파-이충희-허재-이상민으로 이어진 농구 스타의 계보가 끊겼다. 걸출한 슈터도 보이지 않는다. 스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허훈은 프로-아마최강전 SK와 경기에서 4쿼터에만 12점을 몰아넣었다. ‘스타’의 자질 중 하나인 승부처엔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허훈은 경기가 끝난 뒤 “골을 넣어줄 선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직접 공격에 나섰다”고 말했다.

두 아들 칭찬에 인색했던 허재 전 감독도 “(훈이가) 스타가 될 잠재력은 있다. 그런데 스타는 화려함보다 성실함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큰 부상도 없어야 하고. 기본을 한 뒤에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게 스타”라고 말했다.

‘농구 대통령’이라 불렸던 허재 전 감독은 자신을 ‘영원한 농구인’이라 일컬었다. 허 전 감독은 “농구인은 농구를 하며 평생 살아야 한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다른 걸 먹지 않는다. 운동 선수로 사는 건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이제 웅이, 훈이도 농구인이다”이라고 말했다.

이때 허훈이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저는 외롭고 그런 거 전혀 없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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