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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들, 위험에 대비하세요” 동물보호단체 ‘대처방법’ 배포

‘용인 캣맘 사망사건’ 이후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른바 ‘캣맘’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용인 캣맘 사망사건은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급식과 함께 겨울집을 만들던 ㄱ씨(55·여)가, 아파트에서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벽돌에 머리를 맞아 숨진 사건이다. 사건을 접수한 용인서부경찰서는 자연적 낙하로 일어나기 힘든 점이라 보고 ‘캣맘 증오’로 일어난 범죄가 유력시된다는 전제 하에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12일 119의 협조를 통해 아파트에 심어진 나무 중 가지가 부러진 흔적을 찾고, 전문가 도움을 얻어 낙하 궤적을 계산하는 등 과학 수사를 통해 벽돌 최초 투척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을 좁혀나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사건 발생 6일 째인 오늘까지도 유력한 목격자와 CCTV 등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고, 벽돌에서도 피해자 DNA만이 검출되어 수사는 난항을 겪으며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이에 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 등 동물 보호 관련 단체들은 길고양이 돌봄이 ‘캣맘’들을 위한 안전수칙과 행동요령을 공고하고 인식개선 운동을 펼치는 등 ‘캣맘 안전’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고보협은 이번 ‘용인 캣맘 사망사건’을 ‘캣맘 증오 범죄’로 보고 추모 및 ‘동물 혐오자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길고양이 급식과 집지어주기 등 돌봄 활동을 폭언이나 물리적 제재, 때로는 폭행으로 막아서는 사람들을 동물혐오자(애니멀 포비아)로 보고 이들을 만났을 경우 대처하는 요령을 정리하여 배포했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제작해 배포한 ‘캣맘을 위한 안전수칙 및 행동요령’.

용인 캣맘 사망 사건이 실제 증오범죄에 의한 것인지 아직 객관적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고보협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캣맘’을 향한 증오와 시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2013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는 캣맘들이 주는 사료에 독약을 뿌려 고양이들을 죽인 사건이 있어 서울시청이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고, 요리사 이연복씨는 지난 7월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돌봐주던 길고양이를 누군가가 몽둥이로 때려죽여 나 보란듯이 내 차 앞에 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문배달을 하며 길고양이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책을 출간하는 등 ‘길고양이 사진사’로 유명한 김하연씨는 페이스북에 여러 차례 ‘길고양이 급식에 항의하고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는 “어떤 때에는 아파트 단지 노년층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바람에 간절히 쳐다보며 내가 사료를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서도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 “이곳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은 손모가지를 잘라버린다”라고 쓰인 전단이 벽에 붙은 사진에 많은 ‘캣맘’들이 “순수한 증오만 남은 글이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기자 역시 서울 은평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이곳은 동물원이 아니다. 길고양이에 밥을 주지마라”고 흰 종이에 두꺼운 펜으로 쓰여진 경고문을 본 일이 있다. 인터넷에 널리 퍼진 ‘캣맘 엿먹이는 방법’이라는 게시물은 “사료에 부동액을 타라”는 등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길고양이 전체 살처분’을 주장하기도 한다. ‘Catstogo’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한 블로그 등에서는 “길고양이는 생태 파괴의 주범”이라며 “길에서 생을 보내다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먹고 차에 치이는 등 고통스럽게 살고 평균연령보다 짧은 생을 마감하게하는 것보다 포획해서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길고양이에게도 좋은 일이고, 길고양이에게 죽을 위험이 있는 조류나 소형 포유류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위 캣맘은 고양이 개체를 유지시켜 지원금을 타내고 ‘길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만족과 위안을 얻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며 “TNR(중성화 후 방사) 사업 역시 개체 조절 효과도 없는데 이들의 욕심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길고양이 급식을 막을 근거는 없다. 동물보호법 2조는 모든 동물을 대상으로 굶주림과 질병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정의하고 있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 격리 또는 사살해야 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유해조수 지정은 환경부령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이 경우에도 포획 방법과 규모 등은 동물보호법이 정하는 절차를 따라야한다. 또한 2015년8월4일 개정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서 지정한 유해야생동물에도 고양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길고양이와 공존을 위해 서울 강동구와 경기 성남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급식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공익과 복지의 목적에서 넓게는 동물도 공존해야하는 자연 개체에 들어가고, 살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법과 윤리적인 관점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양이 등 동물이 도시와 주거지역에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동물 돌보기를 실천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프리랜서 사업가 선가현씨(35·여)는 ‘캣맘 위협’이 상존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도시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5년여 전, 오피스텔에 붙어있는 작은 녹지에 밥을 주며 길고양이 돌보기를 시작했다.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하는 정도는 약과예요. 심할 경우 거친 욕설을 하고, 마치 때릴 듯한 태도를 취하며 삿대질을 해대기도 합니다. 캣맘들이 대부분 육체적으로 연약한 젊은 여성들이다보니 더 타깃이 되는 듯해요.”

그는 동물보호에 관한 법령을 조사한 후 ‘길고양이 급식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요지를 담은 전단을 만들어 가지고다니며, 항의하는 사람에게 건넸다고 한다. 이 전단을 SNS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내려받아 나눠주며 “효과가 있었다”고 해 많이 안도했다고 한다.

선씨는 “하지만 고양이 돌보는 사람에 대한 위협이 계속되는 것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시간대에 후드티와 머플러로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나갈 정도로 조심하고 신경을 썼어요. 고양이 때문에 주변이 더러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되니까 배식처 근처에는 담배꽁초까지 줍는 등 꼼꼼히 유지관리했구요. 하지만 끝내 누군가가 독약을 살포했고 아기고양이까지 낳은 어미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보아야만 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고보협 등 단체는 “고양이 급식은 불법이 아니며, 급식자에게 욕설·폭언·위협을 하는 것이 불법”이라며 “차분한 설명과 함께 녹취와 녹화 등 가혹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에 들어가고, 최대한 싸움을 피하되 의견을 전달하라”고 당부했다.

여론은 ‘용인 캣맘 사망’을 계기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쪽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인간, 자연, 도시, 기타 생물 모두 공존해야하는만큼 “내가 싫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입장은 한발 물러서야한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돌보미인 ‘캣맘’들 역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배식장소를 물색하고 길고양이 급식이 쥐 개체수 억제, 고양이에 의한 음식쓰레기와 타 동물 공격 빈도 감소 등 긍정적 면이 많이 있다는 점도 홍보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동물에 대한 혐오와 사람 간 분쟁이 폭력사건으로까지 빈번하게 이어지는 현실이 ‘용인 캣맘 사망사건’을 계기로 수면으로 떠오르고 활발한 토론이 인터넷은 물론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지금, 시민사회는 어떠한 결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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