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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1인자, 박정환-커제 10번기 빅뱅…2승2패 호각세

“세계 최고의 복면기왕(覆面棋王)은 누구?”

한·중을 넘어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10번기가 바둑팬들의 관심을 후끈 달궈 놓고 있다. 인터넷 바둑사이트 타이젬에서 벌어지는 ‘한·중 슈퍼매치 10번기’다.

프로바둑에서 10번기는 아무 때나 누구하고 벌이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다. 패자의 경우 평생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게 된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10번기 패배’라는 표현은 프로에게 치명적 상처일 수 있다. 따라서 현존 최강자의 경우 10번기에 쉽게 나설 수 없다. 승리의 기쁨이 크고 달콤하겠지만, 그만큼 패배의 고통도 크고 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박정환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붙었다. 그야말로 한·중 1인자의 자존심을 건 승부다. 인터넷 특성상 이번 승부는 실명이 아닌 ‘수지(P)’와 ‘Lurk(P)’라는 ID 대결로 치러진다. ‘수지’와 ‘Lurk’는 두 기사의 온라인 대국 ID이고, (P)는 타이젬에서 프로기사를 식별하는 표시다.

하지만 이미 바둑팬들은 ID라는 복면 뒤에 가려진 실제 얼굴이 누구인지 아는 눈치다. 대국이 벌어지는 날이면 사이트에서는 실명을 향한 응원 댓글이 쏟아진다. ‘수지’는 한국랭킹 1위 박정환 9단이고, ‘Lurk’는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이다.

커제

타이젬 측도 “수지(P)는 무려 27개월 동안 한국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 최강의 기사이며, Lurk(P)는 지난해 1월부터 1년 동안 메이저 세계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세계일인자로 발돋움한 대륙의 떠오르는 태양이다”라는 말로, 박정환 9단과 커제 9단이 맞음을 인정했다. 지난 2014년 세계 바둑계를 흥분케 한 이세돌 9단 대 구리 9단의 승부가 끝난 뒤 슬그머니 흘러나온 ‘한·중 1인자 간의 10번기’가 소리소문없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을 대표한 절대강자였다. 반면 박정환 9단과 커제 9단은 향후 10년 동안 한·중 바둑을 이끌어 갈 최강자다. 특히 두 사람은 현재 한창 진행 중인 한·중 힘겨루기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이번 10번기는 2016년 세계바둑 판세를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4국까지 마친 승부 결과는 2승2패 호각세다. 지난 2일과 5일 벌어진 1·2국에서 박정환 9단이 2연승을 올리며 초반 기세를 탔지만 이내 커제 9단의 반격을 받았다. 지난 16일과 19일의 3·4국은 커제 9단이 승리를 가져간 것.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이세돌 9단 대 구리 9단의 10번기와 같은 양상으로, 당시 이9단은 5국 이후 4연승을 내달렸다. 그러나 이세돌 9단 대 구리 9단의 10번기는 애초부터 이9단 쪽의 우세가 점쳐진 반면 이번 10번기는 커제 9단의 우세가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승부가 어떻게 출렁거릴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용호상박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공방전은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까지 중국에서 벌어지는 농심신라면배 관계로 잠시 휴식기간을 갖는다. 흐름을 내준 박정환 9단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다.

중반 승부의 분수령이 될 제5국은 다음달 11일 오후 9시부터 타이젬(tygem.com) 대국실에서 펼쳐진다. 이를 한국바둑방송(K바둑)에서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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