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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역대 최고의 키스톤 콤비를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KT와의 3연전을 통해 살펴 본 두산 키스톤 콤비의 힘
·프로야구 역대 최강의 키스톤 콤비 중 하나로 평가
지난 7일 수원 KT-두산전. 두산이 4-0으로 앞선 4회말 무사 1루, KT 김선민의 타구가 큰 바운드를 그리며 2루 베이스 왼쪽을 향했다. 두산 유격수 김재호가 앞으로 달려들었고, 오랜 체공시간을 거쳐 튀어오른 공의 2번째 바운드를 글러브를 크게 벌려 끊어냈다. 강한 대시로 잡아냈지만 그 공을 2루수 오재원에게 토스하는 데는 채 2걸음이 걸리지 않았다. 오재원이 이를 잡아 1루에 던져 더블플레이가 완성됐다. 중계진이 곧장 5번이나 리플레이를 할 정도로 화려한 수비였지만, 김재호-오재원 키스톤 콤비는 무심한 표정으로 제 수비위치를 향했다.

두산은 13일 현재 42승1무17패로 1위다. 2위 NC가 파죽의 10연승으로 따라붙었지만 승차는 여전히 4경기다. 팀 전력의 핵심인 포수 양의지가 빠졌는데도 최근 10경기 7승3패로 승률 7할을 이어갔다.

두산의 숨은 힘은 유격수 김재호-2루수 오재원으로 이어지는 키스톤 콤비의 강력한 수비다. 김재호가 지난달 5일 잠실 LG전에서 2루 도루를 시도하는 이병규를 아웃 시키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두산의 버티기에는 탄탄한 수비의 역할이 크다. 두산 수비의 중심은 김재호-오재원으로 이어지는 키스톤 콤비다.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역대 최강으로 꼽히는 류중일-강기웅, 박진만-박종호 등과 비견될 만 하다”라며 “차분한 김재호와 적극적인 오재원 사이의 궁합이 좋다”고 말했다. 수도권 팀의 한 전력분석팀장은 “따로 따로 떼어 놓으면 오재원에게 최고 2루수 호칭을 주기는 어렵지만, 둘이 모아놨을 때의 시너지 효과는 매우 뛰어나다”라고 평가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프로야구 역대 최강 키스톤 콤비 중 하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수비 기술은 완성됐다. 2루수 출신의 조성환 KBS N 해설위원은 “김재호, 오재원 모두 송구가 안정돼 있다. 일단 잡으면 아웃이다. 오재원도 가볍고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NC 이동욱 수비코치는 “둘 모두 포구 뒤 공을 빼는 동작이 무척 빠르다. 오래 호흡을 맞춘 덕분에 더블플레이 때 리듬감도 매우 좋다”고 평가했다.

두산의 키스톤이 더욱 위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수비의 기술 뿐만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수비에 일가견이 있는 한화 김광수 수석코치는 “포구, 스텝, 송구 등 기본 3박자를 갖추면 최고다. 그런데 둘은 거기에 경기 흐름을 읽는 눈까지 있다”며 “둘이 함께 상대 움직임까지 늘 살핀다. 상대의 스피드와 박자를 보고 어떻게 공을 던져야하는지 읽고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박종호 LG 수비코치 흐름을 읽는 능력을 높이 샀다. 박 코치는 “1점을 줘도 되는 때와 안되는 때를 판단한다. 매 순간 흘러가는 경기 흐름과 상황을 끌고가는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17일 2루에 도착한 구자욱을 쳐다보고 있는 두산 김재호(왼쪽)와 오재원.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앞서 나온 7일 4회말 병살 플레이가 김재호-오재원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 중 하나였다.

경기 중반 4점차라면 굳이 대시를 하지 않고 뒤에서 잡아 아웃카운트 1개를 늘릴 수 있었다. 이 장면에 대해 김재호는 “그날 경기 흐름 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팀의 경기 흐름도 고려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마무리 이현승이 허벅지를 조금 다친 상태였다. 등판이 어렵다. 셋업맨 정재훈 역시 6월 평균자책이 7.71로 흔들리는 중이다. 김재호는 “선발 장원준도 최근 등판에서 볼넷이 많아지면서 투구수가 계속 늘고 있었다”고 했다. 장원준은 직전 등판이었던 지난달 31일 NC전에서 6.2이닝 동안 124개를 던졌다. 4회말 무사 1루, 김선민의 타구 역시 이날의 76개째 투구를 맞은 터였다.

6연전의 첫 경기인 화요일 경기, 불펜에 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선발 투수의 투구수가 더 늘면 이날 한 경기가 아니라 1주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김재호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고,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장원준은 이날 6.2이닝을 1실점으로 막았고, 두산은 불펜 필승조 소모 없이 올 시즌 화요일 경기 전승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기 흐름에 따른 과감한 승부는 단지 의지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이날 1회말 KT 2번 이대형의 타구는 큰 바운드를 이루며 3루수 허경민의 키를 넘었다. 김재호가 뒤를 커버했지만 잡아내지 못했다. 김재호는 “그 때 수원구장 내야 바운드가 예상보다 크게 튄다는 걸 계산했다”고 했다. 4회 ‘승부’ 때 김재호는 숏바운드 처리 치고는 글러브의 높이를 높게 가져갔다. 1회 실수를 통한 미세조정이었다.

역대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인 SK 박진만 코치는 “유격수의 단계로 치자면, 패기 다음이 자신감, 그 다음 단계가 여유다. 지금 김재호는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코치는 “유격수는 팀 전체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한데, 김재호는 지금 그걸 얻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8일 1회말 1사 1·3루 위기, 박경수의 타구가 큰 바운드를 이루며 선발 유희관의 키를 넘겼다. 김재호는 자신의 스텝을 조정하며 바운드를 맞췄고, 직접 2루 베이스를 터치한 뒤 1루로 송구, 더블플레이를 완성시켜 이닝을 끝냈다. 유희관은 박수를 친 뒤 기다렸다가 김재호를 맞았다. 유희관은 두산의 키스톤 콤비에 대해 “마치 영화 <캡틴 아메리카>의 무기 방패 같다”고 말했다. 어떤 공격도 막아주는 특수 방패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팀 내 비중이 상당하다. 타석에서 때리는 안타보다 수비에서 막아주는 안타가 더 중요하다. 상대 흐름을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두산의 키스톤 콤비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은 과감한 시프트다. 4월28일 잠실 SK전 1회 2사 2루 정의윤 타석 때 2루수 오재원의 강력한 수비 시프트(위)와 6월8일 5회 1사 2루 전민수 타석 때 유격수 김재호의 강력한 시프트(아래) | 이용균기자

두산의 키스톤 콤비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타구 처리의 결과보다 더 강한 ‘예방 수비’, 즉 시프트다. 김재호와 오재원 모두 과감한 내야 시프트로 상대를 압박한다.

지난 4월28일 잠실 SK전, 1회초 2사 2루 정의윤 타석 때 2루수 오재원은 아예 2루 베이스 뒤에 서 있었고, 1루수는 베이스에서 한참 떨어져 2루수 자리 가까이에 위치했다. 8일 경기에서는 2-5로 뒤진 1사 2루 전민수 타석 때는 유격수 김재호가 3유간을 텅 비워둔 채 2루 베이스 근처에서 수비했다. 둘 모두 선발 유희관의 구종과 구속을 고려한 수비 위치였다.

조성환 해설위원은 “유희관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시프트다. 바깥 쪽 패스트볼 보다는 체인지업 승부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당겨치는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민수는 그 타석에서 투수 땅볼로 물러났다.

한 단계 더 앞선 수비는 ‘미리 움직이는 수비’다. 박경수는 7일 경기 0-0이던 3회 2사 2루, 3유간을 빠져나가는 타구를 날렸지만 투수가 공을 던지자마자 미리 움직인 김재호에게 잡혔다. 박경수는 “장원준이 공을 던지는데 김재호가 샤샤샥 3루쪽으로 움직이는 게 보이더라”라며 “슬라이더 사인을 알고 움직인 것 같다. 경기 끝나고 ‘미리 움직이는 건 반칙 아니냐’고 농담했다”고 말했다.

삼성 유격수 김상수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것보다도 어려운 플레이를 쉽게 해내는 것을 두고 잘한다고 얘기하는데, 재호형이랑 재원이형이 그 말에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감한 움직임은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난달 22일 사직 롯데전 0-1로 뒤진 4회 1사 2·3루에서 정훈 타석 풀카운트 때 전진 수비를 하던 김재호는 니퍼트가 공을 던지자마자 2루쪽으로 미리 움직였다. 하지만 공은 김재호가 서 있던 자리로 굴렀고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았다. 조성환 위원은 “가끔 그런 경우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막아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KT와의 3연전 중 마지막 경기였던 9일, 7-4로 역전시킨 9회말 무사 1·2루 위기가 찾아왔다. 김종민 타석 때 김재호는 정재훈이 공을 던지자마자 3루쪽으로 미리 움직였다가 역동작에 걸렸다. 타구는 빗맞았고 큰 바운드로 투수 키를 넘겼다. 김재호는 재빨리 몸을 틀었고 이를 따라잡아 2루에서 주자 신현철과 몸을 부딪히면서도 베이스를 찍은 뒤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자칫 공이 빠졌더라면 재역전패를 걱정했을 상황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김재호는 “이날은 경기 내내 3유간으로 빠지는 타구가 많은 흐름이었다. 그 계산을 했는데 역동작에 걸렸다. 다행히 타구가 빗맞는 바람에 느려서 리커버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주자와 부딪힌 발목에 얼음을 댄 채, 김재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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