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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고개들어요, 그대

한국 여자유도 대표팀 57㎏급 김잔디(양주시청)는 4년을 준비한 2016 리우 올림픽을 불과 4분만에 끝냈다. 1회전 부전승 뒤 맞은 16강전. 김잔디는 하파엘라 시우바(브라질)에게 절반을 빼앗기고 결국 만회하지 못했다.

남자유도 대표팀 73㎏급 안창림(수원시청)은 ‘천적’ 오노 쇼헤이(일본)를 꺾기 위해 벼르고 또 별렀다. 상대 전적 4전4패. 안창림은 오노에 복수하고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맞대결하진 못했다. 16강전에서 생각지 못한 상대 디르크 판 티첼트(벨기에)에게 일격을 당했다.

세계 1위 안창림이 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아레나2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16강서 벨기에의 디아크 반 티셸에게 패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OSEN

이들은 9일 리우 올림픽 유도 체급별 경기에서 차례로 패배한 뒤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삼키듯 남기고 자리를 떴지만, 몇 걸음 더 가지 못하고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올림픽이 축제라는 말은 한국 대표선수들에게는 그저 사치스런 수식어에 불과하다. 오히려 냉엄한 심판장에 가깝다. 영웅이 될지, ‘죄인’이 될지 선고받는 자리다.

김잔디가 8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유도 57kg급 16강전에서 브라질의 실바에게 패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OSEN

김잔디와 안창림은 스스로를 ‘죄인’이라며 입을 닫았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여자 펜싱 사브르에서 금메달을 딴 김지연(익산시청)도 리우에서는 2경기만인 16강전에서 탈락한 뒤 몹시 괴로워했다. 그 또한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리우에서 남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김우진(청주시청)도 개인전 32강에서 예상치 못했던 패배를 당한 뒤 어쩔줄 몰라했다. “나 자신에게 많이 아쉽다. 많이 준비했는데 이제 모두 날아가 버렸다”고 말했다.

우리 대표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너무나 무겁다.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자부심뿐 아니라 온갖 책임감과 부담까지 함께 끌어안는다.

지난 7일 남자 유도 60㎏급에서 탈락한 김원진(양주시청)은 흐느끼면서도 미안함을 전할 사람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를 위해 희생해준 훈련 파트너부터 한마음으로 응원해 준 국민까지 하나씩 거론하느라 자신의 아픔은 맨 뒤로 미뤘다. 가장 먼저 위로받아야 할 주인공이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었다.

김잔디는 이번 올림픽 목표부터 그랬다. “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여자 유도에 금메달이 없다. 금메달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잔디는 유도 대표팀의 역사를 짊어지고 매트에 섰다. 자신에게 충격의 패배를 안긴 상대는 거침없이 올라가 개최국 브라질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결과적으로 대진운도 나빴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불운을 얘기할 여유는 없었다.

남자 탁구의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은 대이변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세계 1위 마룽(중국)과 단식 16강전에서 만나 먼저 2세트를 잡으며 기세를 올렸으나 연속 4세트를 내주며 역전패했다. 6세트에서는 9-4까지 앞서며 마지막 7세트까지 끌고 갈 흐름을 잡았으나, 끝내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웠지만, 정영식도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눈물을 흘렸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다”고 자책했다.

정영식이 이변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은 상대의 노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작아진 탓이었다. 자신만의 올림픽으로 여겼으면 어땠을까. 조금 더 가볍게 뛸 수 있지 않았을까.

올림픽 경기 결과와 미안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의 도움도 아닌, 온전히 그대의 노력으로 온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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