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미스터K의 현장속으로] 고 신해철 1주기 추모식, 차분하고, 따사롭게… 팬이 읽어내려간 추모사 뭉클

“그립습니다!”

허망했던 그 날도 오늘처럼 하늘이 푸르렀다. 산과 들녘은 또 다시 그때처럼 붉게 물들었다.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

고 신해철의 사망 1주기 추모식에 맞춰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추모관으로 하나씩 모여들었다.

고인이 남기고간 음악이 내내 울려 퍼지는 사이, 유족과 지인, 팬들은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다시금 훔쳤다. 시간이 지났지만 그를 향한 그리움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1주기 추모식은 식전행사와, 1~2부 추모식, 봉안식 등의 순으로 치러졌다.

추모식에는 고인의 부모와, 아내 윤원희씨, 딸 지유양과 동원군, 동료 밴드 넥스트 멤버와 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아내와 아이, 그리고 넥스트 멤버들이 추모 행사를 갖고 있다. 이선명 인턴기자 57km@kyunghyang.com

행사는 엄숙했다. 아이들도 아빠가 평소 좋아하던 보라색 리본을 가슴에 단 채 차분히 추모식을 지켜봤다.

안드레아 신부의 미사 집전에 이어, 밴드 넥스트의 이현섭이 동료를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현섭은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 뒤 “그가 있어 행복했다”며 “긴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지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팬 대표로 이승우군(19)도 추모사를 읽고 “그는 용감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고민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줬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또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그 뜻을 잊지 않겠다”며 “각자의 삶 속에서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공감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겠다”고 약속했다. 고등학교 재학생인 이승우군은 이날 교복 차림으로 추모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군은 직접 써내려 갔던 추모사를 찬찬히 읽다가 끝내 눈물을 떨궜다.

이어 기제사 예식과, 봉안식이 3시간 가량 이어졌다.

1년간 장내 추모관에서 안치됐던 고 신해철은 이날 유토피아 인근 평화동산으로 옮겨지는 봉안식을 통해 영면에 접어들었다.

넥스트 이현섭이 유해를 옮기고 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옮겨진 고 신해철의 유해는 평소 고인은 좋아하는 것, 사랑했던 것과 함께 2m 높이 탑 모양의 추모 조형물(묘비석) 내에 설치됐다.

야외 추모 조형물은 고인의 딸 지유양(9)의 그림과 ‘빛나는 눈동자가 있어 우리를 보고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들의 말을 모티프로 디자인됐다고 한다.

황금색 눈동자 모형이 안치단 위쪽을 장식했고, 아래에는 그가 평소 착용하던 선글라스와 안경, 가정집 모형, 스튜디오 모형, 각종 트로피, 장식구 등의 유품이 들어섰다.

함께 남긴 편지에서 아들 동원군(7)은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라고, 딸 지유양은 “아빠 뭐하고 계세요”라고 각각 썼다.

조형물 양 옆에는 아울러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랫말 ‘히어 아이 스탠드 포유’(Here I Stand For You)도 기다랗게 새겨졌다. 노랫말은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로 끝난다.

소속사 관계자는 “수 많은 히트곡 중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생전에 아꼈던 노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기억되길 바라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가사 전체를 각인했다”고 설명했다.

봉안식과 추모식은 넥스트 이현섭의 선창으로 고인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을 합창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팬들은 이밖에 방문록을 작성하거나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쓰는 등 1주기 추모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리기도 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한 팬은 “고인과의 생애 짧은 만남이 아쉽기만 하다”며 “내년에 또 뵙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팬은 “아직 많이 울지만, 그가 남긴 노래, 동영상을 위로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온 중년 팬은 “고인이 떠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게 화가 난다”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더 기울여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신해철의 사촌이자 가수인 서태지는 아내 이은성과, 동료 김종서 등과 함께 앞서 지난 20일 추모관을 일찌감치 찾았다.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등이 이날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난지 1년여가 흘렀지만 책임 소재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의료과실 혐의를 받고 있는 집도의 K씨는 병원을 옮겨 여전히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지난 2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처음 열린 공판에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K씨는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오히려 유족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존엄성을 침범해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고인의 의료정보를 공개했다”고 반박키도 했다.

이날 1주기 추모식 막바지 미망인 윤원희씨는 유족, 동료 등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의료분쟁과 관련한)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25일에는 고인의 유작이 빛을 봤다.

이날 발표된 추모 앨범 <웰컴 투 리얼 월드>에는 미발표곡 3개와 기존 히트곡 등이 수록됐다. 앨범에 수록된 동명 유작곡 ‘웰컴 투 더 리얼 월드’는 입시 문제로 힘겨워하는 10대들을 위무하기 위해 고인이 생전에 써두었던 노래다. 후반 작업을 거쳐 이날 뒤늦게 세상에 공개됐다.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