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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있어요’가 불륜드라마라고요? 드라마를 잘못 보셨군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존재다. 같은 이야기라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곤 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는 질문. SBS 주말극 <애인있어요>는 불륜드라마일까 아닐까.

정답부터 얘기하자면 불륜드라마가 아니다. 그런 해석은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배치되며 텍스트를 오독하게 만드는 그릇된 시각으로 작용할 뿐이다. 박한별이 연기하는 극중 캐릭터 강설리가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젊고 예쁜데다 고아라는 출신배경을 딛고 일어선 꿋꿋한 성품과 똑똑한 머리까지. 강적이다. 불륜이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만 왠지 망설여진다. 그저 늙고 돈많은 남편의 성욕이나 달래주는 그렇고 그런 여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강설리와 최진언(지진희)의 사랑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불륜이라기 보다는 진짜 사랑에 가깝다. 사랑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여하튼 최진언은 성적 매력이 다했다고 해서 아내 도해강(김현주)을 버리지 않았다. 진언은 그토록 진저리치게 싫어했던 아버지 최만호(독고영재)와 너무도 닮은 아내의 모습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도해강은 죽은 딸을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남편과 다른 여자의 키스를 목격하고도 화를 내지 않는 인물이다. 인간적인 연민과 분노가 없으랴만은 권력을 제대로 쟁취하기 위해서 내밀한 감정을 억누르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기업 변호사로서 회사의 비리를 까발린 내부고발자를 어떻게 내칠지 전략을 짜는 모습이나 부부관계가 더는 나빠질 수 없는 때에도 시아버지의 부사장직 제안에 기뻐하는 모습은 순수와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순수하지 않은 것과 태생적으로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잠시 어울릴 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사랑은 장담할 수 없다. 최진언은 여러모로 순수의 상징으로 읽힌다. 대형 제약회사 오너의 하나밖에 없는 엘리트 아들로서 후계 순위 1위가 마땅하지만 스스로 그런 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구체적으로 악행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렸을 적 아버지의 악마같은 모습을 목격하고 그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런 진언에게 아버지처럼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라도 쓸 수 있는 야망에 찬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일리 없다. 아내 도해강은 왜 끝까지 남편 진언이를 붙잡으려고 한 것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부사장직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애인있어요>의 핵심갈등은 순수한 사랑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거짓 사랑의 대결 구도로 봐야한다. 강설리가 남편 있는 남자를 사랑했으니 불륜녀이고 마땅히 욕을 들어야 한다는 단순한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앞서 강설리와 최진언의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진짜 사랑에 가깝다고만 한 이유가 있다. 강설리는 사랑의 본능, 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을 얘기하며 순수한 진언을 설득시켰고 그의 부인이 된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표징처럼 보였던 강설리도 변하게 된다. 그러면서 진언의 사랑의 행로도 방향을 튼다. 태생적으로 권력, 야망과 거리가 멀고 순수한 대상을 찾아헤메는 그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애인있어요>를 불륜드라마로만 보면 놓치게 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극중 모든 갈등과 싸움은 결국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 가치를 저버리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내부고발자를 처리하는 대기업의 야만적인 방식, 청부살인, 재벌3세들의 안하무인 갑질, 언론플레이는 너무나 황당해보이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병폐의 극적인 투사일 뿐이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수용자는 하나의 껍질을 깨고 성장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인있어요>는 불륜드라마가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여러모로 보는 사람에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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