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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반대, ‘미러링’을 쓰니 한눈에 ‘팍’

정부 당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한국교원대·경희대·이화여대·전남대·영남대 등 많은 대학 역사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야당과 역사 연구단체도 속속 성명을 발표하는 가운데 시민 사회와 대학가에서도 대자보와 촛불집회 등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중 ‘미러링’을 통한 반대운동이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서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러링’은 상대방이 합리적이고 온당치 못한 언행을 할 경우 그와 똑같은 논리와 방식으로 말 또는 행동을 보여주어 비판하고, 드러나는 말과 행동 속에 정반대 메시지를 녹여 상대에 전달하는 방법을 말한다.

SNS에서 관심을 모은 연세대학교 국정교과서 관련 대자보. 페이스북 캡쳐

연세대학교에는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라는 제목으로 대자보가 붙었다. 궁서체로 쓰여진 글씨는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은 빨간색 글꼴을 사용하고,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예전 용어인 ‘각하’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흔히 보는 대자보와 느낌이 다르다. 문체도 ‘선포하시었다’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등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내용은 사전적 의미로 읽으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문장 일색인데다, 대자보 끝에는 서기 연도를 괄호 안으로 병기하고 ‘박정희 각하 탄신 98년’이라고 쓰는 등 이색적 느낌을 준다. 누구나 읽어내려가는 순간 북한 계몽·선동 포스터와 노동신문 문체를 사용했음을 알아챌 수 있다. 박근혜 현 대통령을 ‘최고존엄’으로 칭하는 데에서는 해학이 절정에 다다른다. 국정교과서는 독재정권이 정권유지와 획일적 역사해석을 통한 정통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는 논지를 북한을 통한 ‘미러링’으로 풍자한 대자보다.

연세대학교 미러링 대자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헬조선 늬우스’ ‘망했어요’ 등 해학적 소식을 전하는 인기 페이스북 페이지는 물론이고 개인들도 ‘공유하기’ ‘리트윗’ 등으로 대자보 사진을 퍼뜨렸다. “지금까지 본 중 가장 나를 웃게 한 저항이다” “누구인지 정말 머리좋다” “복잡한 설명 없이 한번에 이해가 된다”라는 등 평가도 긍정적이다.

청년예술인행동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다. 청년예술인행동 제공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 사회 현안에서 예술을 통한 시위와 사회운동을 해온 홍승희씨(25) 등 청년예술인행동 회원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대형 피켓에 ‘청와대는 너희집이 아니고 역사도 너희집 가정사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1인 독재자 정권’으로 해석하고 설명한 많은 학술지와 현대사 연구자료, 검인정 교과서 기술을 설명하며, 국정교과서화가 북한 등 독재 정권에서 ‘독재자 가정사 수준’으로 사용되는 것을 ‘미러링’으로 보여준 것이다. SNS를 통해 퍼져나간 청년예술행동의 1인 릴레이 시위 사진에는 “간단한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제대로 설명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러링’은 여성 권익 향상 운동에 주력하는 ‘메갈리안’ 등 인터넷 페이지에서 사용되며 크게 퍼져나갔다. 메갈리안 이용자들은 여성의 생리통과 생리휴가 필요성을 폄하하고 “건강 관리와 운동만 잘 하면 생리 중에도 휴가 없이 정상출근할 수 있다”는 일부 남성들에 반박하고자 “낭심을 맞아 아프다는 것 다 약해서 그런거다.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관리 잘 하면 낭심에 맞아도 안 아프다”고 하는 등 ‘미러링’을 주요 설득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러링은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논리에 기반하여 정반대 메시지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또한 긴 설명과 복잡한 설득작업 없이도 ‘이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고 정확한 효과’를 갈망하는 현대 사회에 새로운 인터넷 및 현실 토론 기법으로 힘을 얻고 있다. 중고교생에서 청년사회, 정치권과 학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두루 토론과 관심이 집중된 국정교과서 역사화 문제에서도 ‘미러링’은 새로운 서술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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