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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김정준,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시겠습니까

2006년 12월이었다. 기자는 기사 하나를 너무 서둘러 쓴 탓에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기사 제목은 ‘최향남 7억5천 “OK! SK!”’. 클리블랜드 트리플A에서 주가를 높이다가 국내로 유턴하는 최향남의 행선지가 스토브리그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기자는 ‘특종’ 욕심을 냈다. 최향남으로부터 전해들은 ‘구두 합의’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이튿날 아침 SK에서 난리가 났다. 공식 발표 전에 해당선수가 먼저 협상 내용을 흘린 격이 됐기 때문이다. SK 고위 관계자는 최향남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확인하며 ‘계약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SBS 해설위원 시절의 김정준 한화 전력분석팀 코치. 경향신문 DB

앞이 캄캄했다. ‘특종’과 ‘오보’ 사이의 줄다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자의 기사 하나로 한 선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 뒤로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은 최향남이 극적으로 비상구를 찾았을 때였다. 최향남은 결국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최향남을 축하하기보다는 기자가 축하받을 일이었다. 그제서야 무거웠던 가슴이 조금 누그러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기자는 기사 하나로 최향남의 인생 항로에 개입한 셈이 됐다. 또 그 결과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10년 전 일이 다시 떠오른 것은 특정인의 야구인생이 외부 자극에 휘둘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달 28일 한화 외국인 에이스인 에스밀 로저스가 뜨거운 관심 속에 2군 경기에 첫 등판했다. 그리고 현장을 찾은 기자들로부터 투구 내용과 인터뷰가 나왔다. 그 사이 ‘인터넷 세상’의 반응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김정준 한화 전력분석팀 코치였다.

지난달 로저스가 공을 던지지 않은 이유가 김 코치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 얘기는 로저스가 자신의 투구 폼을 두고 담당코치가 아닌 김 코치가 지도하려는 점에 반응해 스스로 훈련을 제어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 코치는 적극 항의하는 뜻에서 SNS에 글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것을 또 ‘사실 인정’으로 받아들이는 외부 시각이 따라붙었다.

의혹에 대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김 코치는 로저스의 훈련 과정과는 전혀 무관하다. 김 코치는 기자와 만나 “로저스와는 야구 얘기를 한 적조차 없다”고 거듭 말했다. 그 내용은 로저스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기자 또한 프로야구를 꽤 오래 취재했고, 한화의 속사정 또한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 역시 1군뿐 아니라 로저스 주변 관계자를 통해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야구 관계자 사이에서는 이런 반응도 있다. “그게 혹시 맞는 얘기라고 하더라도, 외국인 투수가 특정 코치가 자신의 투구폼을 만지고, 그 사람이 또 감독 아들이라고 해서 상처를 받고 의욕이 떨어지는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문제가 이토록 확대될 내용은 아니었다.

앞서 최향남과의 일화를 언급했듯,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김정준이라는 이름 뒤에 엉뚱한 딱지가 붙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 코치가 ‘전력분석 전문가’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LG 시절부터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SK에서 전력분석 전문가로 꽃을 피웠다. 그가 SBS스포츠 해설위원을 거쳐 한화로 이동한 것은 ‘세밀함’에 목말랐던 구단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야구 전력분석’이라고 하면 김정준이란 이름이 우선 거론된 것이 특정인의 후원 때문은 아니었다. 김 코치 영입을 원했던 팀이 한화만은 아니었다. 세밀한 야구를 하는 한 팀의 젊은 감독은 2년 전 쯤 김 코치 영입을 간절히 원했다.

전력분석팀 코치가 하는 주된 업무는 선수들의 야구 이해도를 높이는 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난해부터 더그아웃에 아이패드 반입이 허용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불가 사항이다. 전력분석팀은 일종의 그런 역할을 하는 자리다. ‘분석’에 관한 내용이라면 전 분야에 걸칠 수 있다. 이른바 외국인투수라도, 데이터를 비롯한 관련 내용이라면 능히 소통할 수 있다.

마치 김 코치가 한화에서 혈연 관계를 등에 업고 한 자리라도 차지한듯 비춰지는 것은 그에게는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또 올해 불거진 논란으로 5년 뒤, 10년 뒤에도 그런 이미지가 그의 이름에 붙어있다면 이는 너무 가혹하고 불공정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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