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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데뷔 30년 김혜수의 연기 인생 ‘그것이 알고싶다’ ①

서늘한 한 줄기 눈빛, 툭 내뱉는 한 줄 대사…‘미친 연기력’으로 드라마 <시그널 >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김혜수. 그녀는 올해 꼭 데뷔 30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오랜 시간 김혜수에게 유독 내리막길이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청순한 소녀, 발랄한 아가씨, 우악스러운 아줌마, 육감적인 여인,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언니….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김혜수의 과거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김혜수의 1라운드-데뷔, 그리고 10년]
△1986년 영화 <깜보> 불량소녀 나영
중 2때 CF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김혜수는 17살에 <깜보>에 불량소녀 역으로 출연,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분량은 적었지만 <깜보>에서의 연기력을 인정, 같은 해 <수렁에서 건진 내딸2>의 주인공에 발탁된다.


영화 ‘깜보’ 속 불량소녀 나영을 연기한 김혜수. 당찬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1987년 KBS<사모곡> 보옥

김혜수는 데뷔 1년 만에 박선정, 최수지, 김소연 등과 함께 10대 유망주로 손꼽혔다. 당시 김혜수는 나이보다 성숙한 몸매로 ‘한국의 소피마르소’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신인 중에서도 가장 부각됐다. ‘태권도 2단’이라는 특기는 김혜수가 다른 여배우와 차별화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태권도 2단 보유자에 흰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미소까지...김혜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건강미인으로 손꼽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8 영화 <그 마지막 겨울> 영애, 1989년 영화 <잃어버린 너> 김윤희
<그 마지막 겨울>에서 이영하와 성인 연기를 훌륭히 소화, 이듬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잃어버린 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배우로서 인정을 받는다. 강석우 이경영 등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김혜수는 눈물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드라마 ‘순심이’에서 김주승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김혜수는 데뷔 초 주로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사진=KBS)

당시 김혜수의 소원은 “잠 한숨 푹 잤으면”이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김혜수는 당시 발랄함과 건강미가 매력으로 손꼽혔지만,나이에 비해 성숙한 이미지 탓에 일일연속극 <사모곡> <세모야>, 주말극 <순심이> <꽃피고 새울면> 등에서 성인역, 또 비련의 여주인공 역 만 도맡았다. MBC 미니시리즈 <장미빛 인생>에서는 ‘눈물주머니’라는 별명까지 얻게된다.

데뷔 초부터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혜수는 각종 여성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레이디경향 표지를 위해 앙드레 김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

△1991년 MBC <한지붕 세가족> 발랄 주부 혜숙
주말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서 신혼 주부 역을 맡은 김혜수는 그간 다수의 멜로 드라마에 출연한 덕에 씌워져 있던 애잔한 이미지를 씻고 싶어했다.

“현대 여성임에도 그동안 조신하고 순종적인 성격의 역할 만 해온 탓에 저에 대한 이미지가 실제제 모습과 상당한 거리가있었어요. 사실 전 활달하고 밝고 명랑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혜숙역에 큰 기대를 걸어요”(경향신문 1991년 3월 1일자 인터뷰 기사 중)

레이디경향 화보 중.

△1992년 영화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해직교사 홍선생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로 불린 이 영화에서 김혜수는 참교육을 부르짖다 해직된 후 교단 바깥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투사형 여교사 홍선생을 맡았다. 김혜수는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나리오가 무척 마음에 든다”며 “제 대표작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김혜수는 주가가 올라 4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그러나 영화의 크랭크인 소식 이후 상영됐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향신문 인터뷰 사진.

△1993년 영화 <첫사랑> 여대생 영신
찰랑찰랑한 긴 머리로 샴푸 CF까지 출연했던 김혜수는 데뷔 8년만에 긴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변신한다. “배역 분석 끝에 짧은 머리가 어울 릴 것 같아 결심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 영화는 여주인공에 고 최진실이
낙점 돼 있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흥행성공에 힘입어 오랫동안 이명세 감독의 신작을 기다려온 최진실은 배역 성격에 불만을 표시했고, 이명세 감독은 김혜수를 캐스팅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3년 MBC <파일럿> 항공운항사 이지원

국내 최초 파일럿 드라마에서 일과 사랑 모두 적극적인 전문직 여성을 연기한 김혜수는 최수종을 두고 채시라와 치열한 사랑 다툼을 벌였다. 결말을 앞두고 “이같은 삼각 관계가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채시라는 “속으로만 간직,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한다”고 답한 반면, 김혜수는 “민기처럼 이성문제에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성격은 질색”이라고 답했다.

드라마 ‘파일럿’ 출연 당시 김혜수(왼쪽)과 채시라. 이 드라마로 김혜수는 1993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김혜수는 경비행기 조종 장면을 대역 없이 연기해 화제를 모았으며, 실감나는 연기로 당시 항공관련 직업이 새로운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김혜수는 이 드라마로 그 해 MBC연기 대상을 수상한다.

경향신문 인터뷰 사진 중.

김혜수에게도 휴식기는 있었다. 당시 다수의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 중이던 김혜수는 배우 최민수, 개그맨 이경규·김정식등과 함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개그맨 김정식은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할 계획을 밝히기도. 90년대에도 인기 연예인에 편중되는 프로그램 제작 행태는 ‘냄비현상’에 비유되며 논란의 대상이었다.

김혜수는 연기활동과 함께 학업을 병행, 1993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94년 <도깨비가 간다> 방송국 AD 최인영
고현정이 SBS <모래시계> 여주인공으로 전국민의 ‘연인’이었을때도 김혜수의 연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도깨비>에서 도깨비의 혼이 씌여 우리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리는 박상원 대신 국제사기단의 실체를 벗기는 당차고 귀여운 방송국 계약직 AD역할을 연기했다.

김혜수는 인터뷰시 ‘개념발언’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했다. 젊은 나이에도 사회·문화 전반에 두루 관심이 있었으며 작품을 고르는 눈도 남달랐다.

“뚜렷한 주제, TV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실험성 등 작품의 분명한 색깔이 마음에 들어 주저없이 출연키로 했어요. 민족의 문화유산은 그들의 혼입니다. 요즘 한창 논의중인한·일 문화교류에 대해서도 적잖은시사점을 던져 주지 않을까요? 대등한 문화 교류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폭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빼앗기기만 했던 불행한 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경향신문 1994년 4월 인터뷰 중)

80년대 유행하던 디스코풍 스타일링을 소화해 낸 김혜수. 당시에는 손과 팔을 머리에 올리는 포즈가 유행이었다. 레이디경향 화보 컷 중.

△1995년 영화 <남자는 괴로워> 김혜수 <닥터봉> 황여진
이 해 두 편의 영화로 만 24살 김혜수는 9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 글래머 스타’로 등극한다. 남자들의 직장생활을 소재로한 코미디물 <남자는 괴로워>에서 볼륨 있는 몸매로 소심한 남자친구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는 신세대 커리어우먼을 연기했다. <닥터봉>에서는 음악에 맞춰 섹시한 춤을 추며 바지를 벗고 몸매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훔쳤다.

두꺼운 입술과 가는 눈썹, 풍만한 가슴...1995년 김혜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 심볼로 등극한다. 경향신문 인터뷰 사진 모음.

△1995년 MBC<사랑과 결혼> 서예희 MBC <짝> 차혜순
결혼을 테마로 전문직 여성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서 김희애·이영애와 함께 패션 디자이너 3인방을 연기한다. 당시 톱 탤런트였던 이들이 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큰 화제였다. 결혼식 장면에서 김혜수가 부케를 너무 멀리 던져 원래 받기로 한 김희애 대신 이영애가 부케를 받는 에피소드가 눈길을 끈다. 1998년까지 무려 4년간 출연한 아침드라마 <짝>에서는 엉뚱발랄한 성격의 스튜어디스를 연기,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스튜어디스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당대의 톱스타 김희애, 김혜수, 이영애. 세 여배우가 뭉쳤다는 것 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5살 전성기 김혜수는 원미경의 바통을 이어 받아 로제 화장품 모델로 전격 발탁된다. 모델료는 2억. 관능미를 뽐낸 이 광고에서 입은 수영복 가격은 당시 1000만원대로 당시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물에 젖으면 투명해져서 속이 훤히 비친다’ 는 시스루 수영복 이었다. 수영복 이름이 ‘해와 달’ 이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로제 화장품은 김혜수를 모델로 발탁한 이유로 ‘원초적 건강미와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탤런트’ 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5년 드라마 <연애의 기초> 이일영
연기 생활 10년차가된 김혜수는 ‘정상의 연기자’ 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혜수는 방송국의 이야기를 담은 감각적인 영상의 옴니버스 드라마 <연애의 기초>에 출연했는데, 정상이었지만 잘 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새 이미지에 도전했다.

레이디경향 인터뷰 컷

검정 의상에 짙은 립스틱을 입술 보다 두껍게 바른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한 신여성의 표상으로 자리잡으며 여성들의 워너비로 자리잡았다. 당시 김혜수의 건강관리법은 의외로 ‘많이 먹는 것’. 당시 라이벌이었던 이영애, 김희애, 채시라 등 마른 배우들과 달리 살집이 있어보였지만 결코 개의치 않았다.

“어떤 틀에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살고싶습니다. 사랑이든 결혼이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연기자로서 더욱 성숙해지고 싶고 그렇게 노력할 겁니다” (1995년 경향신문 인터뷰)

*취재후기: 경향신문 DB에는 김혜수의 흔적이 수천 장도 넘게 보관 돼 있었습니다. 배우 중에서도 누구보다 더욱 쉼없이 달려온 탓이겠지요. 모두 소개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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