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인터뷰를 보는 여러분이 배우 김정태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 일 것이다. 2001년 영화 <친구>의 살벌한 동급생 ‘도루코’를 시작으로, <똥개>의 진묵, <해바라기>의 김양기, 가깝게는 최근 종방한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의 최남철 등 겉으로는 멀쩡하든 살벌하든 잔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인물. 다른 하나는 2010년 영화 <방가? 방가!>의 용철을 시작으로 <체포왕>의 서형사, <간기남>의 서형사, <박수건달>의 태주, <7번방의 선물> 강만범 등에서 보이는 코믹한 인물. 그 중간의 김정태를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그나마 일상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던 KBS2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몇 주밖에 출연하지 못하고 지방선거 지원유세 논란으로 하차하고 말았다. 진짜 김정태는 영화 속 인물들 그 어디에 있을까. 단언컨대 김정태는 이 둘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조금더 섬세하고 위트가 있으면서도 ‘감성적인’ 사람이다.
“2015년요? 골프로 비유하자면 파(PAR) 파이브 롱홀에서 OB를 두 개 내고, 쓰리퍼터를 한 한 해죠. 더블 파 스코어에요.”
정리하자면 골프에서 다섯 번 만에 홀컵에 공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 플레이를 하면 안 되는 지역에 공을 두 번 떨궈 두 개의 벌타를 먹고, 그린 위에서도 세 번 동안 홀컵에 공을 못 넣어 결국 주어진 규정타의 두 배를 친 ‘힘든’ 한 해였다는 말이다. 그는 작년 한 해가 길고 외로웠다고 했다. 인간 김정태로서, 배우 김정태로서의 내실을 다져야 했던 한 해라고 술회했다. 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이후 벌어진 논란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 ‘야꿍이’ 지후 군과 이 프로그램에 출연을 예약해놓고 있었지만 지방선거 유세에 아이가 동원됐다는 의혹을 샀고, 이는 논란이 돼 결국 하차해야 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고 고백했다.
“제 불찰이 있었던 거죠. 경남 양산에 행사가 있어 갔다가 잠깐 들른 거였는데 결국 오해를 사고 말았어요. 참 외로웠어요. 내가 쌓아온 것들이 다 물거품이었다는 생각에,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가라앉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욱 사람이 싫어지고 그랬어요.”
그런 그를 다독인 것인 절친한 사이였던 배우 김승우였다. 대중이 싫어하고, 업계가 멀리하면 그 어느 곳에도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다. 하지만 김승우는 그를 다독이고 그의 소속사인 ‘더 퀸’에 영입하면서 안정된 연기 환경을 제공했다. 그는 최근 개봉한 영화 <잡아야 산다>에서도 김승우와 극중 친구인 허당 형사 역을 연기해 다시 한 번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김승우)형님과 영화까지 같이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인연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드라마 <미스 리플리> 때부터 알게 된 형님인데 영화 <헬머니> 대본연습 당시에 전화를 하셔서 끌어주셨어요. 여기 안 왔으면 큰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이번 영화도 소속사에서 만들게 된 거니까 잘 되든 안 되든 함께 부둥키면서 가야죠.”
그가 처음으로 배우로서 이름을 알렸던 것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였다. 머리를 빡빡 깎고 “밑에 놈 작업하나 하까?”하고 살벌하게 대사를 뱉던 ‘도루코’가 그였다. 원래 정운택이 연기하는 중호 역이 원래 김정태의 것이었다. 하지만 조감독이 다른 역을 제안했다. 제작부에서 격론이 벌어진 끝에 곽경택 감독이 “잘 할 자신이 있냐”고 해서 맡았던 것이 도루코였다. 이후에는 날카로운 인상과 짙은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주로 건달과 관련한 연기를 많이 했다. 그의 코믹연기가 재발견 된 것은 2010년작 <방가?방가!>부터였다.
“<친구>로 이름을 알렸고, <방가?방가!>로 희극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로 알려졌다. 두 작품 속 성격이 전혀 다르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떨 때는 이렇고, 어떨 때는 다르죠. 사람이 늘 좋지도 않은 거고요.”
김정태는 가족들이 있는 부산에서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산다. 그의 성격은 조금 더 신중하고 조용한 편이다. 오히려 섬세하고 감성적이라고 해도 괜찮다. 인터뷰 전 그의 소속사 더 퀸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음악과 시에 대해 물어보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라는 의외의 조언을 해줬다. 실제로 그랬다. 그는 마종기, 황동규, 오세영, 최영미 시인의 시를 즐겨 읽으며 틈나는 대로 스스로 시를 쓰는 배우였다. 양해를 구해 전화기에 한 자 한 자 옮겨놓은 그의 시는 완성도가 꽤 있었다. “따로 고치지 않고 일정을 오가는 와중에 끄적인다”고 했지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번뜩인다.
“음악 듣는 일도 좋아해요. 항상 집에는 음악이 켜져 있어요. ‘소울(SOUL)’ ‘어반 아르앤비(Urban R&B)’ ‘재즈’ 장르를 좋아해요. 음반이요? 요즘 스트리밍 사이트가 얼마나 잘 돼 있는데요. 최근에는 스피커에 관심이 많아져서 일정이 없을 때는 음향기기를 많이 알아보러 다녀요.”
그는 가족을 만나러 가지 않는 휴일에는 집에서 주로 책을 본다. 최근에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었다. 후배들에게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막상 시나리오를 접할 때도 자신에게 맞는 연기를 고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많은 사람도 많지만 저는 예술적인 감성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예술 외에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법륜스님이 그러셨다더군요. ‘누가 너를 미워한다고 슬퍼하지 말라. 너도 세상을 다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일희일비 하지말라’고요. 예술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만 대중의 시선도 피할 수 없죠. 대중에게 보일 때는 좋게 봐주시면 겸손하게 생각하고, 부족하다고 봐주시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새해에도 좋은 작품 출연하는 것, 하나만 목표로 삼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