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김문석의 무대人] ‘레미제라블’ 정성화 “제일 잘 나가는 할아버지 배우 되고 싶다”

정성화 배우(41)의 행보는 흥미롭다. 늘 변신한다.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주지 않는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2008)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돈키호테로 첫 주연을 꿰찬 후 <영웅>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을 쏜 안중근, <라카지>에서는 수다스러운 게이 아줌마로 변신을 거듭했다. <레미제라블>에서는 숭고한 인간애와 박애정신을 보여주는 장발장으로 돌아왔다.

정성화

초연에 이어 장발장 역할을 다시 맡았다. 2013년 막을 올린 초연에서는 원캐스트로 공연을 했다. 10개월 동안 장발장으로 살았다. 지방 공연까지 215회 공연을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원 없이 불렀다. 공연을 끝내고 다시는 장발장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나 지난해 <레미제라블> 오디션 공고를 보는 순간 초연에서 아쉬웠던 장면이 떠올랐다. 초연에서는 한국의 정성화가 장발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썼다. 섬세한 표현을 더 해 더 좋은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떨어지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하고 나면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송스루인 <레미제라블>은 멋진 작품이지만 소화하기 힘든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은 노래만 잘하면 감동이 없다. 노래에 자신의 연기를 담아야 한다. 송스루 뮤지컬은 보는 사람은 좋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힘든 공연이다. 어려운 넘버가 많다. 높은 음역대를 소화한 뒤 섬세한 노래가 이어진다. 철인 3종 경기를 한 후 외줄타기를 보여줘야 하는 느낌이다. 장발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 것 같다. 신의 역할 같다.”

정성화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웠다. 초연과는 다른 장발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바리톤인 그는 하이 테너 음역을 소화하기 위해 레슨을 받았다. 배우에서 은퇴할 때까지 레슨을 받을 계획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으로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습했다. 정확한 가사를 전달하고, 고음에서 흔들림이 없는 노래를 불러야 관객들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집중해 목표를 채웠다. 동정의 박수가 아닌 진심 어린 박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초연은 27년 만에 한국 공연이었다. 관객들의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많은 사람이 해외에서 <레미제라블>을 봤다. 그런 관객들의 기대치를 채워주고 싶었다. 때로는 기대감이 부담감으로 작용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해냈다. 초연 때는 강강강 구도로 갔다. 강하게 표현하며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재연에서는 조금 더 부드럽게 가려 했다. 너무 강하게만 가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금 노련해졌다.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꿨다. 가사 전달력도 높아졌다.”

‘레미제라블’ 정성화

장발장 캐릭터는 시장이 되기 전 과 후로 나뉜다. 후반부로 갈수록 장발장의 연기는 묵직해진다. 발걸음도 느려진다.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하기로 유명한 정성화는 관객들에게 장발장의 나이 듦을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장발장의 생활 패턴을 상상해가면서 연기했다. 극중 마리우스를 구한 뒤 장발장이 갑자기 늙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연기했다. 스스로 궁금증이 생기면 무대에 서지 않았다. 철저하게 연습한 후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배우로서 성장의 발판이 됐다.

“<레미제라블>을 한 배우는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초연에서 마리우스 역을 맡았던 조상웅 배우는 영국 런던에서 <미스 사이공>에 출연하고 있다. 앙상블 연기를 했던 배우들도 나름대로 잘하고 있더라. 이번 공연에서는 마리우스 역을 맡은 윤소호 배우가 눈에 띈다. 장발장 더블 캐스트로 공연하는 양준모 배우는 책임감이 대단하다. 몸이 안 좋을 때 주사까지 맞고 끝내 해내는 배우다. 일본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일본 배우들이 양준모에 대한 신뢰가 두텁더라. 양준모가 100회 정도 한 것 같다. 200회가 넘어가면 내가 부끄러울 것 같다. 더블이면 질투할 때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린 전우다.”

30대에 장발장을 시작해 40대에 다시 장발장을 맡았다. 한때 반짝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한 나이가 됐다. 부족한 부분은 레슨을 받으며 내 것으로 만들었다. <맨오브라만차> <라카지> <영웅> <레미제라블> 등 지금까지 해 온 작품을 은퇴할 때까지 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로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나이 들어서 제일 잘 나가는 할아버지 배우가 되고 싶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할아버지 배우는 드물다. 영국의 콤 윌킨슨 배우처럼 70살이 넘어도 배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콘서트도 해보고 싶다. 2013년 첫 콘서트를 한 후 매력에 빠졌다. 작은 콘서트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는 영화에도 자주 출연할 계획이다. <레미제라블>이 끝나면 <스플릿> 촬영에 들어간다. 볼링을 주제로 한 스포츠 영화다. 올해는 전환점이 되는 해다. 소속사도 옮겼다. 정신 똑대기 차리고 하겠다.(웃음)”

상단으로 이동 스포츠경향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