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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IA 3선발’ 임준혁 “내가 달라진 것은 딱 한 가지”

KIA 투수 임준혁이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며 달라진 올시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진 기자

지난 겨울. KIA가 5강 싸움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임준혁(31·KIA)이 KIA의 3선발로 우뚝 서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KIA 선수단 밖에서는 그랬다.

프로 입단 13년차. 2003년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KIA에 2차 2번으로 지명돼 입단한 임준혁은 입단 첫해를 2군에서만 보내며 포수에서 투수로 변신했다. 그 뒤로 10년도 넘었지만 ‘유망주’로만 불렸다.

하지만 올해, KIA 팬들도 “이런 날을 볼 줄은 몰랐다”고 놀랄 정도로 ‘포텐’이 터지고 있다. 미운오리새끼가 오랜 시간을 지나 백조가 되듯이, 임준혁도 방황의 시간을 지나 야구 인생의 가장 밝은 ‘그날’을 만들어가고 있다.

14일 현재 8승(4패) 방어율 3.98. 양현종과 스틴슨에 이은 3선발로 KIA의 ‘10승 트리오’ 탄생을 기대하게 하고 있는 임준혁은 올시즌 자신의 변화에 대해 “한 가지밖에 없다”며 “야구를 대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어느덧 서른이 넘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미래를 생각하게 된 성숙함과 진지함이 유망주를 선발 투수로 바꿔놓았다.

임준혁은 선수단 내에서 후배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선배 중 하나였다. 1970년대생 고참 투수들과 1990년대생 후배들로 나눠진 KIA 마운드에서 임준혁은 딱 가운데, 1984년생 중고참이다. 7년 차이 후배 투수 심동섭은 “준혁이 형은 지킬 것을 확실히 지켜야 하는 성격이다. 선후배 사이의 예절이나 규율에서 특히 그렇다. 많이 무서웠다. 그런데 형이 없었다면 우리 팀 기강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임준혁은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는 강한 성격을 가졌다. KIA의 대표적인 ‘파이터’로 유명하다.

그렇게 강하게만 보였던 임준혁도 깊은 고민을 하며 나약해진 시간이 있었다. “지난해 야구를 그만 두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임준혁은 “그동안 야구를 너무 못했다. 어릴 때는 뭘 몰랐는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야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준비를 참 많이 했다. 지난해까지처럼 그런 모습만 보여주면 분명히 1~2년 안에 방출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상무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꼬박 9년 동안 1군 기록을 남겼지만 흔히 말하는 ‘풀타임 1군’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0년 넘게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희망도 사라져 포기하려고도 했다.

2군도 아닌 3군에서 지난 시즌 마지막을 보낸 임준혁은 “군대 전역하고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몸도 아프니까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때려치우려고 할 때 잡아준 사람이 (서)재응이 형과 이대진 코치님이다. 재응이 형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형이 ‘네가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야구 말고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서른 넘어 나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대진 코치님도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얘기해주셨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마음 먹고 지난 시즌을 마칠 때 1차 목표를 마무리훈련으로 삼았다.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KIA는 완전히 새롭게 출발했다. 김기태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수단 전체가 바뀌었다. 임준혁도 그 안에서 기회를 얻었다. 물론 그만큼 많은 땀을 흘렸다.

마무리훈련을 마치고 스프링캠프를 가면서 임준혁은 선발 경쟁 후보군에 들었다. 그리고 캠프를 중반쯤 지나는 동안 KIA가 비워두고 경쟁시켰던 4·5선발 중 한 자리에 낙점됐다. ‘선발로 올시즌을 준비해보자’는 김기태 감독과 이대진 코치의 한 마디는 임준혁에게 새로운 희망과 집중력을 주었다.

임준혁은 “마무리캠프가 승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른 두살이니까 24~25살 동생들보다 기회는 당연히 적을 것이다. 그 적은 기회를 잡아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달라진 것은 한 가지다. 공이 달라진 게 아니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겨울 동안 운동하고 올시즌을 치르며 ‘그동안 내가 혼자 잘 하는 줄 알고 너무 안일했구나’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까지나 계속 KIA에서 야구를 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 제공

KIA 마운드에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속 150㎞대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주가 즐비했다. 임준혁도 그 중 하나였다. 지금 그의 최고 구속은 잘 해야 140㎞대 초반이다. 대신 훌륭한 제구가 생겼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재미가 더해졌다.

임준혁은 “그때 야구를 잘 했다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지금보다 연봉도 많이 받고 더 위에서 노는 투수가 돼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도 괜찮다. 구속이 150㎞ 나올 때 잘 했다면 대신 구위만 믿고 던지느라 지금 이런 기분을 몰랐을 것 같다. 지금 내 구위로 타자들과 상대하는 것이 재미있다. 머리싸움도 하고 상대 반응도 보는 재미가 있다. 뭘 하나 얻으려면 하나 내놓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어릴 때는 하지도 않고 얻으려고만 하니 탈이 났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임준혁은 지금 8승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8월19일 SK전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살짝 고비도 왔다. 하지만 지난 10일 두산전에서 5.2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다. 승수는 추가하지 못했지만 KIA는 이긴 경기였다. KIA가 5강을 다투고 있는 절정의 승부처에서, 임준혁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임준혁은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솔직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성적은 내년에도 쌓으면 된다. 우리의 가을 야구를 내 10승과 바꾸고 싶지는 않다”며 “올해 끝나고 마무리캠프와 내년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더라도 똑같다. 올시즌 우리 팀에 선발로 뛴 투수들이 많다. 나는 동생들과 처음부터 또 경쟁을 해야 한다. 반드시 살아남고 싶다. 그러다보면 1년이 3년, 4년 될 것이다”고 내년 준비를 이미 각오하고 있다.

KIA가 가을야구의 기로에 선 지금, 이제 임준혁은 4~5차례 더 등판할 기회를 남겨두고 있다. 임준혁은 “몇 년을 더 할지 모르지만 내 야구인생은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올시즌 최대의 승부처를 앞둔 KIA, 그리고 3선발 임준혁의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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