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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정’ 송강호는 의뭉스럽다…왜?

배우 송강호는 의뭉스럽다.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영화 속 인물 이정출인지, 현실의 송강호인지 구분이 어렵다.

송강호는 보여줄 듯 보여주지 않는 인물의 내면과 갈팡질팡하는 인물의 행동이 극대화된 이정출을 연기했다. 이정출은 분명하지 않다. 아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죽음으로 내몬 영조의 단호함은 없다. 김종서의 명에 의해 궁에 들어와 수양대군을 보자마자 불길한 ‘촉’을 느낀 관상쟁이 내경같은 날카로움도 없다. 단호함과 날카로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의뭉스러움이다. 송강호는 이정출의 의뭉스러움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강렬한 원색보다는 흐릿한 회색 같은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를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강호, 사진 워너브러더스 제공

20년 동안 최정상 배우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송강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선택하기보다는 선택당하는 배우로서 주어진 역할을 분석하고 내재화해 영화 속 인물 그 자체가 됐다. <넘버3>의 불사파 두목 조필이 외친 “배 배 배신이야”의 강렬한 한마디는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살인의 추억>의 시골형사, <괴물>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노랑머리 아빠’, <변호인>에서 불의에 울분을 참지 못하는 송우석, <사도>에서는 전형적인 영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영조를 구현했다. ‘연기의 신’, ‘연기파 배우’, ‘믿고 보는 배우’ 등 수식어 뒤에는 송강호의 노력이 숨어있다.

“배우에게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새로움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 소재가 아니라 시선이다. 같은 얘기라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가 중요하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나한테 <밀정>이 가진 시선을 따로 있다. 다른 작품과 비교해 깊이감이 달랐다. <밀정>의 새로움은 회색빛이다. 항상 불타는 붉은색, 암울한 검은색과 달리 <밀정>의 회색은 회화적이다. 혼돈의 시대를 산 혼란스러운 인물이 많았을 것이다.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정체성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밀정>은 그런 인물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

송강호는 유독 역사를 다룬 영화에 출연을 많이 했다. 실존 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거나, 격랑을 헤쳐가는 인물을 연기했다. <사도>의 영조, <변호인>의 노무현 대통령, 현재 촬영 중인 <택시운전사>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러가는 독일 기자를 태운 택시 운전사 만섭, <밀정>의 이정출 등을 연기했다.

“의도적으로 그런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우연히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 SF영화보다는 시대극이 나한테 더 잘 맞다. 모르는 세계보다는 지나온 세계에 관심이 더 많다. 역사를 반추하면서 새로운 지혜를 찾을 수 있다. <변호인>에 출연한 이후 일부 편협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택시운전사>가 나오면 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저함은 없다. 작품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것에 대한 주저함은 있지만, 정치적 잣대에 대한 주저함은 없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 스태프와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상해 임시정부, 만주 항일 투쟁 등 역사적 현장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송강호도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다녀왔다.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는데 벽에 독립투사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누구나 다 아는 영웅이 아니라 이름모를 전사들이었다. 그 중에 한 장은 일본 경찰들에게 포박당한 채 끌려가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사진으로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촬영할 때는 서대문 형무소 장면에서 울컥했다. 서대문 형무소는 처음 가 봤다. 촬영하는 날 영하 10도 였다. 정말 추웠다. 짚신 신고 연기하는 데 발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그 순간 혹독한 환경에서 고통을 받은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니까 감정이 북받쳐 올라 연기가 절로 나오더라.”

송강호, 사진 워너브러더스 제공

<밀정>은 사건을 따라가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좇아가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는 건조했다. 깨알 같은 디테일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놓았다. 송강호는 현장에서 김지운 감독과 함께 이정출을 만들어갔다.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어 4번째 다시 만났다. 김 감독은 전체적인 상황을 만들고 송강호는 그 안에서 몰입했다.

“이정출의 급격한 심리 변화에 대해 김지운 감독님과 상의했다. 인물의 개연성이 떨어지면 관객이 당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김지운 감독님의 구상은 하나의 사건에 따른 심리 변화는 이 영화의 콘셉트와 다르다라고 말하더라. 그 시대를 산 인물들과 상황을 더 크게 본 것 같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알기 쉽게 보여주기보다는 관객이 불편하더라도 정채산의 강력한 말 한마디와 이정출의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송강호는 “모든 작품이 다 특별하지만, <밀정>은 남다르다. 내 필모그래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다”며 “좌절의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의 회색빛 눈빛을 탐구하며 찍었다. 이정출의 애매모호한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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