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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직 뺏길 뻔한 조성환 “ACL 16강으로 한풀이”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조성환 감독(46)은 부임 3년차인 올해 10월 감독직을 잃을 뻔 했다. 구단의 숙원이었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티켓을 따냈는데, 정작 감독에서 수석코치로 강등된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내년부터 P급 라이선스가 없는 감독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벤치에 앉지 못하는 규정을 도입한 탓이다.

조성환 감독은 P급 바로 아래인 A급을 갖고 있다. 다행히 P급 교육을 받고 있는 지도자도 벤치에 앉을 수 있도록 규정이 완화됐지만, 감독도 구단도 선수도 혼란에 빠진 2개월이었다. 21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조성환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ACL 진출에 내걸은 속옷 세리머니를 펼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수석코치로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잘 정리돼 그나마 다행인데, 애증의 대상이 따로 없다고 할까요? 그래도 기왕 출전하는 대회니 한국 축구의 자존심은 지켜야죠.”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조성환감독이 20일 오후 서귀포시 크럽 하우스에서 본사와 인터뷰 하고 있다. 서귀포=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휴가도 빼앗은 ACL

조성환 감독의 각오는 올 겨울 빼곡한 그의 일정표에서 잘 드러난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내년 구상에 필요한 외국인 선수를 찾으러 동유럽과 브라질을 거쳐 지난 6일에야 귀국했다. 9일부터는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P급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친 뒤에는 쉴 틈도 없이 19일 제주로 내려와 선수단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가족과 약속했던 휴가는 언감생심이었다. 내년 1월3일부터는 태국 치앙마이로 전지훈련을 떠나 ACL 준비에 들어간다. 내년 2월7일 안방에서 ACL 예선 2라운드 킷치(홍콩)와 하노이(베트남)의 승자와 플레이오프(PO)에 초점을 맞춘 일정이다. 조성환 감독은 “예년보다 일정이 한 달은 앞당겨긴 느낌”이라며 “전지훈련에서 돌아오면 ACL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상대의 전력을 현지에서 직접 확인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ACL에서 싸울 전력을 마련하는 것도 직접 챙기고 있다. 올해 아시아 정상에 오른 전북 현대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수를 보강해야 K리그와 ACL을 병행할 수 있다. 제주는 최근 외국인 선수 마그노를 비롯해 올림픽국가대표 출신 골잡이 진성욱과 수비수 조용형, 김원일 등을 데려왔다. 여기에 골키퍼 이창근까지 영입해 더블 스쿼드에 가까운 모양새를 갖췄다. 하지만 앞선에서 싸울 수 있는 정통 스트라이커를 구하지 못한 게 아쉽다. 조성환 감독은 “솔직히 우리 팀 전력을 볼 때 K리그와 ACL 둘 다 잘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후자인 ACL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조용형이나 김원일이 ACL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PO는 무조건 통과…첫 16강 진출 노린다

조성환 감독이 ACL에서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거론한 것은 최소한 PO는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성환 감독은 “지금껏 K리그에서 ACL PO에 출전한 팀이 탈락한 역사는 없다”며 “난 PO가 아닌 조별리그 통과를 노린다. 8강이나 4강은 아직 모르겠지만, 단계를 밟아나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제주가 PO를 통과하면 포함될 E조에는 올해 J리그 우승팀이자 클럽월드컵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연장 혈투 끝에 준우승한 가시마 앤틀러스와 태국 강호 무앙통 등이 버티고 있다. 상황에 따라선 카를로스 테베스 영입을 눈앞에 둔 상하이 선화와 브리즈번(호주)까지 E조에 합류할 수 있다. 그래도 조성환 감독은 올해 K리그에서 전북과 함께 최다 득점(71골)을 자랑한 제주의 화끈한 공격이라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라고 여긴다.

조성환 감독은 “제주 특유의 오밀조밀한 축구로 만들어내는 득점력으로 세계 무대를 놀라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조별리그 통과에 공약을 내걸 계획도 있다. 올해 ACL 출전에 속옷 세리머니를 내걸었던 것처럼 ACL 조별리그에 통과하면 팬들이 원하는 세리머니로 ACL과의 한풀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조성환 감독은 “올해의 아픔은 올해로 끝내야 한다”며 “ACL에서 16강에 올라 팬들이 원하는 세리머니를 보여드린다면 내 마음도 후련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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