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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그랑드 오달리스크’,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1814년 작, 91×162㎝

오늘 그림은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라는 작품입니다. 신화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 방법인 누드화 종류인데, 다만 배경과 누드의 여성이 쓰고 있는 터번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작품이죠.

19세기 후반 서양 제국들이 식민지 경쟁을 펼치던 시절, 지금은 아랍세계라고 부르는 이 중동아시아의 문명은 관심거리 소품이었습니다. 이런 소품들이 등장해서 은근히 그들의 정복욕을 채워 주는 역할을 했지요. 어떻든 앵그르의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솜씨는 이런 그림에서도 여전합니다.

“그래요. 예술은 이제 반드시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혁명가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앵그르는 언젠가 말했습니다. 규범을 벗어나고 슬쩍 봐도 눈에 들어오는 그의 새로운 스타일이 어떤 부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합니다.

누드를 선택하고 여성의 몸을 고전적인 전통으로 감상하려고 하는 태도는 같지만, 그가 전형적인 비율과 표현을 무시하고 인체를 신기할 정도로 파격적인 비율로 묘사하거나, 기괴한 자세까지 요구하는 점 등은 언뜻 봐서 신고전주의 작가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혁명가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교육받아 온 형태를 파괴했기에 스스로 혁명가이고 싶어 했고, 뒤에 오는 후배들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할렘(술판의 애첩들이 기거했다는 장소)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알려진 이 그림의 무대는 전형적인 서양인들의 환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두꺼운 장식 커튼과 세밀한 터번, 그리고 아름다움 보석과 깃털부채 등이야말로 서양인들의 팬터지에 충족하려는 그들이 꿈꾸고 그들이 바랐던 동양의 모습이고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앵그르가 그리는 주제는 성공을 바라는 작가의 욕심과 (동방의) 정복을 바라는 사회 분위기가 맞았던 경우지요. 이것이 그가 주장했던 개혁이나 혁명이라는 단어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지방에서 들어온 수많은 장신구와 사치품 그리고 동방을 향한 팬터지가 노골적이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재현된 것을 제외하고 실재 예술에 대단한 혁명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허리의 곡선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도 이 여성의 허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술사 사상 가장 길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앵그르는 자신의 그림을 위해서 이미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작가들의 신체 변형에 관한 연구들을 탐독했고, 그 매너리즘에서 역시 영향받은 프랑스 퐁텐블로(프랑스 르네상스의 초기 미술 운동 중 하나. 유학파 화가들이 왕실화원에서 선진 이탈리아 예술을 전수해 주던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결과 마치 척추가 보통 인간보다 몇 개 더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누드가 생겨난 것이다.”

허리의 곡선을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면서 둥근 것을 강조하다 보니 누드가 정말 뛰어난 것인지는 애매해집니다. 여기 여성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기묘한 문화에 부응하는 욕망의 대상일 뿐이죠. 앵그르가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완성, 그 성실한 성공에 대한 욕구는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개혁과 변화가 여기 자리잡을 공간이 있을까요?

이 시기 앵그르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는 했으나, 들라크루아나 쿠르베가 시도하는 색채의 분할과 주제의 다양성, 표현방식 변화 등이 진정한 혁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예술을 향한 열정보다는 예술을 이용한 열정을 더 느끼게 됩니다.

미술사학자 안현배는 누구?

서양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예술사로 전공을 돌린 안현배씨는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예술품 자체보다는 그것들을 태어나게 만든 이야기와 그들을 만든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와 언어의 다양성과 역사의 복잡함 때문에 외면해 오던 그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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