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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의 PM 6:29]꽤 오래된, 그래서 특별한 ‘두산의 밤 문화’

1997년 12월. LG 송구홍은 해태로 트레이드된 뒤 일종의 문화 차이를 느꼈다. 훈련 뒤 공을 주으러 나가는 길에 후배들의 만류로 뒷걸음질 쳐야했다. 해태는 선후배 문화가 확실한 팀이었다. 창단 이후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문화였다. 선수들의 생각과 행동에 자연스럽게 그런 내용이 내재돼 있었다. 8년차 중견선수였던 송구홍은 이적 뒤 새로운 시간을 보냈다.

KBO리그 외인투수 벤헤켄은 지난해 말 일본프로야구 세이부로 이적했지만, 기대와 동떨어진 성적을 남기고 친정 넥센으로 유턴했다. 넥센으로 돌아온 그는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그가 180도 달라진 데는 선수들의 심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넥센만의 팀 문화가 작용했다는 진단이 따른다. 두드러진 기술 변화가 없던 것을 감안하면 꽤 설득력 있다. 이 또한 한두 시즌만에 급조된 팀 문화는 아니다.

올해 프로야구 레이스는 두산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독주로 시작해 여전히 선두로 순위표에 맨 윗자리에 있다.

박건우. 두산 베어스 제공

위기가 찾아온 게 아닌가 하며 긴장하는 사이 위기를 넘긴다. 불안해 보이던 선수도 어느새 제자리를 잡는다. 토종 야수진의 경쟁력은 단연 최고다.

경기 전 훈련 내용을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 다른 팀 만큼 치고, 뛴다. 그러나 모든 게 같지는 않다.

두산 야수들은 잠실 홈경기를 하는 날이면, 대체로 퇴근 시간이 늦다. 적잖은 야수들이 남아 개인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잠실구장 1루 더그아웃 방향 안쪽에 마련된 실내훈련장은, 홈 경기를 하는 날이면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박철우 타격코치는 일종의 오랜 팀 문화로 바라봤다. 1군 타격코치를 맡은 지난해 이전부터 선수단 사이에 자리잡은 문화이기도 했다. 오재원과 민병헌, 정수빈 등 주전선수는 물론 박세혁, 류지혁 같은 한창 커 올라오는 선수들도 나머지 훈련을 예사로 하고 간다.

박 코치는 “선수들이 알아서 많이 친다. 복습을 하고 가는 것인데, 본인들이 경기에서 무엇이 안되는지 느낀 뒤 다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효과적”이라며 “선수들 사이에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위기감 같은 게 자리잡은 것 같다”고 했다.

이 때문에 두산 야수들 사이에서 ‘나머지 훈련’을 하는 것으로는 유별난 시선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그 내용을 물으려 하면 민망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귀공자풍으로 잘 생겨 훈련에는 소홀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 박건우는 올해 시범경기가 열리는 동안 고3 수험생이라도 된듯 아침 6시30분에 잠실구장에 나와 실내훈련장에서 홀로 방망이를 쳤다. 박 코치까지 덩달아 일찍 나오는 일이 늘어나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새벽 출근은 이례적이지만, 박건우는 그 얘기를 내세우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훈련하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팀이 잘 되는 이유로, 보통은 구단의 지원을 시작으로 사령탑 리더십 등 여러가지가 거론된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고, 시험 잘 볼 수 없듯, 훈련 없이 야구를 잘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두산은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개인훈련에 익숙해지는 ‘묵직한 팀문화’를 갖고 있다. 돈으로는 측정이 어려운 팀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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