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강한 것이다.’
서른 중반으로 들어서는 이세돌 9단이 주변의 우려와 달리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그 비법(?)에 대해 이9단은 부드러움을 꼽았다.
지난 28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막을 내린 제27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이9단이 박정환 9단을 맞아 207수 만에 흑불계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높이 들어올렸다. 지난해에 이은 대회 2연패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이다.
전기 챔프로서 시드를 받은 이9단은 27일 진행된 준결승에서 중국의 신예 강자 양딩신 3단을 꺾은 데 이어 결승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랭킹 1위 박9단까지 잠재웠다.
이날 승리로 이9단은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회 2연패를 이뤘다. 1~4대회를 석권한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 9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회 최다우승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활약 덕에 한국바둑은 이 대회에서 통산 10회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과 함께 최다우승국 반열에 올랐다.
특히 이9단은 자신의 뒤를 이어 현존 세계 최강자로 불리는 박9단에게 통산 13승6패로 크게 앞서면서 권좌를 물려줄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9단이 랭킹 1위를 달리는 동안(21개월)에도 상대전적에서만은 이9단이 5승1패로 우세를 보이고, 4차례 벌인 타이틀전에서도 3승1패로 우위를 지켰다.
한동안 국내랭킹 3위로 밀려났다가 최근 2위로 올라서며 다시 진격을 시작한 이9단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도 “2009년 21회 대회 때 이 장소에서 준우승의 눈물을 흘렸다. 6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우승을 해서 기쁘다. 더욱이 국내 최고 선수인 박9단과 결승을 치러 감회가 깊다”며 “이번 우승을 발판으로 세계대회 우승을 계속 쌓아가겠다. 마흔 이전에는 승부의 무대에서 밀려나지 않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3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 다른 기사들과 달리 여전히 강하고, 점점 더 강해지는 비법에 대해 ‘부드러움’을 꼽았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어떤 변화에서 5할의 승산만 있으면 무조건 전투에 들어갔는데, 요즘 들어서는 자신이 있어도 타협부터 생각한다는 게 이9단의 얘기다.
“어릴 때는 머릿속에 늘 바둑판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승부한다. 나이가 들면서 바둑도 부드러워졌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쓴맛을 보면 이제 그것을 고집하지 않게 된다. 경험이 쌓인다는 게 이런 것인 듯하다”고도 말했다.
이날 우승 후 몇 시간 쉬지도 못한 채 KB바둑리그에 출전해 SK엔크린의 이태현 5단을 꺾으며 팀(신안천일염)에 승점을 안긴 이9단은 이튿날 오전 몽백합배 16강 출전을 위해 중국 광저우로 떠났다. 다음주부터는 삼성화재배 본선에 출전하는 등 강행군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9단은 “이겼을 때는 피로함을 못 느낀다. 승리보다 달콤한 원기회복제는 없다”며 “세계대회에서 좋은 바둑으로 한국 바둑팬들을 즐겁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