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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고했어” 세계1위 내려놓는 용대-연성의 새 출발

2016 코리아오픈에서 마지막 복식 호흡을 맞춘 유연성(왼쪽)-이용대(오른쪽)가 지난 2일 마지막 우승 직후 그동안 지도받은 대표팀 강경진(왼쪽 두번째), 최민호 코치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되는데….”

첫번째 게임을 내준 뒤 두번째 게임에서도 3-8까지 뒤졌을 때 둘은 같은 생각을 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8강에서 무너졌던 리우올림픽보다 어쩌면 더 큰 부담을 느껴야 했던 고별 무대에서 둘은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이라는 각오 속에 더 냉정함을 찾고 대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 10월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 최강 듀오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 유연성(30·수원시청)과 이용대(28·삼성전기)가 지난 2일 끝난 2016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우승과 함께 이별했다. 태극마크를 반납하기로 한 이용대의 ‘국가대표 은퇴’로 이제 둘의 환상 호흡은 더 볼 수 없게 됐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헤어지는 세계 최강 듀오의 작별인사를 우승 직후 만나 들어보았다.

■이용대 “잠시만 쉬겠습니다”

이용대는 “14년 동안 대표팀에서 뛰었다”며 “내가 많이 지쳐 있다. 지금은 일단 쉬고 싶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03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용대는 고교 3학년이던 2006년 1월에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내 최고’에서 ‘세계 최고’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준비로 20대를 모두 보내야 했다. 스물한살이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혼합복식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지 8년이 됐지만 대표팀에서 단 4주를 비울 수 없어 아직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못했을 정도다.

이용대는 “스무살 이후로, 올림픽이 지나면 또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다시 올림픽이 찾아왔다. 항상 (1위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과 금메달 생각만 하다보니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메달) 부담을 리우에서 떨치지 못했지만 한 번 더 나간다고 우승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럴 바에야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여러가지 의미에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물론 국가의 부름을 영영 저버릴 생각은 없다. 현재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나서는 남자단식 이현일(MG새마을금고)도 태극마크를 반납했으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잠시 복귀해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고 다시 개인 자격으로 해외리그를 뛰고 있다. 이용대는 “내가 나가 도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불러주신다면 열심히 준비해서 꼭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지금은 너무 지쳐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대표팀을 나가더라도 훈련을 계속 열심히 할 거고, 몸 관리 잘 해서 실력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용대의 ‘은퇴’는 사실 ‘국가대표 자격 반납’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 규정상 랭킹 10위권 선수들은 연맹 주관 국제대회에 의무적으로 출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맹에 은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절차상 최소 6개월 이상은 ‘복귀’ 신청을 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이 지쳐 국가대표 자격을 반납하고 싶었던 이용대는 ‘정확히’ 말해 국제대회 출전 정지 상태가 되는 셈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용대는 대표팀 소속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된다.

“배드민턴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닌데 일이 커졌다”고 웃은 이용대는 아주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는 다음달, 8년 동안 미뤄뒀던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머리를 깎고 훈련소에 입소할 계획이다. 이후로는 운동하고 대회에 나서며 후원 계약을 맺는 것도 모두 개인 자격으로 이뤄진다. 한국 배드민턴 최고 스타 이용대가 앞으로 보일 행보는 그 뒤를 이을 대표팀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용대가 지난 2일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대회였던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를 마친 뒤 편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김은진 기자

■유연성 “덕분에 최고로 지낸 3년, 수고했다”

이용대가 랭킹 1위에서 국가대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파트너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대는 “2년 동안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후위에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과 함께 종합국제대회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슈퍼시리즈 등 다른 큰 대회에서는 정말 좋은 성적을 거뒀다”며 “3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형과 함께 해 행복했다”고 말했다. 둘은 2014년 8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랭킹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용대의 파트너’는 그 나름대로 대단히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잘 해도 빛을 보기 어렵고, 못 하면 탓을 받기 쉬운 자리였다. 언제나 이용대가 주목받는 가운데서도 유연성은 묵묵하게 꾸준히 자신의 몫을 하며 ‘슈퍼스타’인 동생과 보조를 맞췄다.

유연성은 “용대 때문에 외모 관리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다”고 농담을 던지며 “함께 하는 파트너에게 질투 같은 걸 느끼면 발전할 수가 없다. 내가 용대를 뛰어넘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더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후배지만 표면적으로 팀의 리더를 맡아야 했던 이용대의 어려움도 옆에서 지켜본 유연성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것을 인정하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용대도 가끔 주변에서 여러 오해들을 해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리우올림픽을 마친 뒤 유연성 역시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을 대표팀에 전했다. 더구나 함께 하던 복식조가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반 은퇴 소식으로 이어졌다.

유연성은 “아내가 지난달 아들 시온이를 낳았다. 원래 10월 출산 예정이었기 때문에 올림픽 뒤 잠시 쉬고 싶다고 대표팀에 말씀드렸다. 국제연맹 규정 문제도 있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국가대표를 잠시 떠나겠다고 한 사실은 맞는데 은퇴라고 이야기가 나오니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그 뒤에 협회에 ‘은퇴 아니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유연성은 이제 혼합복식으로 종목을 바꿔 경기한다. 7일 개막하는 전국체전에 출전하고 이달 말 열리는 프랑스오픈 슈퍼시리즈에 출전하며 대표팀 생활을 이어간다.

이용대와 1위를 지키며 각종 대회를 제패했지만 역시나 가장 큰 아쉬움은 올림픽·아시안게임에서 따지 못한 금메달이다. 유연성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으니 실패한 것도 아니다. 기회는 또 있다고 생각한다”고 새 각오를 다졌다. 그러면서 “3년 동안 용대가 많은 조언 해주고 도와줘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좀 쉬면서 또 좋은 길을 가기 바라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3년 짝꿍 이용대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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