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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 울고 웃었던 사직구장, 그 이후 이야기

12일 사직 한화전에서 경기를 재개하기 위해 구단 직원들이 구장 정비를 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어제 경기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롯데 이종운 감독(49)은 13일 사직 한화전을 앞두고 전날 경기를 떠올렸다.

12일 사직구장에 내린 비로 희비가 갈렸다. 이날 경기 전 내린 비로 시작 시간이 32분이나 늦춰졌다. 게다가 롯데가 8-0으로 앞선 3회말 2사부터 빗줄기가 거세져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 20분 넘게 비가 쏟아졌고 방수포를 덮은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주변을 제외하고 내야가 물바다가 됐다.

12일 사직 한화전에서 경기가 비로 중단되자 만루홈런을 친 김문호가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그러다 경기 중단이 선언된 후 30분이 되기 직전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경기를 재개하기 위해 롯데 구단 직원들이 거의 총동원됐다. 구단 경호 직원을 포함해 사무를 보던 직원들도 그라운드로 뛰어들어가 내야에 고인 물을 빼냈다. 구장을 재정비한 후 경기가 재개됐고 롯데는 11-2로 승리했다.

이 감독은 “경기가 중단된 후 위성 사진을 보니 비가 더 올거 같았다. 그런데 경기 중단 30분이 되기 전 비가 멈췄다”라고 했다.

마침 전날 가장 절박하게 경기 재개를 원했던 김문호가 지나갔다. 이 감독은 “문호야, 구장 직원들에게 꼭 커피 쏴라”고 말했다.

김문호는 전날 2회 팀 승리를 이끄는 만루홈런을 쳤다. 생애 첫 만루홈런이었다. 그는 “어제 제주도에서 어머니와 누나, 매형까지 왔었다. 어머니가 잘했다고 하시더라”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쳐 본 만루홈런이었다. 치고 달리는데 관중들이 내 이름을 연호해서 홈런이 된 줄 알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비로 경기가 중단돼 김문호의 홈런이 날아갈 뻔 했다. 주위 동료들이 김문호에게 “기도라도 해야된다”라고 했고 코칭스태프들은 “물 뺄 때 너도 달려가서 도와야한다”며 거들었다.

김문호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비가 그쳤고 구장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구장을 정비한 덕에 홈런을 지킬 수 있었다. 김문호는 훈련을 마친 후 “커피를 사러가야한다”며 나갔다. 김문호는 구장을 정비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돈 40여만원으로 커피 100잔을 사서 보답했다.

구장을 정비할 때 쓰인 흙도 큰 도움이 됐다. 구단 관계자는 “전날 쓰인 흙은 ‘컨디셔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1500도에서 구웠다고 한다. 그 흙은 습기를 빨아들인 다음에 주위가 건조해지면 다시 습기를 내뿜는다. 미국에서만 생산되는 흙이다. 전날 재고의 3분의 1 가량을 소진했다고 한다”고 했다.

구장을 정비하는 시간 동안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진은 그동안 진땀을 뺐다. 부산 MBC 최효석 해설위원은 “한시간 넘게 다른 이야기로 중계 시간을 채워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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