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게임 죽이면서 인공지능 만든다고?

# 1.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대국이 세계인의 관심 속에 막을 내린 가운데 최근 정부가 AI 등 지능정보기술산업 분야에 올해부터 5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나서서 미래의 먹거리를 찾겠다는데 사족을 달 이유야 없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반응은 개운치만은 않은 듯하다. 국민적 관심에 편승해 또 하나의 전시성 정책을 던져놓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무엇보다 ‘2019년까지 지식 축적 분야의 기술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다’는 당찬(?) 목표를 듣다 보면, 중화학공업 시대의 잣대로 ICT(정보통신) 산업을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들 한다.

‘아이폰 혁명’ 이후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국가적인 화두였다. 민·관이 따로 없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육성하겠다”며 시작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사업’도 그중 하나다. ‘한국형 스티브 잡스’를 배출하겠다며 연간 수십억원을 들여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쌓기용으로 전락했다”(전병헌 의원 2015년 국감자료)는 비판을 받았다.

때마다 ‘한국의 주커버그’ ‘한국의 빌 게이츠’ 등 구호는 요란하지만 결실은 없다.

ICT산업, 그중에서도 AI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분야다. 상상력과 열정 가득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토양에서나 가능한 분야다.

# 2.

‘아이폰의 아버지’ 잡스와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의 공통점은? 게임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는 “게임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며, 인공지능의 창의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잡스의 첫 직장은 오락실용 게임을 만들던 ‘아타리’다. 1974년 대학교를 중퇴한 잡스는 ‘놀면서 일한다’는 광고에 이끌려 아타리에 들어가 게임 기획자로 일했다. 잡스의 친구인 워즈니악 역시 게임광이었다. 두 사람은 게임을 즐기며 뒷날 세상을 바꾼 ‘애플 신화’의 프롤로그를 써내려 갔다.

허사비스의 이력 역시 게임과 뗄 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게임 개발자가 된 그는 <신디케이트> <테마파크> 등의 게임을 만들었다. 이후 캠브리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 과정을 마치고 업계에 복귀한 그는 세계적 게임개발자 피터 몰리뉴와 함께 게임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명작 <블랙&화이트>를 개발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였다.

게임회사에서 일하면서 허사비스는 게임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며 ‘인공지능의 창의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이나 <스타크래프트>를 다음 도전상대로 지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3.

지난달 25일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게임을 마약·알코올처럼 질병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지며 여론이 들끓었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게임중독이 당장 질병코드에 등록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은 분명하다.

물론 게임에 대한 규제 시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게임업계의 우려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지난해 복지부가 공개한 공익광고에는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하고, 초췌한 상태로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게임이 질병으로 관리된다면, 인재의 유입이 줄어 산업의 근간이 허물어 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허사비스’는 요원하다.

남궁훈 카카오 부사장은 최근 “게임산업의 발전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 등 수많은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게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사비스는 왜 수많은 작업 중에서 게임을 인공지능이 도전해야 할 분야로 본 것일까. 그 자신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인공지능에 눈을 떴고, 게임이야말로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허사비스는 게임 업계에 공헌한 것을 인정받아 2009년 영국 왕립예술협회 특별회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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