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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알파고 효과로 열풍 분 바둑, ‘제2의 우생순’ 안되려면…

‘두 뼘 안의 우주’ 바둑이 이렇게까지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이 벌어지기 전후 약 10일 동안 세계의 눈과 귀는 온통 바둑에 쏠렸다. 한국기원에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 유수의 언론이 빼곡히 들어선 것은 한국바둑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을 발아래 둔 조치훈의 금의환향과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 이창호의 세계대회 제패에 따른 3차례의 바둑 부흥기를 간단히 뛰어넘는 폭발적인 관심과 열기였다.

드라마 <미생>과 바둑영화 <스톤> <신의 한 수> 등의 흥행으로 일어난 바둑바람이 최근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의 인기에 힘입어 훈풍으로 바뀌었다면, 인간과 컴퓨터 간의 대결은 전 세계에 바둑열풍을 몰고 왔다.

이세돌 9단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와의 챌린지 매치 다섯번째 대국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 때문에 국내 바둑계는 단꿈에 젖어 있다. 실제로 바둑 관련 서적과 바둑용품의 판매가 급증하고, 어린이들은 물론 그동안 바둑과 담을 쌓아온 20대 젊은 여성들까지 바둑을 배워 보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게다가 구글 덕에 바둑세계화의 기틀도 마련됐다.

이 정도면 한국바둑의 앞날은 ‘순풍을 받은 돛단배’다.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바둑문화가 확산될 것이고, 그러면 기업들이 후원하는 대회가 늘어나고, 세계최강국 한국의 프로기사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일도 부쩍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야말로 바둑이 한국의 대표적 문화 콘테츠가 되고, 태권도나 K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한류가 될 날이 눈앞으로 닥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바둑 종목에서 이만큼 감동을 주고, 관심을 모은 일이 적었을 뿐이지,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이보다 큰 쾌거가 많았다. 시시때때로 벅찬 감동과 함께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우생순 핸드볼’도 그중 하나다. 그들이 보여준 투혼이 이세돌의 그것보다 작고, 그들이 이뤄낸 성적이 이세돌이 올린 1승의 가치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핸드볼은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 스포츠가 아니다.

이는 핸드볼계의 잘못이 아니다. 관심이나 인기의 속성이 원래 그럴 뿐이다. 불같이 타오르다 눈같이 녹아버린다.

바둑도 예외일 수 없다.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빅스타의 맥이 끊어지고, 세계대회에서 일본과 중국에 뒤처지는 성적을 내고, 바둑동네에서 크고 작은 불협의 소리가 나온다면, 오랜만에 맞은 지금의 봄날은 그냥 속절없이 간다.

결국 어린 꿈나무 육성, 박진감 넘치면서도 깨끗한 승부, 프로와 바둑팬들의 유쾌한 어우러짐 등이 계속 이어져야 한국바둑의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다. 한국바둑이 ‘인공지능에 진 사양종목’으로 전락하느냐, ‘젊은이들과 해외에서도 먹히는 블루오션’이 되느냐는 지금부터 바둑인들이 기울이는 노력 여하에 달린 셈이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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